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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개별관광 속도 내는 정부…한·미 공조 틈새 벌어질 우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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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0호 03면

지난 14일 서울 코엑스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 ‘ 한국 이미지상 시상식’에서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4일 서울 코엑스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 ‘ 한국 이미지상 시상식’에서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당·정·청이 17일 일제히 ‘해리스 때리기’에 나서면서 밝힌 입장의 핵심 키워드는 ‘주권’이다. 대북정책에 대해 통일부는 “대한민국의 주권에 해당한다”고 했고,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들도 “우리 주권의 영역”이라고 했다. 청와대는 “우리 정부가 결정할 사안”이라며 주권을 달리 표현했다. 특히 이날 이례적으로 청와대까지 나선 것은 해리스 대사가 한국 주권을 침해하는 발언을 했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당정청 해리스 대사 때리기 왜 #남북 협력 올해 아무것도 못 하면 #집권 후반기 국정 동력 약화 판단 #해리스의 제동을 주권 침해로 여겨 #파병 요청, 분담금 발언도 못마땅 #NYT “해리스 콧수염은 분노 대상”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청와대가 주한 미국대사에게 강한 표현을 사용하면서까지 입장을 밝히고 나선 것은 이번 사안이 미국대사의 단순한 한국 비판을 넘어 국민 주권 침해에 해당하는 사안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라며 “해리스 대사가 한국 국민을 ‘무시’하는 발언을 하는데 청와대가 가만히 있다면 제 역할을 못한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미 밝힌 입장에 따라 미국과의 갈등도 감수하면서까지 독자적인 대북정책 추진 의사를 다시금 강조한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문 대통령은 지난 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북·미 대화만 쳐다볼 것이 아니라 남북 간에도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협력을 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정부는 북·미 관계가 교착된 상황에서 나름대로 남북관계를 진전시키면서 북·미 관계도 촉진하려는 의도인데, 이에 대해 ‘제재 공조에서 이탈하는 것 아니냐’는 미국 내 일부 우려가 있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일각에선 북한 문제를 둘러싼 최근 한·미 간의 공조 균열이 해리스 대사 발언으로 가시화된 것이라는 시각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미국과는 항시 긴밀하게 공조하면서 협의하고 있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도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기자들과 만나 “기본적으로 미국은 우리가 주권국가로서 내리는 결정은 존중한다는 입장”이라며 한·미 간 시각차가 크지 않다고 강조했다.

청와대는 또한 북한 개별 관광을 비롯한 문 대통령의 남북관계 개선 구상에 대해 “정부는 남북관계의 실질적 진전과 조속한 북·미 대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 나갈 것”이라며 “남북협력과 관련된 부분은 정부가 결정할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이 주한 미국대사와의 마찰까지 감수하면서 남북협력 사업을 강행하려는 배경에는 “올해 아무것도 못하면 남북관계가 크게 후퇴할 것”이라는 조바심이 작용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북한은 지난해 11월에 이어 12월 말에도 금강산 남측 시설을 2월 말까지 철거하라는 내용의 대남 통지문을 정부에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의 한 외교 소식통은 “청와대가 올해 남북관계를 개선하지 못할 경우 집권 후반기 국정 동력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보고 어느 정도 미국과의 마찰을 감수하더라도 대북 접근에 속도를 내겠다는 생각을 굳힌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해리스 대사를 향한 여권의 불편한 심기도 이날 당·정·청의 강한 반응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청와대와 여당이 해리스 대사에 대해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은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7일 해리스 대사가 KBS와의 인터뷰에서 호르무즈 해협에 한국군을 파병할 것을 공개적으로 요청하자 청와대는 “한 나라의 대사가 한 말에 대해 일일이 다 답변을 해야 될 필요성을 느끼지는 못한다”고 일축했다.

지난해 11월엔 이혜훈 국회 정보위원장을 대사관으로 불러 한국 정부가 방위비 분담금을 50억 달러로 증액해야 한다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지자 민주당에선 “이때까지 여러 대사를 만나봤지만 그렇게 무례한 사람은 처음”(이재정 대변인)이란 비판이 나왔다. 국회 국방위원장인 안규백 민주당 의원도 “해리스 대사가 뜬금없이 이 위원장에게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압박한 게 사실이라면 대단히 무례하고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지난해 수출 규제를 둘러싼 한·일 갈등 당시 “일본에서 태어난 해리스 대사는 미국 국적이지만 사실상 완전히 일본 사람이다. 전혀 한국에 우호적인 대사가 아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뉴욕타임스는 해리스 대사의 콧수염이 한국인들 사이에서 분노와 조롱의 대상이 되면서 외교 문제로 떠올랐다고 지난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신문은 지난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과 관련해 해리스 대사가 파기 결정을 번복하도록 한국 정부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면서 ‘고압적인 미국 외교관’이란 이미지가 덧씌워졌다고 전했다.

윤성민·위문희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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