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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도 근무시간” “밥도 편히 못 먹나” 교육청·노조의 ‘점심 논쟁’

중앙일보

입력

교직원의 점심시간 복무를 두고 교육계 갈등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7월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점심 급식을 배식받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연합뉴스]

교직원의 점심시간 복무를 두고 교육계 갈등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7월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점심 급식을 배식받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연합뉴스]

서울의 한 초등학교 행정실에서 근무하는 A씨는 지난해 10월 교장으로부터 “점심 시간에 복무를 철저히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점심 시간에도 학교 행정실을 비우지 않게 직원들이 번갈아 가며 식사를 하라는 내용이었다.

서울교육청 “점심 때도 행정실 비우면 안돼” #직원ㆍ노조 “매번 밥 혼자 먹으란 말이냐”

직원들이 교내식당에서 함께 식사하면 20~30분 정도 업무 공백이 생기는 점을 우려한 것이다. 교장의 지시 이후 직원들은 한 명씩 돌아가며 식사를 했다. A씨는 “혼자 따로 밥을 먹으니 눈치가 보여서인지 소화가 잘 안 된다. 밥 먹는 게 죄라도 저지르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교직원 점심시간을 둘러싼 갈등이 교육계의 논란거리가 됐다. 점심 시간도 근무 시간이기 때문에 ‘공백 없이 근무해야 한다’는 주장과 교내 식당에서 식사하는 것까지 제재하는 건 부당하다는 불만이 맞서고 있다.

발단은 지난해 10월 서울시교육청이 일선 학교들에 보낸 ‘복무 철저 당부’ 공문이었다. 시교육청 감사관실에서 발송한 공문엔 “학교 중식시간은 법정 근무시간인데도 교직원들이 휴게시간으로 오인하고 사적 목적으로 무단 외출하는 사례가 지속적으로 적발되고 있다. 학교장이 교직원의 복무관리에 더 신경을 써 달라”는 내용이 담겼다.

교육청이 이런 공문을 보낸 데엔 계기가 있었다. 지난해 8월 교육청 점검반이 점심 시간에 서울의 B고의 행정실을 방문했다. 하지만 점검반이 도착했을 때 행정실의 조명은 꺼져 있었고, 출입문은 잠겨 있었다. 교육청은 행정실장 등에게 경위서를 요구했다. 이들은 “원래 행정실장과 다른 직원들이 돌아가며 식사하는데, 마침 그 날엔 행정실장이 사무실 밖에서 교감과 대화 중이었다”고 해명했다.

교육청 관계자는 “사전에 방문 일정을 알렸는데도 사무실을 비운 것은 문제가 있다. 특정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해 전체 학교에 공문을 보냈다”고 설명했다.

교직원들은 점심시간도 근무시간에 포함돼 있다. 점심시간에 급식지도와 민원처리 업무 등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급식을 먹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연합뉴스]

교직원들은 점심시간도 근무시간에 포함돼 있다. 점심시간에 급식지도와 민원처리 업무 등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급식을 먹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연합뉴스]

서울일반직공무원노조는 ‘교육청의 갑질’이라고 반발했다. 직원들이 학교 밖에 있었다면 문제가 되지만, 교내에서 식사하는 것까지 문제 삼는 것은 과도하다는 주장이다.

서일노의 이점희 위원장은 “교육청 관계자의 학교 방문이 예정돼 있으면 행정실 직원들은 점심식사도 하지 말고 기다리라는 것 아니냐”며 “점검을 나간 교육청 직원이 기분이 상해 공문을 보냈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며 비판했다.

반면 교육청 측은 규정상 점심 시간도 근무 시간인 만큼, 근무에 공백이 있으면 안된다는 입장이다. 현재 교사와 마찬가지로 학교 행정직원의 점심 시간은 법정 근로시간에 포함돼 있다. 2000년대까지는 교사만 점심 시간이 근로시간에 포함됐다. 점심 시간에도 급식 등 학생 생활을 지도하는 경우가 잦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2000년대 중후반부터 지방공무원 신분인 학교 직원들의 점심 시간도 근무 시간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들도 점심 시간에 각종 민원을 처리하고 있다는 이유였다. 결국 2010년대 초반 서울 등 상당수 시‧도가 조례 개정을 거쳐 이들의 점심 시간도 근무시간으로 인정했다.

교육청에 따르면 이를 악용하는 교사나 직원도 종종 발생한다. 지난 2018년 6월 서울의 C고에선 점심 시간 수차례 무단 외출을 했던 교사가 경고 처분을 받았다. 휴가‧지각‧조퇴‧외출을 할 때는 교장에게 신청하고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규정을 지키지 않다.

서울교육청 관계자는 “점심 시간 외출은 사실상 관행처럼 굳어져 문제의식을 갖지 않는 경우도 많다”며 “학교장을 중심으로 복무 관리를 철저히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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