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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관광객 한국 다시 찾는다? ’한한령 유효‘ 확실한 한 증거

중앙일보

입력

지난 10일 서울 중구 롯데 면세점 본점 앞엔 붉은 깃발이 나부꼈다. 대규모 쇼핑 행렬을 이끄는 관광 가이드가 든 깃발이다. 건물 앞은 이들이 인솔하는 단체 관광객들로 붐볐다. 말 그대로 문전성시였다. 관광객들은 각자 살 쇼핑 목록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중국 선양 건강식품 제조회사 이융탕(溢涌堂) 임직원 및 관광객들이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신라아이파크면세점을 찾아 쇼핑을 하고 있다.[뉴시스]

중국 선양 건강식품 제조회사 이융탕(溢涌堂) 임직원 및 관광객들이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신라아이파크면세점을 찾아 쇼핑을 하고 있다.[뉴시스]

이들이 주로 찾은 곳은 주로 한국 브랜드였다. 휠라와 같은 의류, 정관장 등 건강식품 또는 다양한 한국 화장품 브랜드에 인파가 몰렸다. 관광객들은 이날 하루에만 약 1000여 명이 시간대와 조를 나눠 롯데면세점과 용산 신라아이파크면세점 등을 찾았다.

단체 관광객의 정체는 중국 랴오닝성 선양시에 본사를 둔 건강웰빙식품 판매기업 ‘이융탕(溢涌堂)’ 그룹 직원이다. ‘이융탕 2020 한국연회’ 참석을 위해 지난 7일 5박 6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았다. 중국 기업들은 춘제(春節)를 앞두고 직원을 호텔 등에 불러 대접하는 송년회를 연다. 이융탕 그룹도 이를 한 것이다.

그런데 장소가 예년과 달랐다.

인도네시아와 호주에서 열었던 행사를 인천 송도의 한 호텔에서 개최했다. 연회 행사는 9일 하루뿐이었다. 5000여명의 이융탕 직원들은 나머지 한국 일정엔 관광과 쇼핑을 했다. 이융탕 직원들은 인천의 호텔 1120개 객실에 머물며 면세점뿐 아니라 경복궁, 롯데월드, 월미도, 인천 차이나타운 등을 돌아다녔다. 회사가 송년회 참석을 겸해 격려 차원에서 직원에 해외여행을 시켜주는 이른바 ‘인센티브 관광’이다.

중국 건강웰빙식품·건강 보조기구 판매기업 '이융탕(溢涌堂)' 임직원 5000여명이 9일 오전 인천시 연수구 송도컨벤시아에서 열린 '이융탕 2020 한국연회'참석하고 있다. [뉴스1]

중국 건강웰빙식품·건강 보조기구 판매기업 '이융탕(溢涌堂)' 임직원 5000여명이 9일 오전 인천시 연수구 송도컨벤시아에서 열린 '이융탕 2020 한국연회'참석하고 있다. [뉴스1]

중요한 건 중국 기업의 한국 인센티브 관광이 흔치 않았다는 점이다.

정확히는 3년여 동안 그랬다. 지난 2017년 한국 정부가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하자 중국 정부가 한한령(限韓令) 조치를 취하면서다. 중국 단체 관광객의 한국행 발길이 뚝 끊겼다. 중국 정부가 비공식적으로 단체 관광을 막았기 때문이다.

지난 2017년 중국 관광객들이 3일 오전 인천공항에서 입국심사를 받고 있는 모습.[중앙포토]

지난 2017년 중국 관광객들이 3일 오전 인천공항에서 입국심사를 받고 있는 모습.[중앙포토]

변화는 숫자로 확연히 드러났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한국을 방문한 중국인 관광객 수는 사드 배치 이전인 2016년 807만명으로 최고점을 찍었지만, 사드가 배치된 2017년 417만 명으로 반 토막이 났다. 2018년 479만 명, 2019년 501만 명으로 조금씩 회복 중이지만 여전히 사드 사태 이전의 절반을 갖 넘긴 수준일 뿐이다.

그랬던 기류가 최근 들어 바뀌고 있다.

지난해부터 중국 기업의 인센티브 관광이나 수학여행단이 다시 한국을 찾고 있어서다. 중국 광저우에 위치한 의약·기능식품 회사 안여옥 임직원 3000여명이 지난해 9월 인천을 찾았다.
이융탕 그룹의 방문이 주목을 받은 건 특히 규모 때문이다.

민민홍(앞줄 왼쪽에서 7번째) 인천관광공사 사장과 윤상수(8번째) 인천시 국제관계대사, 중국 건강식품ㆍ생활용품 제조사 이융탕(溢涌堂)의 푸야오(富饒ㆍ9번째) 회장, 이융탕 임직원 등이 8일 오후 인천 송도국제도시 트리플스트리트 스퀘어광장에서 열린 이융탕 거리 제막식 행사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중앙포토]

민민홍(앞줄 왼쪽에서 7번째) 인천관광공사 사장과 윤상수(8번째) 인천시 국제관계대사, 중국 건강식품ㆍ생활용품 제조사 이융탕(溢涌堂)의 푸야오(富饒ㆍ9번째) 회장, 이융탕 임직원 등이 8일 오후 인천 송도국제도시 트리플스트리트 스퀘어광장에서 열린 이융탕 거리 제막식 행사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중앙포토]

그룹 임직원 5000여명이 한국을 방문한 건 2017년 이후 중국 인센티브 단일 관광객 수로는 가장 크다. 박남춘 인천시장, 안영배 한국관광공사 사장 등 한국의 주요 인사들이 이 그룹의 연회 행사에 참석했던 것도 이런 이유였다.

중국 장쑤문광국제교류센터가 모집한 3500명 규모의 중국 초·중생 수학여행 단체 관광객이 지난 10일부터 다음 달까지 7회에 걸쳐 서울과 인천, 대구 등지를 방문한다. 이 역시 최근 3년 내 단일 수학여행 단체로는 가장 큰 규모다.

[테크웹 홈페이지]

[테크웹 홈페이지]

중국 미디어도 기존과 다른 행보를 보인다. 10일 바이두(百度) 디투(地圖)가 공개한 올해 춘제 특별 운송 여행 예측 보고서에 따르면, 춘제 기간(24~30일) 중국인이 가고 싶어 하는 해외 관광 도시 3위가 서울이다. 1위가 방콕, 2위는 도쿄였다. 중국 관광업계에선 춘제와 노동절, 국경절 등 주요 연휴 때면 국내외 인기 관광지를 선정해 발표한다. 하지만 사드 사태 이후엔 한국 관광지는 조사 대상에서 빠지거나, 순위 발표에서 아예 제외되곤 했었다. 그런데 이번엔 서울이 공식 순위에 집계된 것이다.

섣부른 낙관론을 펼쳐선 안 된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기업과 학교가 주관하는 단체여행은 늘어나고 있지만, 일반 관광객의 단체여행에선 아직도 제약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씨트립이 14일 게시한 '태국+한국' 연계 단체 관광 상품.[씨트립 홈페이지 캡처]

씨트립이 14일 게시한 '태국+한국' 연계 단체 관광 상품.[씨트립 홈페이지 캡처]

중국 여행사들의 움직임에서 알 수 있다. 중국 최대 여행 사이트 '씨트립'은 최근 태국과 한국을 묶은 단체 여행 상품을 온라인에서 판매했다. 태국 방콕과 서울을 방문하는 4박 5일 일정이었다. 하지만 이를 한국 언론이 보도하자 지난 14일 상품 판매를 중단하고 홈페이지에서 관련 게시물을 삭제했다. 중국국제여행사(CITS), 중국청년사(CYTS) 등도 홈페이지에서 한국 단체여행과 관련된 상품을 60여 개 판매하다가 13일 1개씩만 남겨놓고 모두 삭제했다.

한국 언론 보도 이후 14일 씨트립에선 '태국+한국' 단체 관광 상품이 삭제됐다. [씨트립 홈페이지 캡처]

한국 언론 보도 이후 14일 씨트립에선 '태국+한국' 단체 관광 상품이 삭제됐다. [씨트립 홈페이지 캡처]

한국 여행업계에선 중국 여행사들이 여전히 중국 정부의 눈치를 보고 있어 벌어진 일이라고 해석한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실제로 중국에서 오프라인 한국 단체 관광이 허용되고 있는 성·직할시는 베이징·상하이·충칭·장쑤·허베이·산둥의 6개뿐이다. 크루즈 관광, 전세기 이용 등 고가의 상품은 여전히 비공식적으로 판매가 금지되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 서울 명동 거리에서 중국인 관광객들이 관광 안내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서울 명동 거리에서 중국인 관광객들이 관광 안내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진종화 한국관광공사 중국팀장은 “씨트립은 중국 관광객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핵심 여행 사이트”라며 “이곳에서 한국 여행 상품을 판매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여전히 한한령이 유효하다는 걸 뜻한다”라고 말했다.

진 팀장은 그러면서 “업계에선 올해 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이 이뤄지면 한한령 조치가 완전히 풀릴 거라고 기대하지만, 중국 정부의 움직임을 함부로 예단할 수 없다”며 “무엇보다 사드 사태 이후 한국 내 반중 감정 못지않게 커진 중국 내 반한 감정을 누그러뜨리는 것이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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