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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젠더 부사관 강제전역…사유는 성전환 아닌 심신장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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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당국이 창군 이후 처음으로 군 복무 중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받은 육군 하사에 대해 22일 강제 전역 판정을 내렸다. 성별의 문제가 아닌, 심신 장애로 인해 군 생활을 지속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해당 하사 측은 공개 기자회견을 열고 군 복무를 지속하기 위해 끝까지 투쟁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육군, "성별 문제 아니라 의무조사 근거에 의거했다" #"심신장애 정도가 전신경근군 완전 마비된 것과 같아"

휴가 중 해외에서 성전환 수술을 받고 돌아온 육군 부사관 변희수 하사가 22일 오후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 군인권센터에서 군의 전역 결정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휴가 중 해외에서 성전환 수술을 받고 돌아온 육군 부사관 변희수 하사가 22일 오후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 군인권센터에서 군의 전역 결정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육군은 이날 육군본부에서 전역심사위원회를 열고 변희수 하사에 대해 “군 인사법 등 관계 법령상의 기준에 따라 ‘계속 복무할 수 없는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전역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변 하사는 지난해 11월 29일 태국에서 성전환 수술 후 치료를 위해 군 병원을 찾았고 3급 심신장애 판정을 받았다. '고환 양측을 제거한 자'를 3급 심신장애로 분류한 국방부 심신장애자 전역규정에 따른 것이다.

이후 육군은 관련 규정대로 변 하사를 전역심사위원회에 넘겼다. 현재 국군수도병원에 입원 상태로 돼 있는 변 하사는 가족관계등록부상 성별을 여성으로 정정하기 위해 관할 법원에 '성별 정정 허가'를 신청했고, 여군으로 군 복무를 지속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육군 측은 변 하사가 받은 3급 심신장애가 전역의 결정적인 이유라고 설명했다. 육군 관계자는 “심신장애 3급은 군 생활을 지속하기 어렵다는 명백한 사유”라며 “이 정도인데 전역 판정을 피하는 게 오히려 이치에 어긋난다”고 말했다. 1~11급으로 이뤄진 심신장애 등급표상 ‘고환 양측을 제거한 자’는 ‘전신경근군이 완전 마비된 자’ 등과 나란히 3급 항목에 포함돼있다.

휴가 중 해외에서 성전환 수술을 받고 돌아온 육군 부사관 변희수 하사가 22일 오후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 군인권센터에서 군의 전역 결정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열고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뉴스1]

휴가 중 해외에서 성전환 수술을 받고 돌아온 육군 부사관 변희수 하사가 22일 오후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 군인권센터에서 군의 전역 결정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열고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뉴스1]

그러면서 육군은 이번 전역 결정이 성별 정정 신청 등 개인적인 사유와는 무관하다고 강조했다. 성전환으로 인한 성별 논란이 문제의 본질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는 전날(21일) 변 하사에 대한 전역심사를 연기하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인권위는 이번 사례에 ‘성별 정체성에 의한 차별행위 개연성’이 있을 수 있다고 보고 변 하사의 전역심사위원회를 인권위 조사 기한인 3개월 후로 연기하라고 권고했지만, 육군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군 당국자는 “성 정체성이 문제가 아니다”며 “수술로 인한 신체 부위의 손상으로 기존과 같이 임무를 수행하는 데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게 문제”라고 설명했다. 군 법무관 출신인 신동욱 변호사는 “해당 하사가 여군으로 복무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그는 애초 남군으로 선발된 인원”이라며 “신체 변화에 따라 군에서 수행하는 역할에도 변화가 있다고 보고 군 당국이 충분히 전역 판정을 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변 하사 측은 군 당국의 전역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했다. 일종의 성차별이라는 것이다. 이날 변 하사는 군인권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육군에 돌아갈 그 날까지 끝까지 싸우겠다”며 “성별 정체성을 떠나 내가 이 나라를 지키는 훌륭한 군인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인권위의 권고를 봐도 (이번 일은) 일종의 성차별 행위”라며 “심신 장애를 전역심사위원회 처분에 적용한 것부터 절차상 위법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3개월간 진행될 것으로 예상하는 인권위 조사를 지켜보면서 우선 인사소청심사위원회에 소청심사 등 절차를 밟고, 그 뒤 행정소송 등 행정법원 판단을 받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군 당국은 향후 유사 사례가 생길 수 있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예컨대 변 하사와 달리 성전환을 한 사람이 여군 선발에 지원할 경우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를 놓고서도 논란이 불가피하다”며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군대의 성 소수자 문제에 대한 논의가 충분하지 않았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현재 성 소수자의 경우 현역 군인 선발기준인 국방부령 ‘병역판정 신체검사 등 검사규칙’에 의해 '성 주체성 장애'로 분류한 뒤 ‘군 복무에 상당한 지장이 초래된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입대 불가 판정을 받는 게 전부다. 성 정체성을 숨기고 입대한 성 소수자들은 ‘관심 사병’으로 군의 관리 대상이 되거나 정신병에 따른 심신장애 판정으로 전역하곤 했다. 국방부 인권담당 법무관을 지낸 성주목 변호사는 “군대에서 제3의 성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사회적 논의를 시작할 때가 됐다”라고 말했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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