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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히피의 도시'에서 '모빌리티 천국' 된 이유

중앙일보

입력

전기를 동력으로 레일을 달리는 샌프란시스코의 상징 케이블카. '케이블카'로 불리지만 케이블로 연결돼 있지 않다. 샌프란시스코는 3개 노선에 40여 대의 케이블카를 운영한다.[사진 샌프란시스코관광청]

전기를 동력으로 레일을 달리는 샌프란시스코의 상징 케이블카. '케이블카'로 불리지만 케이블로 연결돼 있지 않다. 샌프란시스코는 3개 노선에 40여 대의 케이블카를 운영한다.[사진 샌프란시스코관광청]

샌프란시스코엔 언덕을 가로지르는 40대의 케이블카가 있다. [사진 샌프란시스코관광청]

샌프란시스코엔 언덕을 가로지르는 40대의 케이블카가 있다. [사진 샌프란시스코관광청]

케이블로 연결된 도심 전차는 케이블카가 아니라 '스트리트 카'로 불린다. 케이블카보다 운행 대수가 많다. [사진 샌프란시스코관광청]

케이블로 연결된 도심 전차는 케이블카가 아니라 '스트리트 카'로 불린다. 케이블카보다 운행 대수가 많다. [사진 샌프란시스코관광청]

"샌프란시스코에 가게 되면 머리에 꽃을 꽂으세요." 

베트남 전쟁(1960~75년) 당시 울려 퍼진 스콧 메킨지의 노래(1967년 발매) 가사처럼 미국 샌프란시스코는 히피의 상징과도 같은 도시였다. 히피 운동은 '플라워 무브먼트'로 불리기도 했다. 한데, 샌프란시스코는 지금은 다양한 모빌리티가 실험되고, 실제로 펼쳐지는 스마트 모빌리티 시티로 거듭나고 있다. 히피의 도시였던 시절 제도권과 거리를 둔 '반(反)문화' 성향은 첨단 기술과 신문물을 선입견 없이 빨아들이는 열린 마인드로 변모했다. 모빌리티 전문가들은 실리콘밸리에서 유입되는 신기술 못지않게 시민의 모빌리티 수용성이 샌프란시스코를 미래 도시로 키웠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 6일 세계 최대 가전쇼 '2020 CES'가 열린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은 "2028년 해외서 '도심 항공 모빌리티(UAM)'을 선보일 것"이라고 해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정 부회장이 밝힌 '해외 서비스' 지역은 샌프란시스코가 유력하다. 실제 이상엽 현대디자인센터장은 UAM의 발이 될 자율주행 셔틀 등 '목적 기반 모빌리티(PBV)' 디자인에 대해 "샌프란시스코의 케이블카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했다.

샌프란시스코는 1873년 앤드류 스미스가 발명한 케이블카를 세계 최초로 설치한 도시다. 100여 년이 흐른 2009년, 트래비스 캘러닉은 세계 최초로 차량 공유 서비스 우버를 샌프란시스코에서 론칭했다. 라임·버드 등 전동 킥보드 기업도 이 도시에서 태동했으며, 바이크 셰어(공유)·구글 버스 등 다양한 교통 네트워크 회사(TNC)가 서비스 중이다. 또 샌프란시스코에서 자율주행을 테스트하는 기업만 40여 곳이 넘는다.

모빌리티 전문가 차두원 한국인사이트연구소 박사는 "샌프란시스코는 새로운 교통수단을 무조건 반대하거나 금지하지 않는다"며 "다양한 서비스 시행 후 시민의 안전과 효용 등을 고려해 규제를 정비하고 혁신적인 기술을 수용할 타협점을 제시하며, 미래 모빌리티의 주도권을 갖게 됐다"고 했다.

샌프란시스코시 홈페이지의 '오늘의 교통 네트워크 회사 상황판(TNCs Today)'. 우버 등 TNC의 비즈니스 상황을 보여준다. [사진 샌프란시스시 홈페이지 캡처]

샌프란시스코시 홈페이지의 '오늘의 교통 네트워크 회사 상황판(TNCs Today)'. 우버 등 TNC의 비즈니스 상황을 보여준다. [사진 샌프란시스시 홈페이지 캡처]

① '섬'에서 탈출구를 찾다 

지난해 여름, 샌프란시스코는 세계 최초로 '저속 자율주행 셔틀'을 도심에 적용했다. 콘트라코스타 카운티를 중심으로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있지만, 3년간의 실증과 시민사회의 협의를 거쳐 실제 도로에 적용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혁신으로 받아들여진다.

자율주행 셔틀은 서울처럼 교통 체증을 겪고 있는 샌프란시스코가 짜낸 묘안이었다. 샌프란시스코는 주거 지역에서 바트(BART·도심 철도)까지 자가용으로 이동하며, 이후 도심으로 진입한다. 그러나 출퇴근 시간 BART까지 가는 4~6㎞는 늘 정체 구간이었다. 샌프란시스코는 이 구간에 전용 차선을 통한 자율주행 셔틀 운행을 결정했다. 서비스 초기엔 한 차선을 뺏긴 자가용을 이용하는 시민의 불평이 많았지만, 40분 이상 걸리는 출퇴근 시간이 10분 안팎으로 줄어들자 생각이 바뀌었다. "자율주행이 상용화되면 차량 정체가 줄어들 것"이라는 자율주행의 순기능이 현실이 된 셈이다.

문영준 한국교통연구원 국가혁신클러스트R&D(세종시) 연구단장은 "샌프란시스코는 금문교와 베이 브릿지를 통해 도심으로 진입하면 '꽉 막힌 섬'이 된다. 이런 핸디캡을 샌프란시스코 당국은 BART와 자율주행 셔틀 등 새로운 모빌리티를 통해 해결점을 찾았다"며 "도시의 공간 구조를 신 모빌리티를 통해 개편하려는 전략"이라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도심 항공 모빌리티가 적용되면 지상과 항공으로 도심 교통을 더 분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② 입과 입술, 실리콘밸리와 샌프란시스코 

폴크스바겐 뉴스룸은 최근 '미래의 길에서(On the trail of the future)'라는 리포트를 통해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연례 기술 회의엔 팀 쿡(애플 CEO) 등 업계 거물은 물론 버락 오바마(전 미국 대통령), 에밀리아 클라크(드라마 '왕좌의 게임'에 출연한 여배우) 등 수천 명의 사람이 모인다. 면적당 디지털 전문가 비율이 가장 높은 도시일 것"이라고 했다. 폴크스바겐은 2016년부터 샌프란시스코에서 첨단 기술팀을 가동 중이다.

샌프란시스코 스카이라인. [사진 폴크스바겐 뉴스룸]

샌프란시스코 스카이라인. [사진 폴크스바겐 뉴스룸]

샌프란시스코가 디지털·모빌리티 등 인재가 모이는 실리콘밸리 근처에 있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엔 구글·페이스북 본사 등 ICT 기업이 몰려 있어 기술 회의 등이 수시로 열린다. 무엇보다 실리콘밸리에 자리 잡은 IT·모빌리티 스타트업은 샌프란시스코 도심·외곽을 신 기술을 실증하기 위한 테스트 베드로 삼고 있다. "열린 마인드와 정책적 개방성"이 첫 번째 이유다.

샌프란시스코 인근에 자리 잡은 버클리·스탠퍼드 등 대학 연구기관도 신 모빌리티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특히 자율주행과 관련해선 버클리대학 연구기관 '패스(PATH)'가 주도하는 모양새다. 김규옥 한국교통연구원 미래차교통연구센터장은 "버클리 연구소 PATH에서 사실상 전 세계 자동차 업계의 자율주행 방향성을 선도하고 있다. 이 연구소의 스티븐 슐래도버 교수는 1990년대부터 자율주행 차 기술을 이끈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어 "자율주행은 연구·개발과 함께 인프라가 구축돼 있어야 한다. 현대차 같은 대기업이 새로운 모빌리티를 구현하려면 스타트업이나 작은 기업과 손잡아야 하는데 샌프란시스코는 이런 점에서 최적의 도시"라고 말했다.

또 도심 항공 모빌리티 등 신기술이 서비스되면 샌프란시스코 외곽 팔로 알토 등 고급 주거지 거주자의 역할이 기대된다. 문 단장은 "도심 항공 모빌리티는 초기 서비스 가격이 비쌀 것이다. 이때 얼리어답터에 고소득자 계층인 이들이 새로운 모빌리티의 마중물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③ '히피 정신'이 열린 마인드로 

2년 전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정부와 민간 모빌리티 분야 전문가 2500여 명이 모여 '자율주행차 심포지엄'을 열었다. 향후 자율주행 정책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심포지엄 한 달 전엔 우버가 자율주행을 테스트하던 중 보행자를 친 사고가 나 샌프란시스코에선 이슈가 됐다.

히피세대의 본거지였던 샌프란시스코 시티라이트 북스토어. 중앙포토

히피세대의 본거지였던 샌프란시스코 시티라이트 북스토어. 중앙포토

이 때문에 당시 업계는 정책 당국이 자율주행을 제한하는 방안을 발표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알레인 차오 미국 교통부 장관은 "자율주행은 궁극적으로 차량 안전을 지향하기 있기 때문에 사고 발생에도 불구하고 기술 개발과 지원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규옥 센터장은 "이런 결정이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 발표된 건 샌프란시스코 시민의 열린 마인드와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 자율주행차 심포지엄은 매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다.

샌프란시스코가 신 모빌리티에 관대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샌프란시스코는 지난해 말 'TNC 세금' 법안을 통과시켰다. 우버·리프트 등 TNC 업체에 일정 정도의 세금을 물리는 법안이다. 우버 풀과 같은 공유 승차의 경우 0.1~0.2 달러, 단독 승차는 약 0.4~0.6달러의 세금을 부과할 계획이다. 샌프란시스코 교통국은 이를 통해 한해 3000만~3500만 달러(350억~400억)의 재원을 마련해 자전거·도보 등 친환경 교통수단에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차두원 박사는 "세금 부과는 신 모밀리티의 제도권 편입으로 볼 수 있다. 한편으론 상생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또 샌프란시스코 당국은 BART에 앞으로 11년간 8억 달러(약 9000억원)를 투입할 것이라고 16일 밝혔다. 신모빌리티에서 나온 재원을 대중교통에 투입해 대중교통 사용자를 간접 지원한다는 구상이다.

④세종시는 샌프란시스코가 될 수 있을까

자율주행 실증 도시는 샌프란시스코 말고도 스톡홀름(스웨덴)·오슬로(노르웨이)·리옹(프랑스)·바르셀로나(스페인) 등이 더 있다. 한국도 스마트 시티 시범 도시로 지정된 세종에서 올해 자율주행 실증에 들어간다. 늦었지만, 미래 모빌리티를 비롯한 스마트 시티의 실험장이 열린 셈이다. 문영준 단장은 "올해 4대로 시작하고 내년 6대를 추가해 3년간 실증한 후 2023년 20대로 시범 서비스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험 운행되는 세종시의 자율주행 셔틀버스. [연합뉴스]

시험 운행되는 세종시의 자율주행 셔틀버스. [연합뉴스]

세종시에서 실증에 들어가면 자율주행 안전성 등이 도마 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샌프란시스코는 자행주행 셔틀을 운행하기 전 3년 동안 해군기지에서 시범 운행하며, 시민에게 미래 모빌리티를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다. 문 단장은 "3년 간 시범 운영하게 되면 꼭 긍정 일변도가 아닌, 다양한 시민 반응이 나올 것"이라며 "미래 모빌리티에 대한 시민 공감을 끌어내는데 정부가 공을 들여야 하고, 시민들도 공공의 이익을 염두에 둔 넓은 안목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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