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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노트북을 열며

100번째 하고 싶은 일은 무엇입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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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임미진
임미진 기자 중앙일보 기자
임미진 폴인 팀장

임미진 폴인 팀장

버킷 리스트(bucket list).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의 목록을 가리키는 말이다. 낯선 이들을 불러 모아 ‘올해의 버킷 리스트 100개 쓰기’ 모임을 여는 이가 있다. 대형 금융회사를 휴직 중인 최호진(38)씨다.

올해 하고 싶은 일을 100개 써보라. 그럼 어떤 일이 생길까. 대부분의 사람이 30개까지는 어렵지 않게 쓴다고 한다. 사람들마다 내용이 크게 다르지도 않다. 여행, 독서, 운동, 외국어 같은 단어들이 자주 나온다. 그런데 50개를 넘어가면 달라진다. 그때부터는 쉽게 떠오르지도 않는다. 해보고 싶은 건 웬만큼 썼다. 그러면 갑자기 하고 싶은 일의 목록이 자잘해지기 시작한다.

“50개 이후로는 거의 쥐어짜듯이 하고 싶은 일을 떠올려야 하거든요. 그럼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하고 싶었는데 놓치고 있는 게 뭔지를 계속 떠올리게 돼요. 아내 생일에 미역국을 끓여주겠다거나 주말마다 부모님께 전화를 하겠다는 식으로 굉장히 일상적인 이야기들이 나오기 시작해요. 단순히 유튜브를 시작하겠다는 게 아니라 10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버를 한번 만나보겠다는 식으로 구체적인 방법도 나오죠.”

노트북을 열며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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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킷 리스트가 50개를 넘길 때부터 사람들 사이의 차이가 보인다. 뒤로 갈수록 ‘남들도 생각하는 꼭 해야 하는 일’보다 ‘진짜 내가 원하는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일’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최씨는 이 100개의 버킷 리스트를 완성하고 나서 휴직을 결심했다. “회사에서 하고 싶은 일이 100개 중에 없었어요. 사람들을 계속 만나고, 이들에게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다는 걸 발견했거든요.”

새해가 시작된 지 3주가 지났다. 대부분이 새로운 다짐을 했을 것이고, 다짐을 지키지 못한 이들은 마음이 불편할 것이다. 이상한 것은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이지만, 우리의 새해 다짐은 닮아있다는 것이다. 한 설문 조사에서 1300여명의 응답자들은 저축(21.9%)과 이직·퇴사(13.5%), 운동(11%) 등을 이루고 싶다고 답했다. 거창한 다짐을 하고 그 다짐을 지키지 못해 괴로워하는 것이 우리가 매년 1월을 보내는 방식이다.

‘일상의 사소한 반복을 가치 있게 여길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거대한 세리모니나 이벤트를 이어가며 살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일상에 진정한 삶이 있다.’ 새해를 맞아 읽은 책의 서문이다. 100개의 하고 싶은 일을 한번 써 보자.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 적힌 일이 무엇인지부터 들여다보자. 그 자잘하고 사소한 소망부터 채워나가며 올해를 보내는 건 어떨까.

임미진 폴인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