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호주 산불 5개월째···그 연기 지구 한 바퀴 돌아 호주 왔다

중앙일보

입력

호주 산불로 인해 귀와 다리에 화상을 입은 주머니 여우가 야생동물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EPA=연합뉴스]

호주 산불로 인해 귀와 다리에 화상을 입은 주머니 여우가 야생동물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4일(현지시각)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지역의 캥거루 계곡. 산불에 불타 숯으로 검게 변한 나무들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습니다.

잿더미가 된 땅 위에는 아직 꺼지지 않는 불씨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곳곳에는 도망가지 못하고 불에 타 죽은 캥거루 사체들이 널브러져 있습니다.

지난해 9월부터 시작된 호주 산불은 다섯 달째인 아직도 꺼지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 호주에 비가 내리면서 불길이 줄어들고는 있지만 산불을 완전히 진압하기에는 역부족입니다.

학자들은 이번 산불을 놓고 “10년 전부터 예견됐던 기후 재앙이 현실이 됐다”며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스토리는 영상으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호주 산불이 남긴 피해의 기록들 

캥거루〈br〉 한마리가 뉴사우스웨일즈 남부 해안의 콘졸라 공원에서 산불을 피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다. [사진 그린피스]

캥거루〈br〉 한마리가 뉴사우스웨일즈 남부 해안의 콘졸라 공원에서 산불을 피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다. [사진 그린피스]

지금까지 호주 산불이 남긴 피해의 기록들은 말 그대로 처참한 수준입니다.

대한민국보다 넓은 10만7000㎢의 면적이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28명이 화마(火魔)에 목숨을 잃었고요. 1400채가 넘는 집이 전소했습니다.

캥거루와 코알라, 주머니쥐 등 야생동물들도 10억 마리 넘게 희생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코알라는 워낙 발이 느리다 보니 제대로 도망도 가지 못하고 말 그대로 떼죽음을 당했습니다.

이에 전 세계는 물론 국내에서도 세계자연기금(WWF) 등을 통해 피해 복구를 돕기 위한 기부 행렬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산불 연기 지구 한 바퀴 돌았다

호주 캔버라에서 한 남성이 마스크를 쓰고 있다. [AP=연합뉴스]

호주 캔버라에서 한 남성이 마스크를 쓰고 있다. [AP=연합뉴스]

산불로 인해 발생하는 대기오염도 심각합니다.

하루 담배 37개를 피는 것과 맞먹는다는 고농도의 미세먼지가 호주 시드니 등을 덮쳤습니다.

산불로 발생한 미세먼지는 바람을 타고 뉴질랜드와 태평양 건너 남미 대륙까지 퍼졌는데요.

지구 한 바퀴를 돌아 호주로 다시 돌아온 산불 연기(검은 원)와 새로 형성된 연기(빨간 원). [미 항공우주국(NASA) 제공]

지구 한 바퀴를 돌아 호주로 다시 돌아온 산불 연기(검은 원)와 새로 형성된 연기(빨간 원). [미 항공우주국(NASA) 제공]

미 항공우주국(NASA)은 호주에서 시작된 산불 연기가 지구를 한 바퀴 돌아 다시 호주로 돌아왔다며 연기의 이동 경로가 담긴 위성사진을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은 북반구에 있기 때문에 미세먼지가 넘어올 가능성은 작지만, 호주 산불이 지구의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12년 전 경제학자 예언이 현실로

호주 뉴사우스웨일즈의 캥거루 계곡에서 산불에 불타 숯으로 변한 나무들. [사진 그린피스]

호주 뉴사우스웨일즈의 캥거루 계곡에서 산불에 불타 숯으로 변한 나무들. [사진 그린피스]

호주에서 산불은 과거에도 건기가 되면 매년 발생했는데요.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습니다. 산불이 발생하기 전부터 호주 전역이 극심한 가뭄과 고온에 시달리면서 불길이 잡히지 않고 걷잡을 수 없이 번진 거죠.

지난해 호주는 역사상 가장 더운 해로 기록됐고, 비도 평소의 절반밖에 오지 않았습니다. 많은 학자가 이번 호주 산불 사태를 기후변화가 불러온 재난이라고 주장하는 이유입니다.

사실 10년 전부터 호주에 이런 기후재앙이 올 것이라는 과학자들의 경고가 있었습니다.

2008년 경제학자인 로스 가너는 호주 정부의 요청으로 기후변화 조사 보고서를 만들었는데요.

그는 보고서에서 “온실가스를 줄이지 못하면 호주의 산불시즌은 더 일찍 시작하고 오랜 기간 지속되며 강도도 더 세질 것”이라며 “2020년이 되면 그런 현상들이 직접적으로 관찰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불행하게도 그 예언은 이제 현실이 됐습니다.

“자동차 1억 대 이산화탄소 배출”

호주에서 발생한 산불로 인해 다리와 꼬리를 다친 새끼 캥거루. [EPA=연합뉴]

호주에서 발생한 산불로 인해 다리와 꼬리를 다친 새끼 캥거루. [EPA=연합뉴]

앞으로가 더 문제입니다. 호주 산불로 지금까지 최소 4억t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됐는데, 호주 한 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인 3억4000만t을 이미 넘었습니다.

자동차 1억 대를 1년 동안 탔을 때 나오는 양입니다.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1% 수준이죠.

이렇게 산불로 배출된 이산화탄소가 지구온난화를 가속하고, 지구온난화가 다시 산불의 빈도를 늘리고 강도도 더 심각하게 만드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합니다.

김지석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스페셜리스트는 “기후변화 대응에 가장 적극적인 독일에서 지난 1년간 5000만t을 감축했는데 호주에서 이번 산불로만 8배가 넘는 양이 배출된 것”이라며 “단순히 환경적인 이유가 아니라 현 경제·사회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기후변화 대책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