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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노트북을 열며

‘인지적 편향’과 두 개의 대한민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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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윤석만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윤석만 사회에디터 겸 논설위원

윤석만 사회에디터 겸 논설위원

‘그린일베’. 녹색 베레모를 착용하는 미 육군 특수부대 ‘그린베레’의 오자(誤字)가 아니다. 네이버의 이미지 색인 ‘그린’과 극우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인 ‘일베(일간베스트)’의 합성어다. 네이버 뉴스 댓글의 내용이 주로 우파 성향을 띤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반대로 다음은 좌파 성향의 글이 많아 ‘좌음’으로 불린다.

지난 2일 기자가 쓴 ‘진중권의 로고스, 유시민의 파토스’ 관련 기사를 보자. ‘조국 사태’를 둘러싼 두 사람의 발언을 분석한 기사로 하루 동안 65만 뷰에 5000개 가까운 댓글이 달렸다. 이중 공감·추천 상위 30개 댓글을 살펴보니 네이버에선 모두 진중권을, 다음에선 전부 유시민을 지지하는 내용이었다. 여기엔 상대방에 대한 강한 혐오도 포함돼 있었다.

이 기사뿐 아니라 정치·경제·사회·문화 할 것 없이 많은 뉴스 댓글이 이런 경향을 보인다. 그런 이유로 네이버 뉴스는 주로 보수 성향 네티즌이, 다음 뉴스는 진보 성향 네티즌이 이용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서로를 비하하는 ‘그린일베’와 ‘좌음’이란 말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노트북을 열며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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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경제학의 창시자로 2002년 노벨상을 받은 대니얼 카너먼은 인간의 의사결정 과정을 시스템 Ⅰ과 Ⅱ로 나눠 설명한다. Ⅰ은 큰 노력 없이 자동적으로 빠르게 작동하지만 Ⅱ는 복잡한 계산과 집중력이 필요하다. 인간을 이성적 존재로 규정한 Ⅱ(주류경제학)와 달리 행동경제학은 비이성적 판단을 하는 Ⅰ의 관점에서 인간을 바라본다. (『생각에 관한 생각』)

이 때 Ⅰ을 설명하는 핵심 개념이 ‘인지적 편향’이다. 평소 자신의 생각과 비슷한 정보만 받아들이고 다른 것은 배척하는 경향이다. 이것이 반복되면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 편향’이 된다. 당장은 Ⅰ이 마음 편할지 몰라도 장기적으론 보편과 상식에서 멀어진다. 나중엔 자기 것만 옳다고 여겨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간주한다.

페이스북이 자신의 취향에 맞는 글만 추천하고, 넷플릭스가 감쪽같이 좋아하는 영화만 골라주는 것도 마찬가지다. 일부러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으면 한쪽에 치우칠 수밖에 없다. 하물며 세상을 바라보는 창인 뉴스의 경우는 어떨까. 포털이든 유튜브든 서로 다른 생각을 마주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그 때문이다. 보고 싶은 뉴스만 보고, 믿고 싶은 사람의 말만 들으면 어느새 나도 몰래 ‘인지적 편향’에 빠져버린다.

현대인들에겐 당장 이해가 안 되거나, 상대 의견이 불편하더라도 이를 마주할 수 있는 용기와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다면 요즘처럼 광장이 두 개로 나뉘는 일도 덜 해지지 않을까.

윤석만 사회에디터 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