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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점 사위가 되고싶은 당신을 위한 설 선물 리스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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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한재동의 남자도 쇼핑을 좋아해(4) 

설날이 곧 다가온다. 이 말에 가장 긴장하는 것은 유통업 식품담당자다. 1년에 두 번 있는 ‘명절선물세트’ 구성을 위해 3개월 동안 치열한 준비를 한다. 한우, 굴비, 과일 등 구색을 갖춘 선물세트가 준비된다. 평소에는 그러려니 하고 보던 것이 결혼을 앞둔 내게는 이제 고민거리가 됐다.

사실 지금 이 나이까지 명절이라고 해서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인사를 간 적은 거의 없다. 개인 사업을 하지 않는 회사원으로서 선물을 주고받는 경우도 드물고, 따로 은사나 친척에게 선물을 보내는 싹싹함도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처음 명절 선물을 산 것이 예비 사위로 처가에 인사 갔을 때가 아닐까 한다. 장담하건대 이 글을 보는 예비 사위의 가장 큰 고민일 것이다.

 명절선물세트는 다양한 상품들이 준비된다. [사진 현대백화점]

명절선물세트는 다양한 상품들이 준비된다. [사진 현대백화점]

나는 장가를 늦게 간 편이다. 주변에는 조언자와 잔소리꾼이 많았다. 그들의 말을 들어봤다. 처가의 명절 선물을 고민하는 예비 신랑이 귀엽다며 말해주는 그들의 경험담은 상상 이상의 내용이었다. 그들에 따르면 명절 선물, 특히나 처음으로 인사를 갈 때의 명절 선물은 많은 것을 고려해야 했다. ‘내가 너무 결혼을 만만히 본 것일까’라는 두려움이 들 정도였다. 선배들의 경험을 토대로 예비 사위의 명절 선물 고르기의 네 가지 포인트를 정리해봤다.

첫째, 장인 장모 중 누구에게 맞춰야 하는지 결정해야 한다. 두 분이 중립적이라면 무엇을 사가도 무리가 없다. 그러나 입김이 센 분께 점수를 잃을 선물이면 곤란해진다. 예를 들면 분위기 메이커인 장모가 단 거를 싫어하는데 화과자를 사 간다든지, 장인어른이 해산물을 좋아하는데 한과를 사 간다든지 하는 경우다. 사위가 사가는 선물은 명절의 화젯거리가 되기 때문에 처가에 있는 내내 곤란해질 수가 있다.

둘째, 절대 모험하지 말고 무난한 것을 선택해라. 매년 선물세트에는 그간 보지 못했던 새로운 명절 선물부터, 트렌드를 좇는 상품까지 출시된다. 모든 유통업체에서는 가장 비싼 것과 더불어 새로 나온 선물세트를 프로모션 등으로 밀어준다. 센스있는 예비신랑이 되고 싶은 욕심에 이런 선물을 선택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말리고 싶다. 성공 가능성이 높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런 선물은 장인·장모가 사위에게 받았다고 남에게 자랑하기도 어렵다. 설명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100점 사위가 되고 싶은 욕심은 칭찬하지만, 명절선물을 선택할 때는 참자. 트렌디하고 신기한 선물보다는 스테디셀러가 훨씬 낫다.

셋째, 결혼식이 멀었다면 굳이 집에서 안 봐도 된다. 상견례 전이거나 기타 다른 이유로 굳이 집에서 보지 않아도 된다면 식당에서 캐주얼한 식사를 추천한다. 식당은 어차피 한식을 잔뜩 먹는 명절인데 반드시 한정식을 고집할 필요도 없다. 대신 고기 굽느라 부산스러운 고깃집은 피하고, 적막감을 깨줄 수 있는 코스가 있는 식당이 좋다. 이렇게 외식을 하게 되면 선물의 선택 폭은 매우 좁아진다. 제철 과일 혹은 식사 후 드실 수 있는 디저트 등이 적당할 것이다. 나중에 들은 후일담이지만 찾아가는 예비사위도 예비사위지만, 맞이하는 처가 식구들도 상당한 부담이라고 한다. 오히려 이렇게 가볍게 끝내는 게 서로에게 좋을 수 있다.

넷째, 먹는 것이 제일 만만하다. 만약 물건으로 샀는데 처가에서 맘에 안 들거나, 같은 것이 있거나, 쓰기 어려운 상황이면 곤란해진다. 아직 서로를 잘 모르는 상태여서 필요한 물건을 딱 맞춰 선물하기도 어렵고, 사위가 선물로 가져온 건데 버리거나 팔 수도 없어 오히려 애물단지가 된다는 것이다.

선배들의 조언에 따라 식품 MD에게 명절선물 추천을 받기로 했다. 그녀는 6개의 후보를 제시했다. ① 모두가 좋아하는 구이용 한우 ② 건강기능식품 ③ 명절 생선의 왕자, 굴비 ④ 알이 굵고 큰 제철 과일 ⑤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과자 ⑥ 달짝지근한 곶감. 과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생각했던 것 이상의 가격이었다. 원래 이렇게 비싼 것인지 아니면 성수기라고 비싸게 받는 것인지 물어봤다. MD는 상급의 상품은 때를 맞춰 출하된 것을 가져오는 것이며, 추가 마진은 붙이지 않는다고 했다. 백화점 한우 사 드리는 사위가 되고 싶은데 그러기에는 생각보다 많은 돈이 필요했다.

사정을 이야기하자 그 친구는 내게 조언을 해줬다. 집안 어르신 중 백화점을 좋아하고, 백화점에서 구매한 사실을 중시할 분이 계신지를 물어봤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직접 도소매 시장을 가서 사는 것을 추천한다고 했다. 백화점에서 구매해 백화점 로고가 새겨진 선물 가방에 있는 걸 드려도 좋지만, 도소매 시장에서 구매해 보자기로 싸도 품격이 있어 보인다는 것이다. 보자기는 보통 판매상에서 가지고 있고, 정 안되면 인터넷에서 저렴하게 살 수 있다. ‘공단 보자기’라고 검색하면 인터넷으로 배송비 포함 5000원 내로 다양한 색의 보자기가 검색된다.

공단보자기로 싼 명절선물. 보통 황금색보자기를 많이 사용한다. [사진 옥션]

공단보자기로 싼 명절선물. 보통 황금색보자기를 많이 사용한다. [사진 옥션]

결론적으로 나는 황금색 공단 보자기로 단단히 묵은 한우를 한 손에 들고 긴장되는 마음으로 초인종을 눌렀다. 미리 한우를 사 간다고 자랑한 덕에 처가에서는 고기 판까지 갖춰 놓고 나를 맞았다. 한우는 순식간에 사라졌지만 칭찬은 이어졌다. 그리고 사실 내가 제일 많이 먹었다. 사위 왔다고 굽는 대로 고기를 먹여주었다.

직장인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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