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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영의 빅픽처] ‘구조적 변화’ 이끌 지도자·정치세력을 기다리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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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0호 31면

김환영 대기자/중앙콘텐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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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구조에 대한 인상적인 기사 두 편, 혹은 장면을 접했다.

구조적 변화는 초당파적 국가 과제 #국익 아닌 당리당략 위한 거부세력 #범여권이든 범야권이든 사라져야 #나라 망친 잘못 반복해서 되겠나

장면 하나. 정아영 시각장애인 권리보장연대 대표는 17일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장애인 문제를 다룰 때 희망이나 극복 같은 주제로 접근하지 말고 정치나 사회 문제에 대해 많은 장애인이 말할 수 있도록 인식과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

장면 둘. 미국 콜비칼리지 사회학과 교수인 닐 그로스는 지난해 7월 31일 자 뉴욕타임스에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들은 왜 ‘구조적(structural)’이라는 말을 반복하는가”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그로스 교수는 민주당 후보들이 ‘구조적인 변화’ ‘구조적인 민주개혁’ ‘구조적인 불평등’처럼 ‘구조’라는 말을 좋아한다고 지적했다. 그로스 교수는 ‘구조’라는 말에 대해 부정적이다. 역사를 살펴보면, 특히 사회적인 구조가 생각과 달리 좀처럼 잘 바뀌지 않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이유에는 인간의 행동이나 제도 운용에 영향을 미치는 뿌리 깊은 문화적 요인, 비공식적인 규칙 같은 게 있다는 것이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대체로 진보·좌파가 ‘구조’를 좋아하는 성향이 있다. 보수·우파는 상대적으로 ‘구조’의 존재에 대해 회의적이다. 가장 큰 구조의 단위로 국제사회와 국내사회가 있다. 총리로서 1979년에서 1990년까지 영국을 이끈 마거릿 대처(1925~2013)는 “사회라는 것은 없다”고 말한 것으로 유명하다. 얄궂게도 대처 총리야말로 영국 사회의 혁명적인 구조 변화를 이끌었다. 새로운 구조의 등장에 맞는 정책을 펼치는 것은 초당파적인 문제인 것이다. 우리나라 보수파 또한 과거에 대한 집착을 버린다면, 시대의 변화에 필요한 구조적인 변화를 이끌 수 있다.

빅피처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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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라는 말을 좋아하건 좋아하지 않건 일단 구조는 존재하는 것 같다. 구조는 세상을 이해하는 유용한 개념이다. 만물에는 구조가 있다. 경제구조·정치구조·국제정치 구조가 있다. 우리 몸도, 우리 뇌도 마음도 하나의 구조다. 마치 하나의 생명체처럼 구조는 생로병사, 발전과 쇠퇴를 겪는다. 구조적인 변화의 시기가 있다.

한가지 개념에 집착하면 온 세계가 그 개념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인구 고령화도 인공지능(AI)시대의 도래도 구조적인 변화다. ‘지금까지 체험해보지 못한 나라’는 곧 ‘구조적으로 다른 나라’다. ‘적폐 청산’의 궁극적인 목표는 ‘구조적으로 적폐가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국가개조’ 또한 결국 ‘구조적인 변화’다.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의원이 표방하는 ‘국가 대개조’ 또한 ‘구조적인 변화’와 같은 뜻이다. 오늘날 한국과 북한의 차이는 또한 리더십 차이이기 전에 구조의 차이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구조적인 결합이 성패를 결정한 것이다.

‘구조적 변화’의 필요성이 수사적인 도구에 머물 수 있는 때가 있다. 그런 단계에서는 좀 여유가 있다. 하지만 더는 미룰 수 없는 데드라인의 순간은 언젠가 들이닥친다. 비관적으로 이야기한다면, 한국 정치와 경제와 사회의 구조적인 변화는 이미 늦었는지도 모른다. 아직은 시간적 여유가 남아있으면 참 좋겠다. 한 방울의 물이 잔을 넘치게 한다. 한 방울의 물이 우리 정치권과 경제권을 파국의 격랑에 빠트릴 수 있다.

관상은 점심이나 저녁 전후 3시간 만에 바뀔 수 있다. 속된 사례를 든다면 화장실 가기 전과 후로 ‘표정’ 차원의 관상은 충분히 바뀐다. 3대가 지나도 잘 안 바뀌는 게 관상이다. 손자·손녀의 얼굴은 할아버지·할머니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처럼 구조적인 변화는 시간의 측면에서 참 쉬우면서도 어렵다.

최근 『결정적 순간들』을 출간한 박보균 중앙일보 대기자는 월간중앙 인터뷰에서 아돌프 히틀러(1889~1945)에 대해 다음 같은 내용을 말했다. 히틀러는 1939년 폴란드 침공으로 제2차 대전을 일으키고 45년 자살한다. 히틀러의 집권 기간은 놀랍게도 12년에 불과했다. 전쟁 기간 6년을 빼면 1933년부터 6년간 독일을 철저히 개조하고 나라를 뜯어고친 것이다. 현기증 나는 사회변화의 속도를 고려했을 때 한 나라를 구조적으로 바꾸는 데 6년이 아니라 6개월 만에도 구조적인 변화가 가능하다고 봐야 할 것 같다.

과거에도 그렇고 미래에도 그렇고 ‘결정적 순간’ 이후에 도래하는 새로운 구조에 적응하면 살고, 적응 못 하면 죽는다.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국제 질서의 구조적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공자 왈 맹자 왈 하다가 나라가 망했다. 역사는 항상 반복된다. 국익이 아니라 당파적 이익을 앞세우며, 기득권에 집착하는 정당은 범여권이건 범야권이건 사라져야 한다.

나라를 망하게 한 선대의 잘못을 우리 세대가 반복한다면 우리 후손들이 우리를 얼마나 한심하게 볼 것인가. 역사의 구조적 변화를 모르고 당했다면 일말의 변명이 가능하다. 알고서도 또 당한다면, 정말 구제 불능이다.

그렇다면 구조적인 변화의 출발점은 무엇인가. 정아영 시각장애인 권리보장연대 대표의 말처럼 “인식과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를 둘러싼 구조적인 변화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 희망이 있고 암울한 현실을 극복해 새로운 역사를 열 수 있다.

김환영 대기자/중앙콘텐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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