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여의도에 복귀하자마자 예상치 못한 곤욕을 치르고 있다. ‘강남 아파트’를 둘러싼 논란이다. 특히 연이은 고강도 부동산 대책을 앞세워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한 문재인 정부 초대 총리였다는 점이 불씨를 더욱 키우고 있다. 야당은 “정부 부동산 정책에 정면으로 역행한다”며 이 전 총리를 정조준하고 나섰다.
발단은 이 전 총리가 최근 서울 강북 최고가 아파트(종로구 ‘경희궁 자이’)에 9억원 수준의 전세 계약을 하면서 비롯됐다. 이와 관련해 한 언론매체는 “이 전 총리가 정부의 전세대출 규제가 시행되기 전 대출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정부가 오는 20일부터 시가 9억원을 넘는 고가주택을 가진 사람들은 전세대출을 받을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의 전세대출 규제 세부시행 방안을 발표했는데, 이 전 총리가 제도 시행을 앞두고 ‘막차’로 전세대출을 받은 거 아니냐는 의혹이었다.
논란이 일자 이 전 총리는 자신이 가진 서울 서초구 잠원동 아파트의 전세자금으로 옮겨갈 아파트 전셋값을 충당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 전 총리는 지난 16일 페이스북을 통해 “저는 1994년부터 살아온 제 아파트를 전세 놓고 그 돈으로 종로 아파트에 전세로 들어간다”고 썼다. 이 전 총리는 총리 재임 시절 삼청동 총리 관저에서 지내는 동안에는 잠원동 아파트를 세 놓지 않고 비워뒀다고 한다. 지난 14일 총리 임기를 마친 이 전 총리는 잠원동 아파트에 3주 가까이 머무른 뒤 2월 초 종로 아파트로 이사할 예정이다.
그런데 이 전 총리의 해명이 다시 새로운 의문을 낳았다. 잠원동 아파트 준공 후 입주 시점이 이 전 총리가 밝힌 1994년이 아니라 그 이후인 것으로 파악되면서다. 이에 이 전 총리는 18일 페이스북을 통해 “제가 혼동했다”며 ‘2차 해명’에 나섰다.
그는 “종로에 살다 1994년 강남으로 이사했고 1999년에 지금 사는 잠원동 아파트(전용면적 25.7평 조합주택)에 전입했다. 총리 퇴임을 준비하던 작년 12월 11일 아파트를 팔려고 내놓았으나 거래 문의가 없고, 종로 이사를 서두르고 싶어 일단 전세를 놓고 전세를 얻었다”고 밝혔다. 이어 “지금 아파트는 팔리는 대로 팔겠다. 착오를 사과드린다”고 했다.
이 전 총리가 자신의 잠원동 아파트를 설명하며 괄호를 넣고 ‘전용면적 25.7평, 조합주택’이라고 부연한 것은 투기 목적이 아닌, 전용면적 20평대의 조합주택이란 점을 부각하기 위한 설명으로 풀이된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에 따르면, 이 아파트의 마지막 거래 가격은 19억 5000만원(2019년 11월)이다. 최근 2년 6개월 동안 7억원가량 올랐다. 이 전 총리의 페이스북에는 지지자들의 응원글이 대부분이었지만, “강남 집값 잡는다고 할 때 왜 안 파신 겁니까?” “안 팔리면 싸게 내놓으세요. 집값 폭등 잘못된 거라면서요?” 등 비판도 적지 않았다.
야당은 “이낙연의 내로남불”이라고 공격했다. 성일종 자유한국당 원내대변인은 19일 논평을 통해 “국토교통부는 여러 차례 초고강도 부동산 대책을 내놓으며 ‘살지 않는 집은 팔라’고 압박해왔다. 그래놓고 국무총리 자신과 정부 고관대작들은 ‘살지 않는 집 보유’로 어마어마한 이익을 보고 있었다”며 “이 전 총리의 ‘똘똘한 한 채’는 그 화룡점정”이라고 비판했다. 권성주 새로운보수당 대변인도 “총리로 부동산 투기억제 정책을 입에 담았던 본인이 똘똘한 강남 아파트는 오랜 기간 품어 키웠다”면서 “강남 집값을 잡겠다며 뒤에서 웃고 있었던 작전세력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여권도 곤혹스러운 모습이다. 더불어민주당 한 초선 의원은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총선을 앞두고 부동산 민심이 예민한데 엉뚱하게 빌미를 준 건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달 청와대 고위 참모들에게 “수도권 다주택자는 한 채만 남기고 팔아라”라고 권고했다. 민주당은 “투기지역 내 2주택 이상 보유 후보자는 한 채만 빼고 팔아야 공천을 주겠다”는 기준을 내놨다. 민주당 관계자는 “너무 엄격하게 만든 부동산 검증대에 우리가 스스로 걸려드는 거 아니냐"고 우려했다.
김형구 기자 kim.hyounggu@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