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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간 2만6900원···新일자리 '배민 라이더' 최저시급 벅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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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https://www.youtube.com/watch?v=Av1EvhnnjLg

[일자리 대전환시대②] #2시간 교육 후 회사와 계약 체결 #배달 1건 4483원 … 세금·보험료 떼 #월 392건 배달해야 175만원 수입 #바짝 붙는 차 피하다 사고 날 뻔

“왜 이렇게 늦게 왔어? 다른 배달 다 밀렸잖아!”

 분식집 사장님의 호통을 들으며 떡볶이·튀김 등 포장된 음식을 배달 가방에 넣었다. 길을 헤매다 뒤늦게 찾아 들어간 분식집에서 “1만8500원짜리 주문 맞죠” 하고 확인한 뒤 허겁지겁 길을 나섰다.

 내비게이션에 표시된 배달 목적지까지의 시간은 10분. 하지만 배달을 끝낸 시간은 그로부터 20분여 뒤였다. 서울 충정로역 인근 언덕을 오르던 전기자전거는 급기야 멈춰섰다. 자전거를 끌고 배달 음식을 받으러 대문 앞까지 나와 기다리던 손님을 만났다. 스마트폰 터치 한 번으로 잡은 일자리라고 우습게 볼 일이 아니었다.

기자는 직접 플랫폼 노동자로 일해보기 위해 지난달 배달 플랫폼에 가입했다. 지난달 6일 서울 중구의 한 도로 위에서 기자가 스마트폰 앱을 통해 일거리를 찾고 있다. 임성빈 기자

기자는 직접 플랫폼 노동자로 일해보기 위해 지난달 배달 플랫폼에 가입했다. 지난달 6일 서울 중구의 한 도로 위에서 기자가 스마트폰 앱을 통해 일거리를 찾고 있다. 임성빈 기자

 지난해 연말, 기자는 ‘누구나 배달원으로 일할 수 있다’는 배민커넥트 라이더(배민 커넥터)가 됐다. 대표적 플랫폼 노동자로 꼽히는 배달업 종사자가 돼 보니 플랫폼 기업의 위력은 절대적이었다. 배민커넥트는 배달 경험이 없는 사람도 자전거, 전동킥보드, 혹은 오토바이를 가지고 있으면 자신이 원하는 날짜와 시간을 선택해 일할 수 있다. 전업인 배민 라이더와 달리 일종의 부업 개념이다. 기자는 이틀에 걸쳐 3시간(배달 6회)을 일하며 2만6900원을 벌었다.

한국 플랫폼경제종사자 특성.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한국 플랫폼경제종사자 특성.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배민 커넥터 계약을 체결하기 전, 교육도 2시간 받아야 했다. 교육장에 ‘내가 원할 때, 달리고 싶은 만큼만’이란 문구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함께 앱 이용법 교육을 받던 한 중년 남성은 교육이 끝나자 “나랑은 안 맞는 것 같다”며 계약을 포기했다. 함께 교육을 받던 20~30대 워너비 커넥터는 배달 요금이 큰 관심사였다. 라이더 희망자 강태훈(27) 씨는 “취업하기 전 돈을 모으기 위해 지원했다”며 “취업을 한 뒤에도 상황이 가능하다면 ‘투잡’으로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지역과 정책에 따라 다르지만, 배민커넥트의 경우 1건당 5000원에 가까운 배달요금을 받을 수 있었다.

라이더로 일하기 전, 안전 교육과 실무 교육을 수료한 뒤 배달 업무에 필요한 헬멧과 가방 등을 지급받았다. 임성빈 기자

라이더로 일하기 전, 안전 교육과 실무 교육을 수료한 뒤 배달 업무에 필요한 헬멧과 가방 등을 지급받았다. 임성빈 기자

플랫폼 노동자는 자영업자인가, 노동자인가

# 배달 시도 첫날인 지난해 12월 6일 밤, 스마트폰 앱 속 기온은 영하 5도를 찍었다. 추운 날씨에 전기자전거를 타고 바람을 가르자 핸들에 장착해 놓은 스마트폰과 카메라 배터리가 빠르게 닳아 없어지기 시작했다. 전기자전거의 계기판도 금세 먹통이 됐다. 스마트폰 배터리가 눈에 보일 정도로 줄어드는 상황에 마음도 조여들어 왔다. 배달을 시작한 지 채 2시간이 되지 않았을 때, 보조배터리까지 작동을 멈췄다.

지난달 6일 서울 중구의 한 도로 위. 영하의 날씨에 스마트폰 배터리가 빠르게 닳아 없어지자 스마트폰이 꺼지기 전에 배달일을 더 하기 위해 바삐 움직였다. 임성빈 기자

지난달 6일 서울 중구의 한 도로 위. 영하의 날씨에 스마트폰 배터리가 빠르게 닳아 없어지자 스마트폰이 꺼지기 전에 배달일을 더 하기 위해 바삐 움직였다. 임성빈 기자

 배달 중에 여러 ‘배민 선배’와 마주칠 수 있었다. 과거 음식점 배달원은 한 식당에 고용된 형태가 많았지만, 요즘 라이더는 플랫폼 유니폼을 입고 있다. 플랫폼이 없으면 일거리가 없어질 만큼 플랫폼의 존재감이 큰 일자리다.

 이날 2시간여 동안 3건의 음식 배달을 마쳤다. 첫날 벌어들인 배달요금은 1만4500원. 당시 최저시급(2020년 8590원)에도 미치지 못한 금액이었다. 2시간 동안 일은 했지만 ‘건수’가 없을 때는 공을 치기 때문이다.

플랫폼 종사자 주요 직업(남).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플랫폼 종사자 주요 직업(남).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플랫폼 노동자의 주요 직업(여).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플랫폼 노동자의 주요 직업(여).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스스로 일하는 만큼, 위험 부담도 스스로

# 또다시 배달에 나선 지난해 12월 16일, 이날은 안전하게 일하자는 생각에 밝은 대낮에 도로로 나왔다. 그러나 ‘안전한 배달’은 없었다. 신호 대기를 하다가 신호등이 초록색으로 바뀌자 자동차들의 속도와 맞추기 위해 강하게 페달을 밟았다. 빠른 속도로 달리던 와중에 앞에 놓인 도로는 곳곳이 패여 울퉁불퉁했다. 자전거가 들썩이자 핸들에 붙은 카메라가 갑자기 떨어졌다. 순간 당황해 브레이크를 잡으며 뒤를 바짝 따라오는 차를 피했다. 다행히 사고는 나지 않았다. 카메라는 다음 신호로 바뀐 뒤에야 되찾을 수 있었다.

배달음식을 픽업하면서부터는 빨리 배달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페달을 더 세게 밟았다. 임성빈 기자

배달음식을 픽업하면서부터는 빨리 배달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페달을 더 세게 밟았다. 임성빈 기자

 대부분의 플랫폼 노동자는 안전에 대한 책임을 본인이 진다. 꼬박꼬박 빠져나가는 보험료도 노동자의 몫이다. 배민커넥트 라이더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보험 가입 절차를 플랫폼 기업이 도와준다. 하지만 가입은 개인이 해야 한다. 특수형태 근로 종사자로 분류돼 산업재해 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오토바이를 이용할 경우 개인 유상운송종합보험에 개인이 가입하거나 시간제 보험을 추가로 이용해야 한다.

 하지만 사고가 나더라도 산재보험 혜택을 받기는 쉽지 않다. 노동자가 한 플랫폼 회사에 ‘전속성’이 있다고 인정받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 고시에 따르면, 전속성이 있는 노동자는 “소속(등록) 업체에서 전체 소득의 과반 소득을 얻거나 전체 업무시간의 과반을 종사하는 사람”이다. 라이더가 이 요건을 충족하는지에 대해선 논쟁이 벌어지는 중이다.

 이날은 배달 요청이 비교적 적었지만, 부지런히 움직인 탓에 한 시간여 만에 배달 3건, 1만2400원을 벌었다. 최저시급은 넘겼지만 여기서 세금과 산재보험료(450~470원)가 빠져나갔다.

플랫폼을 통한 일자리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서울 마포구의 배민라이더스 센터 앞에 오토바이가 줄줄이 세워져 있다. 임성빈 기자

플랫폼을 통한 일자리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서울 마포구의 배민라이더스 센터 앞에 오토바이가 줄줄이 세워져 있다. 임성빈 기자

 첫날 번 돈까지 합하면 총 6건의 배달로 2만6900원을 모았다. 건당 4483원 정도다. 본업을 병행하면서 탄력적으로 일할 수 있다는 점은 맞다. 하지만 여기서 공제되는 보험료·세금·프로모션 지원금을 제외하고 계산하면 1인 가구 중위소득 175만7194원(2020년 기준)을 채우기 위해 한 달에 무려 392건의 배달을 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1주일에 98건꼴인데, 주 5일 근무할 때 하루 20건씩을 하면 이 액수를 채울 수 있다. 만약 4인 가구(중위소득 474만9174원)를 지탱하려면 페달을 더욱 빠르게, 오래 밟아야 한다.

국가별 긱(GIG) 이코노미 참여 성인 비율.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국가별 긱(GIG) 이코노미 참여 성인 비율.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플랫폼을 통한 배달업은 결국 이 일을 전업 혹은 부업으로 할 건지에 따라 평가가 갈릴 수밖에 없다. 라이더의 건강상태와 운전 실력, 플랫폼의 지원 수준 등의 변수에 따라 지속 가능성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플랫폼이 만들어내는 일자리가 산업계에서 사라지는 전통적 일자리를 대신할 미래의 일자리가 되기까지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임성빈 기자 im.soungb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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