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최훈 칼럼

저잣거리 활개 치는 망국의 두 유령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최훈 기자 중앙일보 주필
최훈 제작총괄 겸 논설주간

최훈 제작총괄 겸 논설주간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적 질서에 입각한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되며 거주 이전 자유를 가진다. 이 나라 경제 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이 기본이다.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한다. 국가의 계속성을 수호할 책무를 지닌 대통령은 이 헌법을 준수하고 국민의 자유와 복리 증진에 노력해야 한다.’

지도자는 늘 옳다는 전체주의적 #부자와 강남 죄악시 사회주의적 #공포, 통계, 달콤한 유혹이 무기 #유령에 홀려 따라가면 공도동망

모두가 이렇게 합의, 날인한 지 73년째 된 나라다. 그런데 밤이면 북악산 기슭으로 돌아가 잔다는 두 유령이 저잣거리 배회하며 이 계약서에 침을 뱉고 찢어발기고 다닌다. 수명 다해 언제 죽었는지도 가물한 이 유령들은 자기가 오리지널이며 엘레강트, 그레이셔스, 어메이징, 노블한 민주주의라 우기고 다닌다. 촛불 의식으로 되살아났다고도 한다. 안데르센의 ‘벌거벗은 임금님’ 처럼 이들은 자기 정체를 결코 인정하지 못한다(알면서 뭉갤 수도 있다). 확실한 커밍아웃 한 적은 없어 이름에 ‘적(的)’ 자를 붙이는 게 착한 태도다. 이들은 때론 서로 의지하는 사촌이기도 하다. 전체주의적, 사회주의적 유령이다.

전체주의적 유령. 아차! “항명(抗命)”이란 단어를 내뱉었다 정체가 탄로 날 위기다. 걸핏하면 조정에 칼 들이대는 종2품 대사헌 따윈 당장 파직, 참수하고 싶었을 게다. 차도살인(借刀殺人) 기꺼이 떠맡으니 정2품 형조판서야말로 총신(寵臣)인 이유로다.

전체주의야 바로 한 사람을 위한 전체의 복종이다. All for One! One for All!  “이 나라 이탈리아에서는 오직 한 사람만이 틀리지 않는다” “종종 나도 좀 틀렸으면 좋겠지만 지금까지 그런 일은 한 번도 없었다.” 무솔리니의 확신에 찬 토로처럼 말이다(매들린 올브라이트의 『파시즘』에서 재인용).

방향 다 옳다는데 “그 자신감의 근거가 뭐냐”고 묻는 기자의 순진한 궁금증이야 저 위의 이 동네 모범국가 용어론 “중뿔나게 줴쳐대는 망발”일 뿐이다. ‘선택할 자유(自由)’니 함께 조화롭게 잘살자는 ‘공화(共和)’니 공감·소통·포용·실용 따위는 거추장스러운 잉여 먹물들의 사치와 가식 아니던가.

전체주의에 특수계급 빠질 리 없다. 히틀러 제3제국엔 나치스트, 무솔리니 두체 정권엔 파시스트, 소련·북한엔 정치국원 이하 당 간부들처럼…. 까치밥 남김없이 요직을 싹쓸이하고, 범죄 수사까지 면탈받으시고, 4월엔 선출직까지 독식하자는 계급이 나타났다. 이 유령 두 손에 든 무기는 ‘공포’와 ‘통계’다. 애초 이 계급에 스카우트됐던 ‘특급 칼잡이’의 나이브한 반역이야말로 모범국 용어론 “소뿔 위에 닭알 쌓을 궁리”다. 따르느냐! 죽느냐! 처분은 특수계급 몫이다. 양준일처럼 요즘 ‘뉴트로’로 돌아온 소설 『동물농장』의 ‘지도자 동지’(돼지 나폴레옹) 곁 9마리 맹견들 말이다. “두 발로 걷는 자 누구든 적이다” 외치며 쏘아보는 양들 말이다. 아 그러니….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들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욱 평등하다!

기억력 가물가물 백성들 속여먹기 쉬운 게 권력의 통계다. 아무도 관심이 없으니…. 어제, 지난달보다 잘살면 희희낙락하는 게 그들인지라. 조지 오웰 『1984』의 풍부성(豐富省) 구두 생산 통계를 보자. 4분기 예측 1억4500만 켤레. 실제 생산 6200만. 빅 브러더의 공포에 찌들어 사는 진리성(眞理省) 기록국 직원 윈스턴은 예측을 5700만으로 고친다. 뭐 빅 브러더 빼곤 아무도 관심이 없으니…. 드디어 500만 켤레 초과 생산! 그리곤 그의 독백. “그런데 왜 인구 절반은 맨발이지.” 아 그러니….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이다!

더욱 위험한 놈은 사회주의적 유령. 수시로 죽었다 살았다 하며 “모두 평등하게”란 주술(呪術)로 자본주의에 지친 이들 유혹하는 요물이다. 하긴 망할 기득권들 때문에 못 가졌다는 분노야 늘 과반수다. 그러니 승리의 기억도 적잖은 놈이다. “땅은 나의 것. 너희는 내 곁에 머무르는 거류민일 따름이다”(구약 레위기)라는 성경의 해석부터였다.

죄악인 모든 지대를 조세로 거두자는 헨리 조지에 이끌린 『부활』의 네흘류도프 공작 역시 상속 영지를 농민들에게 나눠 준다. 그 18년 뒤 농노 해방의 러시아 혁명 이후 땅의 절반을(1991년 소련 해체와 중국의 개혁개방 이전까진) 이 유령이 장악했을 정도니…. 이 좁은 땅에 되돌아온 유령 역시 영리하도다. 강남의 9억 이상 아파트와 엘리트 교육을 타깃 삼아 가장 분노의 인화력 큰 역사적 전선을 재연하고 있으니.

하지만 역시 유령은 유령! 레위기와 헨리 조지, 톨스토이조차 생각 닿지 못했던 건 위로 올라가는 아파트다. 아파트! 옆이 아니라 위로! 그것도 35층에서 80층으로! 산 사람이 생각해 낸 도심과 수도권의 아파트 공급 확대란 시대의 답 있지 않는가.

지방의 균형 발전, 집값 잡기 모두에 실패한 이 멍청한 유령의 넋두리는 늘 평등이고, 정의고, 중과세고, 수요마저 질식시킬 규제뿐이다. 피리 부는 두 유령 따라간 모든 사회는 추락이 역사의 교훈이다. 특수 계급 빼곤 모두가 소진되는 빈곤과 절망의 평등! 뻔한 이 길을 우리는 과연 따라갈 것인가.

최훈 제작총괄 겸 논설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