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갈수록 못나갈때 대비하라"…신격호 집무실엔 '거화취실'

중앙일보

입력 2020.01.19 18:47

업데이트 2020.01.19 19:01

롯데그룹 창업주인 신격호 명예회장이 19일 별세했다. 향년 99세. [연합뉴스 자료사진]

롯데그룹 창업주인 신격호 명예회장이 19일 별세했다. 향년 99세. [연합뉴스 자료사진]

19일 향년 99세로 별세한 롯데그룹 창업주 고(故) 신격호 명예회장의 집무실엔 ‘거화취실(去華就實·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을 배제하고 내실을 지향한다)’이 쓰인 액자가 걸려 있다. 신 명예회장은 화려한 것을 싫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과 일본을 오갈 땐 수행원 없이 혼자서 서류가방을 들고 비행기를 탔다. 집무실도 크지 않고 소박했다. 신 명예회장이 남긴 말들을 어록으로 정리했다.

고객과의 약속은 어떤 경우에도 지켜야

신 명예회장이 일본에서 우유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며 고학했을 때의 일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어떤 경우에도 우유 배달 시간이 워낙 정확한 것으로 유명했다. 이런 소문에 주문이 늘어나 배달시간을 맞추기가 어려워지자 직접 아르바이트를 고용했다. 아르바이트가 아르바이트를 고용한 것이다. 신격호의 이런 모습에 반한 일본인은 사업 자금을 대줬다. 롯데의 첫 자산이었다.

기업인은 실패할 때도 자기 책임으로 돌려야

신 명예회장은 평소 “기업이 정부와 국민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인은 회사가 성공할 때나 실패할 때 모두 자신의 책임으로 돌려야 한다”며 “기업을 신중하게, 최선을 다해 경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장으로 달려가라

한국과 일본을 한 달씩 오가며 기업을 경영한 신 명예회장은 한국에 오면 롯데백화점이나 롯데마트, 롯데호텔 현장에 불쑥 나타나는 것으로 유명했다. 매장을 둘러보면서 고객에 대한 서비스는 친절한지, 청소는 잘됐는지, 안전 점검은 잘하고 있는지 등을 체크했다. ”고객으로부터, 동료로부터, 협력회사로부터 직접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현장으로 달려가라“고 했다.

과다한 차입금은 만병의 근원

신 명예회장의 무차입 경영 원칙은 90년대 후반 금융위기 때 빛을 발했다. 한국의 잘 나가던 기업들이 외환위기 사태를 겪으면서 지나친 차입 경영 탓에 휘청였을 때 롯데는 큰 어려움 없이 이 사태를 넘겼다. 그는 “몸에서 열이 나면 병이 나고 심하면 목숨이 위태로워진다“며 ”기업에 있어서 차입금은 우리 몸의 열과 같다. 과다한 차입금은 만병의 근원”이라고 강조했다.

잘 모르는 사업 방만하게 하면 결국 국민에 피해

신 명예회장이 계열사 사장들에게 자주 강조했던 말이다. 그는 “잘 모르는 사업을 확장 위주로 방만하게 경영하면 결국 국민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며 “신규 사업은 기존 사업과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고, 핵심사업 역량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신조 덕에 ‘실패를 모르는 기업인’이라는 애칭을 얻기도 했다.

잘 나갈 때일수록 못 나갈 때 대비해야

신 명예회장은 임직원들을 신뢰하면서도 칭찬은 드물었다. 칭찬으로 임원들이 안일해져 방만한 경영을 하게 될까 봐서다. 그는 “CEO는 회사가 잘 나갈 때일수록 못 나갈 때를 대비해야 한다”며 “반대로 실적이 악화될 때는 훗날 좋아질 때를 염두에 두고 투자해야 한다”고 했다. 스스로도 늘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상권은 주어지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

신 명예회장은 잠실에 롯데월드 건설을 추진할 때 반대에 부닥쳤다. 당시 잠실은 황량한 모래벌판에 비가 오면 한강 범람을 걱정하는 유수지였다. 그는 “배후 상권이 없어서 장사가 안될 것”이라고 반대하는 임직원들에게 “상권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좋은 상품과 수준 있는 서비스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고 했다. “두고 보면 안다. 1년만 지나면 교통체증이 날 정도로 상권이 발달할 것”이라던 신격호의 ‘예언’은 현실이 됐다.

추인영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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