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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정, 아들 실명 외치며 방패막이 이용" 전남편 유족의 분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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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전처 고유정(37)에게 살해된 강모(사망 당시 36세)씨의 방. 유족은 강씨가 생전에 쓰던 옷과 이불 등 유품을 그대로 뒀다. 책장 위에 있는 바람개비 2개는 강씨가 아들을 만나면 선물하려고 미리 만든 것이라고 한다. [사진 강씨 유족]

지난해 5월 전처 고유정(37)에게 살해된 강모(사망 당시 36세)씨의 방. 유족은 강씨가 생전에 쓰던 옷과 이불 등 유품을 그대로 뒀다. 책장 위에 있는 바람개비 2개는 강씨가 아들을 만나면 선물하려고 미리 만든 것이라고 한다. [사진 강씨 유족]

"피고인(고유정)이 과거 형과의 이혼 소송에서도 그랬듯이 또다시 아이를 방패막이 삼아 (본인 형량을 줄이는 데) 이용하는 것에 저희 가족은 분노한다."

전남편 동생 "조카 신분 노출될까 걱정" #제주지검, "반인륜적 범죄" 사형 구형 #재판 후 유족과 고유정 변호인 실랑이 #"왜 공판 연기하나" VS "조용히 해요" #전남편 부모 항우울제 먹으며 버텨 #동생 "고유정 평생 회개할 사람 아냐"

전처 고유정(37)에게 살해된 강모(사망 당시 36세)씨의 남동생(34)은 20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재판 과정에서 자기 아들 이름을 (법정에 있는) 일반 시민들 앞에서 수십 차례 외치면서 선처해 달라고 호소하는 모습을 보는 게 가장 힘들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사건 이후 강씨 아들(6)은 주변 시선 때문에 놀이터도 제대로 못 가는데 정작 친모인 고유정이 아들 실명을 노출하는 것을 우려해서다.

제주지검은 이날 제주지법 형사2부(부장 정봉기) 심리로 열린 고유정에 대한 결심공판에서 "피고인(고유정)은 아들 앞에서 아빠를, 아빠 앞에서 아들을 참살하는 반인륜적 범죄를 두 차례나 저질렀다"며 사형을 구형했다. 고유정은 지난해 5월 25일 제주시 조천읍 한 펜션에서 전남편 강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하고 은닉한 혐의(살인 및 사체유기·손괴·은닉)로 재판에 넘겨졌다. 또 지난해 3월 2일 충북 청주 자택에서 잠을 자던 의붓아들 A군(사망 당시 5세)을 숨지게 한 혐의도 받고 있다.

강씨 동생은 부모님과 함께 이날 방청석에서 고유정의 재판을 지켜봤다. 강씨 동생과 아버지는 1심이 시작된 뒤 이날까지 12번 열린 재판 모두 빠짐 없이 참석했다. 강씨 동생은 "사건이 발생한 지 8개월 정도 됐다. 그 과정에서 피고인(고유정)의 끊임없는 거짓말을 듣고 있는 자체가 너무 큰 고통이었다. 반박할 수 있는 발언권 없이 가만히 앉아서 듣고만 있어야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재판에 다녀오면 부모님은 방 안에서 울고 계시고, 그날 하루는 지옥 같다"고 했다.

전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고유정이 경찰에 체포될 당시 모습. [중앙포토]

전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고유정이 경찰에 체포될 당시 모습. [중앙포토]

강씨 동생은 "피고인 측 변호인의 꼼수로 공판이 한 번 더 늘어나 너무 화가 난다"고 했다. 고유정 측 변호인은 이날 "피고인이 수면제를 누군가에게 먹인 사실이 없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대검찰청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재차 (전남편 혈액과 현남편 모발에서 수면제 성분이 검출된 과정에 대한) 사실 조회를 요청했으나 일부 문건이 도착하지 않았다"며 재판 연기를 신청해 유족의 반발을 샀다. 재판부는 5분간 휴정 후 다음 재판까지 사실 조회 결과를 기다리기로 결정했다.

이 때문에 재판이 끝난 직후 법정 밖에서 만난 강씨 유족과 고유정 측 변호인 사이에 승강이가 벌어졌다. 강씨 동생에 따르면 숨진 형과 동갑인 사촌 여성이 먼저 "진실을 밝혀 달라" "왜 자꾸 공판까지 연기하냐"고 따졌다. 이에 고유정 측 변호인이 "조용히 하세요" "시끄럽네"라고 맞섰다고 한다.

강씨 동생은 "피고인(고유정)이 (지난해 5월) 25일 '(제주도) 동쪽에서 무조건 봐야 한다'고 해서 저희 형이 (조카와) 같은 또래 자식이 있는 사촌 누나에게 '아이가 놀기에 좋은 장소가 어디냐'고 물어봤고, 그 장소를 소개해 줬다"며 "그곳을 마지막으로 다녀온 뒤 형이 죽은 것에 대해 누나가 너무 큰 죄책감을 갖고 있어서 (고유정) 공판에 빠진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사촌 누나는 어릴 때부터 같은 동네에서 자라 (제게도) 친누나나 다름없다"며 "피고인 측 변호인이 누나에게 그렇게 대하는 모습을 보고 화가 나 저도 처음으로 (법정) 밖에서 '우리가 진실을 밝혀 달라고 하는 게 못할 말이냐'고 소리를 질렀다"고 했다.

강씨 동생은 "부모님은 아직도 (형을 잃은 충격 때문에) 정기적으로 병원에 다니시고, 항우울제를 드시고 계신다"며 "선고가 나와야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데 공판 기일이 자꾸 연기되는 것 자체가 저희에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통"이라고 말했다. 그는 "형 방에 있는 유품은 (사건이 발생한) 8개월 전 그날 그대로다. 아버지는 매일 형 방에 들어가서 우신다"고 했다.

지난해 5월 전처 고유정(37)에게 살해된 강모(사망 당시 36세)씨의 방. 유족은 강씨가 생전에 쓰던 옷과 이불 등 유품을 그대로 뒀다. [사진 강씨 유족]

지난해 5월 전처 고유정(37)에게 살해된 강모(사망 당시 36세)씨의 방. 유족은 강씨가 생전에 쓰던 옷과 이불 등 유품을 그대로 뒀다. 책장 위에 있는 바람개비 2개는 강씨가 아들을 만나면 선물하려고 미리 만든 것이라고 한다. [사진 강씨 유족]

강씨 동생도 사건 초기부터 형 사건에 매달리느라 심신이 피폐해졌지만, 병원 진료는 고유정의 선고 이후로 미뤄둔 상태다. 그는 "재판에서 피고인이 거짓말을 할 때마다 형 유품을 찾아 반박 자료를 제출하고, 재판이 없을 때는 탄원서를 쓴다"며 "(사건 발생 이후) 분노로 살고 있지만, 병원은 재판이 끝나면 다녀볼까 생각 중"이라고 했다.

앞서 강씨 유족은 사건 발생 100일이 다 되도록 시신을 못 찾자 집에서 찾은 강씨 머리카락 7가닥과 옷가지로 지난해 8월 말 '시신 없는 장례'를 치렀다. 유족은 장례 때도 혼자 남은 강씨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장례식장에 붙이는 유족 명단에 강씨 아들의 태명을 썼다고 한다.

경찰은 고유정이 시신 유기 장소라고 지목한 완도와 김포 등에서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지만, 아직 성과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고유정이 시신을 바다와 육지·쓰레기장 등에 나눠 버려서다. 강씨 동생은 "경찰도 피고인이 수시로 말을 바꿔 신빙성에 의문을 갖고 있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수색을 이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저번 공판 때 재판장님이 '시신 훼손과 은닉은 증거 인멸을 위한 게 아니었냐'고 물었는데 피고인(고유정)은 '절대 아니다'고 얘기했다"며 "끝까지 거짓말을 하는 것을 보고 '이 사람은 평생 교도소에 살아도 회개할 사람이 아니구나' 깨달았다"고 했다.

고유정의 다음 공판은 다음 달 10일 열린다.

전남편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구속된 고유정(37)이 지난해 6월 7일 제주동부경찰서 유치장에서 진술녹화실로 이동하고 있다. [뉴스1]

전남편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구속된 고유정(37)이 지난해 6월 7일 제주동부경찰서 유치장에서 진술녹화실로 이동하고 있다. [뉴스1]

제주=김준희·최충일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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