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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뛰게 하는 건 ‘존중’…야구·축구·마라톤 일본 꺾었으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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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0호 25면

[스포츠 오디세이] 도쿄 올림픽 앞둔 신치용 진천선수촌장 

국가대표 종합훈련원인 진천선수촌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2020 도쿄 올림픽(7월 24∼8월 9일)이 200일도 남지 않았다. ‘금메달 못 따면 어때. 최선을 다하면 되지’ 라는 쿨한 정서와 ‘그래도 일본에는 지면 안 된다’는 압박이 공존한다. 게다가 최근 몇몇 종목 대표팀 내에서 일어난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국가대표를 보는 시선도 곱지만은 않다.

불미스런 일 재발 안 되게 인성 교육 #선수들 자부심 높여주는 게 내 역할 #컵라면·피자·치킨 몰래 먹지 않도록 #다이어트 식단, 몸에 좋은 야식 제공 #후쿠시마산 식자재엔 국제 공조 #‘못 먹겠다’는 선수에겐 한식 줄 것 #지도자는 솔선수범, 욕도 먹어야 #‘기본이 서면 길 생긴다’ 이치 절감

’선수들의 자신감과 자존심을 높여주는 게 내 역할“이라는 신치용 진천선수촌장. 김성태 객원기자

’선수들의 자신감과 자존심을 높여주는 게 내 역할“이라는 신치용 진천선수촌장. 김성태 객원기자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엘리트 스포츠의 요람’을 지켜야 할 촌장(村長)이 있다. 지난해 2월 부임한 신치용(65) 진천선수촌장이다. 그는 프로배구 삼성화재의 초대 감독으로서 20년간 숱한 우승을 이끌어 낸 ‘코트의 제갈공명’이다. 누구보다 선수와 훈련을 잘 알고, 성과를 만들어낼 줄 아는 지도자다. 신 촌장이 온 이후 선수촌의 분위기는 밝아졌고, 규율이 잡혔다는 평가가 많다.

충북 진천군 광혜원면에 자리잡은 진천선수촌을 찾았다. 특유의 푸근한 웃음으로 기자를 맞은 신 촌장은 “선수들의 자신감과 자존심을 높여주는 게 내 역할”이라고 말했다.

# 진천 영양사ㆍ조리사 30명 도쿄 동행

요즘 하루 일과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5시 반에 운동장으로 나가 운동 환경을 살핀다. 오전에는 훈련을 지켜보고 오후에는 지도자들을 만난다. 선수촌의 주인은 선수고, 선수촌의 목적은 훈련이다. 선수들이 잘 먹고 편하게 지내고 훈련 잘할 수 있게 도와주면 된다. 예를 들어 체급 경기 선수들을 위한 다이어트 식단을 만들고, 몸에 좋은 야식을 제공하는 것 등이다. 예전에는 새벽에 쓰레기통을 뒤져 보면 컵라면 용기가 수북하게 나왔다. 컵라면·피자·치킨 등을 야식으로 먹으면 안 된다는 걸 선수들이 모르는 거다. 그걸 가르쳐주고 대신 먹을 수 있는 걸 제공해야 한다.”
가장 신경 쓰는 건 뭔가.
“잘 먹이고 잘 입히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존중이고 선수들의 마음을 얻는 거다. 자부심을 느끼고 책임감을 갖게 하려면 존중·이해·격려해 줘야 한다. ‘나를 챙겨주는구나’고 느낄 때 진심에서 우러나서 운동을 하게 되고 그래야 마지막 승부처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진천선수촌의 새벽 훈련. [중앙포토]

진천선수촌의 새벽 훈련. [중앙포토]

수영·쇼트트랙 등에서 선수촌 내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 재발 방지책은.
“존중과 교육이다. 한 달에 두 번 소양교육과 인성교육을 한다. 유도·레슬링처럼 상대를 잡고 하는 종목에서는 애매한 장면이 나올 수 있다. 쇼트트랙 혼성 계주는 남자 선수가 여자 선수 엉덩이를 밀어줘야 한다. 그런 걸 장난처럼 하면 이상하게 된다. 결국 교육이 중요하고, 교육의 기본은 사람존중이다.”
맛과 영양이 풍부한 진천선수촌 식단. [중앙포토]

맛과 영양이 풍부한 진천선수촌 식단. [중앙포토]

일본이 방사능 누출 지역인 후쿠시마산 식자재를 올림픽 때 쓰겠다는 입장이다.
“선수촌 차원에서 대비하고 있다. 도쿄의 객실 80개짜리 호텔을 통째로 빌려 선수지원센터를 운영한다. 진천선수촌 영양사와 조리사 등 30여 명이 훈련 파트너나 일부 지도자의 숙식을 해결하는 동시에 선수촌에 묵는 선수들의 영양 지원을 맡는다. 스트레스로 식욕이 떨어지거나 선수촌 음식이 안 맞는 선수들에게 갈비찜 같은 한식을 제공한다. 일본 측에서 끝까지 후쿠시마산 식자재를 고집한다면 다른 나라 선수단과 공조해서 대처하겠다. 선수단 전체 급식을 조달하기는 어렵겠지만 ‘도저히 이건 못 먹겠다’ 하는 선수는 챙겨야 한다.”
일본은 금 30개-종합 3위 목표를 내놨다. 우리는 금 10개도 힘겨운데.
“일본은 준비를 많이 했고 홈 이점도 당연히 있을 거다. 일본의 성적보다는 우리 선수들이 정정당당하고 멋진 경기를 보여주는 게 더 중요하다. 금 7개도 어렵다, 판정에서 불리할 거라는 얘기도 나온다. 나는 반대로 우리 선수들이 일본 가서 하거나 일본과 맞붙으면 보이지 않는 에너지가 나올 거라고 믿는다. 강세종목에서 평년작만 해 주면 금 10개로 10위 안에 들 수 있다고 본다. 모든 종목이 중요하지만 특별히 야구·축구(최종예선 진행 중)·마라톤(케냐 출신 귀화선수 오주한 출전)은 일본보다 잘했으면 한다.”

경남 거제 출신인 신치용은 초등학교 5학년 때 부산으로 유학을 가 배구를 만났다. 중학교 때는 키가 작아 세터를 했고, 키가 크면서 세터와 레프트 공격수를 겸했다. 성균관대에 진학한 신치용은 스케이트를 배우다가 허리를 크게 다치게 된다. 4학년 때 배구를 그만두고 현대 계열사에 입사한다. 허리 때문에 군 면제를 받을 줄 알았는데 현역 입영 대상자가 됐고, 보안사 배구단에 끌려가 ‘컴퓨터 세터’ 김호철과 함께 뛰었다. 전역 무렵 한국전력에서 파격적인 조건으로 그를 데려갔다. 한전 코치-청소년대표 코치-국가대표 코치를 경험했고, 95년 삼성화재 창단 감독으로 전격 발탁된다.

지도자로서 철학은 무언가.
“첫째가 솔선수범이다. 나는 술을 좋아하고 과음할 일도 많지만 한 번도 새벽 운동에 빠진 적이 없다. 선수촌에서도 ‘촌장님이 새벽에 한 번도 안 빠지니까 무섭다’는 말을 듣는다. 선수한테 책잡힐 짓을 하면 안 된다. 그리고 선수는 절대 스스로 뛰어넘을 수가 없다. 내가 늘 ‘동네배구 하려면 60, 아마추어 하려면 80, 프로 하려면 100, 우승하려면 120은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선수는 혼자서 90이상 못 간다. 100을 넘길 수 있도록 자극을 주는 게 지도자다.”
외국인 공격수에게 지나치게 의존한다며 ‘몰빵배구 원조’라는 욕도 들었는데.
“감독은 주어진 상황에서 승리하기 위해 방법을 찾고, 욕 먹는 게 숙명인 사람이다. 팀 전체 기본기가 안 되면 몰빵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삼성화재를 거쳐간 가빈·레오·안젤코 등은 나를 ‘동양의 아버지’ ‘둘째 아버지’라고 하는데, 그들을 결코 편하게 해주지 않았다. 기본기 훈련을 혹독하게 시켰지만 왜 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설명해 줬다.”

#사위 박철우에게 "기본 안해?” 불호령

프로배구 삼성화재 시절 신치용 감독과 사위 박철우. [중앙포토]

프로배구 삼성화재 시절 신치용 감독과 사위 박철우. [중앙포토]

‘코트의 제갈공명’ 별명도 얻었는데.
“그 별명을 지어주신 기자님께 지금도 감사하다(웃음). 상대가 뭘 하고 싶어 하는지 알면 내가 뭘 해야 하는지가 딱 나온다. 마지막 포인트가 다가오면 지시가 들어가야 한다. ‘이번에 상대가 이거 할 확률이 높아. 내가 책임질 테니까 너희는 이렇게 해’ 라고. 상대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공격 루트를 선택했는지, 그때 성공률이 몇 퍼센트였는지 머릿속에 입력이 돼 있어야 한다.”
요즘 삼성화재도 성적이 안 좋고, 삼성 스포츠단이 전체적으로 무기력해 보인다.
“삼성이 국내 최고 기업으로서 사회적 책임이 있는데 안타깝다. 최순실 사태를 거치면서 스포츠에 대한 지원을 확 줄였다. 지금 삼성은 스포츠를 할 생각이 없고 마지못해 끌고가는 것 같다. 오너가 정확한 사인을 안 주는데 실무 책임자가 스포츠를 안 좋아하면 참 힘든 상황이 된다.”

신 촌장은 태릉선수촌에서 만난 농구 대표 전미애씨와 결혼했다. 둘째딸은 ‘얼짱 농구선수’로 유명한 신혜인이고, 사위는 현대캐피탈에서 뛰다 라이벌 삼성화재로 이적한 박철우다. 두 사람의 러브 스토리는 ‘코트의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회자됐다. 지금은 딸 둘을 낳고 잘 살고 있다.

삼성화재로 옮긴 뒤 박철우는 ‘장인 감독’에게 “너는 기본은 안 하냐? 그걸 배구라고 해?”라는 욕을 엄청나게 먹었다고 한다. “철우는 설렁설렁 뛰다가 공격만 하는 스타일이고, 나는 기본기 훈련을 철저히 시키는 지도자 아닌가. 철우가 초반에는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하더라. 다행히 잘 적응했고, 남편과 아빠로서도 좋은 점이 많은 것 같다”며 신 촌장은 미소를 머금었다.

나이를 먹어 갈수록  ‘본립도생’(本立道生·기본이 서면 나아갈 길이 생긴다) 문구가 가슴에 와 닿는다고 그는 말했다. “기본만 지키면 절대 실패 안 하고 보람 있게 살 수 있다.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고 솔선수범하는 습관이 발전의 원동력이다.”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jerry@joongang.co.kr

※ 신치용 촌장 인터뷰 전문은 월간중앙 2월호 ‘정영재 전문기자의 레전드를 찾아서’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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