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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연말인사 뜻밖의 이용호 경질···김정은 뭐 때문에 화났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말 전원회의에서 노동당 부위원장과 부장 절반가량, 석탄공업상 등 내각의 일부 상(장관 격)을 교체하는 무더기 인사를 했다. 이 가운데 정부 당국이 주목하는 부분은 이용호 외무상의 해임이다. 김 위원장과의 개인적 친분이나 든든한 출신 배경, 업무 능력 등을 고려하면 한동안 승승장구할 것으로 예상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최근 외무상(외무장관)에서 물러난 것으로 파악된 이용호(오른쪽)가 지난해 2월 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날 밤 기자회견을 열어 미국을 비난하고 있다. 왼쪽은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 [연합뉴스]

최근 외무상(외무장관)에서 물러난 것으로 파악된 이용호(오른쪽)가 지난해 2월 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날 밤 기자회견을 열어 미국을 비난하고 있다. 왼쪽은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 [연합뉴스]

정부 당국자는 20일 “북한이 지난해 연말 전원회의에서 실시한 인사의 핵심은 고령의 고위 간부들을 퇴진시키고, 경제 분야 인사를 교체한 것”이라며 “당시 인사 대상으로 발표하지 않았던 이용호 외무상이 바뀐 것으로 최근 파악됐다”고 말했다. 북한은 당시 전원회의 결과를 전하면서 석탄공업상, 문화상, 국가계획위원장 등 행정부 장관급을 교체했다고 알렸는데, 여기에 외무상은 포함하지 않았다.

이 외무상의 교체에 대해선 다소 의외라는 평가가 많다. 이 외무상은 2016년 4월 당 핵심인 정치국 위원에, 한 달 뒤엔 외무상에 오르며 명실공히 김 위원장 시대의 실세그룹에 올랐다. 특히, 지난해 베트남에서 열린 2차 북ㆍ미 회담이 결렬된 직후 심야 기자회견에 나서면서 김영철 당 부위원장 등 통일전선부가 주도했던 대미 협상을 꿰차며 북한 외교를 이끌었다.

그는 평양 남산고등중학교와 평양외국어대학(영어과)을 나온 정통 외교관 출신으로, 미국통으로 분류됐던 인물이다. 올해 64세인 이용호는 이명제 조직지도부 부부장의 아들로 출신 배경 역시 탄탄하다. 북한은 개인적 능력 못지않게 충성심과 출신 성분을 뜻하는 이른바 ‘토대’를 간부의 덕목으로 삼고 있는데, 이 분야에선 가장 앞선 인물이다.

최근 외무상에서 물러난 것으로 파악된 이용호(왼쪽)는 지난해 6월 30일 판문점에서 열린 북미 판문점 정상회동 당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배석했다. 맨 오른쪽은 그의 카운터파트인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연합뉴스]

최근 외무상에서 물러난 것으로 파악된 이용호(왼쪽)는 지난해 6월 30일 판문점에서 열린 북미 판문점 정상회동 당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배석했다. 맨 오른쪽은 그의 카운터파트인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연합뉴스]

이 때문에 이 외무상 교체를 문책성 인사가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김 위원장이 언급했던 ‘연말 시한’까지 미국과의 협상에서 진전을 보지 못했고, 그가 외무상에 오른 뒤에도 외교관들의 탈북이 이어져 이에 대해 책임을 물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2018년 말 조성길 이탈리아 대사 대리가 서방에 망명한 뒤 자신의 7촌인 허철(허담 전 대남담당비서의 아들) 외무성 본부당 책임비서를 해임하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조성길 대사 망명 이후에도 외교관들의 망명이 끊이지 않자 이용호도 칼날을 피할 수 없게 된 게 아니냐는 것이다.

당국은 지난해 5명 이상의 북한 외교관이 서방으로 망명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김 위원장은 집권 이후 잦은 인사를 통해 내부 기강을 잡아 왔다”며 “아무리 '토대'가 튼튼해도 과실에 대해선 예외가 있을 수 없다는 점을 보여주려는 게 아니겠냐”고 분석했다.

이 외무상 교체를 계기로 남북관계를 다뤄왔던 통일전선부의 입김이 다시 세지는 게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다른 당국자는 “지난해 하노이 회담이 '노 딜(no deal)'로 끝난 뒤 북ㆍ미 회담을 챙겼던 통일전선부가 한동안 자숙하면서 외무성이 남북관계와 관련한 담화를 발표하는 등 목소리를 냈다”며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 김영철 부위원장이 재기하고, 이번에 이 외무상이 퇴진하면서 다시 통일전선부의 역할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외교 문외한이지만 김영철 부위원장의 사람으로 꼽히는 이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이 외무상에 임명됐다는 관측과 맞물려서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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