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실리콘밸리, 판교] "생산공장 찾아 이스라엘까지 간다"…생리대 스타트업이 흥하는 이유

중앙일보

입력 2020.01.19 07:00

대표적인 여성용품인 생리대는 잘 고르기가 쉽지 않은 제품이다. 주기적으로 구입·사용해야 하는데, 제품이 살갗에 직접 닿기 때문에 성분과 디자인·가격 모두 만족스러운 제품을 찾기 어렵다.

소비자들의 만족도와 상관없이 국내 생리대 시장은 그 동안 유한킴벌리, 한국P&G 등 대기업 몇 곳이 장악해왔다. 약 5000억원 규모의 작지 않은 시장이다. 견고한 이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건 몇몇 스타트업이다. 이들은 국내 시장을 넘어 글로벌 생리대 시장으로까지 과녁을 거둘 만큼 성장하고 있다. 'K-생리대' 열풍을 만들고 있는 여성용품 스타트업들을 알아봤다.

당신은 소형파? 슈퍼파?…생리대도 맞춤형 정기배송 서비스

'소형파'(생리대 소형 1팩+중형 2팩)
'슈퍼파'(탐폰 슈퍼 2팩)
'자유형'(원하는 종류별로 담을 수 있음)

남성 독자들에겐 의아할 수 있지만, 여성 독자들은 단 번에 이해할 용어들이다. 생리대 정기배송 서비스를 하는 스타트업 '해피문데이'는 여성들의 생리 주기, 필요한 생리대의 종류에 맞게 제품을 배송해준다. 매달 생리대가 필요할 때마다 편의점으로 뛰어갈 필요가 없어졌다. 세균 번식 같은 위험을 무릅쓰고 할인행사 때 잔뜩 사서 쟁여둘 필요도 없다. 생리대 정기 배송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 니즈가 갈수록 커지는 이유다.

생리대 정기 배송 서비스 스타트업 '해피문데이'는 여성들의 생리 주기, 필요한 생리대 종류에 맞게 제품을 배송받을 수 있다. 매달, 매번 생리대가 필요할 때마다 편의점으로 뛰어갈 필요가 없어졌다. [사진 해피문데이]

생리대 정기 배송 서비스 스타트업 '해피문데이'는 여성들의 생리 주기, 필요한 생리대 종류에 맞게 제품을 배송받을 수 있다. 매달, 매번 생리대가 필요할 때마다 편의점으로 뛰어갈 필요가 없어졌다. [사진 해피문데이]

소셜 벤처 스타트업 '이지앤모어'는 '생리 전', '생리 중', '생리 후'에 필요한 여성용품을 온라인으로 판매·배송한다. '월경전증후군' 세트에는 PMS증후군(생리전증후군)을 겪는 여성들에게 도움을 주는 따뜻한 팩과 차, PMS 개선에 도움을 주는 감마리놀렌산 영양제 등이 들어있다. 생리로 인한 신체·호르몬 변화에 도움을 주는 제품들이다.

생리를 처음 시작한 '초경 박스'와 완경기에 들어선 여성들을 위한 '갱년기 엄마 선물'도 있다. 이지앤모어는 상품을 설명하면서 줄곧 폐경기라는 말 대신 완경기라고 표현한다. "완경이 처음인 엄마를 위한 선물은 없을까?", "안구건조증 환자의 90%가 완경을 한 여성이라는 것 알고 계셨나요?"와 같은 세심한 상품 안내 문구가 소비자 눈길을 끈다.

여성용품 관련 온라인 쇼핑몰 '이지앤모어'는 여성들에게 시기별로 필요한 제품들을 판매하고 있다. [사진 이지앤모어]

여성용품 관련 온라인 쇼핑몰 '이지앤모어'는 여성들에게 시기별로 필요한 제품들을 판매하고 있다. [사진 이지앤모어]

100% 여성 대상 비지니스이니 여성 창업자들만 있을 것이란 생각은 오산이다. 생리용품 맞춤 배송 앱 '먼쓸리씽'은 이원엽 씽즈 대표가 아내를 위해 창업해 만들었다. 자궁근종으로 고생하던 아내를 지켜보던 이 대표는 '자궁근종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생리대 사용도 중요하다'는 생각에 이런 서비스를 만들었다고 한다. '먼쓸리씽'은 스마트폰 앱에 생리 주기를 입력하고 배송 신청을 하면 무료 샘플을 제공한다. 시범적으로 제품을 써보고 자신에게 진짜 잘 맞는 제품을 고르라는 것이다.

스타트업들이 이 시장을 휘젓기 시작하자 대기업들도 뛰어들고 있다. CJ오쇼핑은 홈쇼핑 업계 최초로 생리대 정기배송 사업을 시작했다. 생리대도 이제 신문·꽃·생수처럼 구독하는 제품이 된 것이다.

화학물질 파동 이후 '고품질 생리대' 수요 늘어

생리대가 뭐 그리 특별할 수 있느냐고, 비슷비슷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알고보면 디자인도 성분도 제각각이다. 보풀이 잘 일어나는 제품과 그렇지 않은 제품, 같은 유기농 순면 제품이라도 시트에 작은 구멍이 있는 것과 없는 것…. 예민한 소비자들에겐 중요한 차이다.

생리대 성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은 2017년 생리대 유해물질 파동 이후다. 생리대에서 유해 화학 물질이 검출됐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생리대에 들어가는 화학 물질 성분이 인체에 해롭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제품에 '천연', '유기농'이라는 문구가 들어가지 않으면 유해한 듯 보이기도 한다. 이런 시장 변화에 따라 '고품질'을 앞세운 생리대 스타트업들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해피문데이에 따르면, 이 회사의 생리대는 인조 섬유 대신 천연 재료인 목화를 사용했다. 화학 성분(염소표백·중금속 등)은 넣지 않았다. 원료에 대한 정보와 제품 생산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했다. 소비자 신뢰를 사기 위해서다. 현재 해피문데이의 생리대 제품은 국내에서, 탐폰 제품은 이스라엘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다. 김도진 해피문데이 대표는 "국내에는 우리의 높은 기준에 맞는 생산 공장을 찾을 수 없어 이스라엘까지 가게 됐다"고 말했다.

이들이 유통 대기업들보다 품질에 자신 있어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기업들은 아무래도 회사 덩치가 크고 생산 라인 하나하나가 매우 크니까 제품과 성분을 바꾸는 결정하는 게 오히려 더 어려울 거예요. 그리고 이미 제품이 충분히 잘 팔리고 있기 때문에 굳이 무리해서 제품 성분을 바꿀 필요가 없겠죠. 생활용품 혹은 제지 회사가 상품 라인업 중 하나로 생리대를 파는 것과 저희처럼 여성용품에만 집중해서 파는 것은 품질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중동·미국 시장서 활약하는 'K-생리대' 

한국 스타트업이 만든 생리대는 글로벌 시장에서도 호평을 받고 있다. '펨테크'를 구현한 대표 상품으로 꼽힌다. 최근 실리콘밸리 등에서는 '펨테크'(Femtech)라는 용어가 널리 쓰인다. 여성(Female)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로 여성들의 생활을 개선하는 기술이나 제품을 가리키는 말이다.

여성용품 스타트업 라엘도 처음부터 미국 시장을 타깃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라엘의 현재 매출 70%는 미국에서 나온다. 미국 아마존에서 라엘 제품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아마존 캡처]

여성용품 스타트업 라엘도 처음부터 미국 시장을 타깃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라엘의 현재 매출 70%는 미국에서 나온다. 미국 아마존에서 라엘 제품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아마존 캡처]

여성용품 스타트업 라엘도 처음부터 미국 시장을 타깃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재미교포 출신 한국계 여성 3명이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사무실을 내고 생리대 제품을 제조, 판매하기 시작했다. 라엘의 현재 매출 70%는 미국에서 나온다. 미국 아마존의 생리대 카테고리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지난해 10월엔 미국 유통 체인 '타겟'에도 탐폰 신제품을 입점했다. 성장 가능성을 인정받은 라엘은 2018년 국내외 투자회사로부터 200억원을 투자받았다.

해피문데이는 중동 시장에서 인정받았다. 중동은 품질이 좋은 생리대에 대한 수요는 있었지만,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 때문에 여성용품을 대대적으로 홍보할 수 없는 지역이었다. 출산율은 높지만 여성 인권에 대한 인식이 낮다는 점에 착안, 김도진 대표가 쿠웨이트 국내를 직접 뚫었다. 강연과 행사 등 오프라인 이벤트를 열어 여성용품의 중요성을 알리고 다녔다. 해외 매출은 해피문데이 전체 매출의 10%를 차지한다.

하선영 기자 dynami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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