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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승희의 직격인터뷰

“데이터 없는 AI는 총알 없는 총, 데이터의 호수 만들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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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박승희
박승희 기자 중앙일보 중앙선데이 국장

백상엽 카카오 엔터프라이즈 대표 

지난해 9월 9일, 미국 백악관에선 ‘범정부 AI(인공지능) 서밋’이 열렸다. 미 전역에서 175명의 AI 전문가들이 모였다. 일본은 ‘AI전략 2019’를 수립해 AI 응용인재를 연 25만명 양성하기로 했다. 한국 정부도 뒤질세라 지난달 AI 국가전략을 수립했다. 2030년까지 AI 경제효과를 455조로 늘린다는 발표도 했다.

데이터3법 물꼬 텄지만 데이터 활성화 정책 필요 #AI 관련 졸업생 중 절반 해외로…인력 유출 심각 #개인정보 보호보다 AI 강조하는 중국 무서운 존재 #혁신기업에 대한 단계적 포용적 혁신정책 절실

AI 전쟁시대다. 지난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2020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의 화두도 AI였다. 카카오는 세밑인 지난달 3일 AI 서비스 개발 자회사인 카카오엔터프라이즈를 출범시켰다. 직원은 500여명. 김범수 카카오 의장은 “앞으로 10년은 결국 AI로 정의될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AI 신기업 카카오엔터프라이즈의 백상엽 대표를 만나 한국 AI산업의 현주소와 숙제에 관해 물었다.

백상엽 카카오엔터프라이즈 대표는 ’AI는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도구“라고 말했다. 인터뷰는 14일 카카오 판교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김상선 기자

백상엽 카카오엔터프라이즈 대표는 ’AI는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도구“라고 말했다. 인터뷰는 14일 카카오 판교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김상선 기자

CES에서 AI기술이 화제였다. 왜 AI가 주목받는가.
“과거가 인터넷에 이어 모바일 시대로 이행하는 시기였다면, 현재는 모바일에서 데이터 기술의 시대로 넘어가는 변곡점이다. 데이터 기술의 시대에선 다양한 방식으로 축적된 빅데이터를 분석하고 활용하는, AI 응용시대가 열릴 수밖에 없다.”
할리우드 영화에선 인간을 대체한 AI로봇까지 등장했다.
“궁극적으론 영화 어벤저스에 나오는 자비스(사람처럼 생각하고 말하는 인공지능 비서) 같은 걸 만들고 싶다. 예를 들면 앤드류(회사 내에서 쓰는 백 대표의 영어 이름)가 있다면 앤드류 주니어를 만들어 제 일을 돕는 거다. 앤드류 주니어의 업무생산성이 늘어난다면 앤드류가 속한 조직과 사회, 국가가 수혜를 가져갈 수 있다.”
자율주행자동차의 경우 비보호 좌회전 같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눈치를 어떻게 기계에 적용할 수 있느냐가 숙제라고 들었다. 얼굴 인식 데이터를 수집할 때도 분석하기 힘든 사람의 표정이 있지 않은가.
“인간의 표정을 읽어 감정을 이해하는 것은 AI에서 난제 중 난제다. 운다, 화를 낸다, 웃는다 같은 극단적인 감정 표현은 인식하기가 쉽다. 반면 눈치 본다, 찝찝해한다 등의 표현은 AI가 참·거짓을 구분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그래서 자율주행을 적용한다면, 애매모호한 공간은 지정 안 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 공항이나 특정 자율주행 전용도로, 특정 구역을 지정하는 게 추세다.”
우여곡절 끝에 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처리됐다.
“데이터 3법이 통과되기 전에는 데이터 활용이 거의 중지됐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시행령, 구체적인 규칙 등이 정비돼야 하지만 최소한 비식별데이터를 활용해 프로덕트나 서비스 지능을 넓힐 수 있게 돼 의미가 크다.”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AI의 핵심일 텐데.
“싱가포르의 스마트 국가전략이 대표적이다. 싱가포르의 경우 국가 단위로 축적된 데이터를 의료 분야, 제품개발 분야 등에 응용하고 있다. 데이터 3법으로 물꼬를 텄지만 이것 가지곤 불충분하다. 국가가 나서서 데이터 레이크(Lake), 즉 데이터의 호수를 만들고 활성화하는 정책을 펴주었으면 한다. 데이터 없는 AI는 화살 없는 활, 총알 없는 총과 같다.”
데이터엔 양면성이 있지 않나. 개인정보 보호를 강조하는 사람들도 많다.
“일단 우리나라는 주민등록번호 같은 ‘key identification number(주요 식별번호)’가 너무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백상엽이라는 사람을 특정하기 위해선 주민번호 말고도 생체정보를 포함한 상당히 많은 키값이 존재한다. 생체정보 등 사람을 불편하게 하지 않게 하면서도 충분히 사람을 특정할 수 있는 여러 데이터가 있으니 그걸 활용할 수 있도록 해 주면서 보호해야 할 데이터는 국가가 지속적으로 보호해주면 된다.”
국내 AI업체들 간의 협업이나 협력 사례도 있는가.
“지난해 10월 카카오가 SKT와 3000억원 규모의 주식 맞교환을 했다. 양 사가 잘하고 있는 기술이나 분야를 통합 연결해 시너지를 내는 게 향후 구체화할 부분이다. 예를 들어, SKT의 인공지능서비스인 아리아가 처리하기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헤이카카오를 불러 서비스를 활용할 수 있다. 거꾸로도 가능하다.”
한국의 AI기술 수준은 어느 정돈가.
“구체화해서 이야기하기가 애매하다. 한국정보통신기획평가원(2019)의‘2018년도 ICT 기술수준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대비 81.6% 수준이고, 중국(미국 대비 88.1%)이나 일본(미국 대비 86.4%)보다 낮다.”
AI가 국가 경제 전략에 미치는 순기능을 꼽는다면.
“현재 인구 고령화, 감소 추세다. 성장론자들은 국가총생산이 줄어들고 젊은 세대가 노령 세대를 부양하게 될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AI 개발자들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 예를 들어 2030년에 저도 70대가 되는데, 그때는 내 자아를 발전시킨 앤드류 주니어(AI)가 도울 것이기 때문에 은퇴하지 않아도 된다. 노령층도 생산성을 유지하거나 확대시킬 수 있다는 프레임을 적용해도 된다고 본다. 내가 유토피아론자일 수 있지만.”
너무 낙관적인 전망 같다.
“실제로 일본의 경우 노년층이 늘고 인구가 줄어드는데, 여기에 AI 전략을 접목시켰다. 미국은 국가리더십, 국방리더십, 아카데미 리더십을 놓치지 않기 위해 AI를 지속 발전시킨다. 어떻게 됐든 AI는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도구다. 우리나라는 제조 기반이 뛰어난 게 장점이다. AI 칩 관련해 삼성과 하이닉스가 있기 때문이다.”
AI업계에 인력난이 심각하다고 들었다.
“인재 유출은 생각보다 꽤 있다. AI 관련 졸업생 중 50% 이상이 해외로 나간다. 연봉과 업무 환경 때문이다. 하지만 길게 보면 인력 유출이라기보다 해외에서, 더 좋은 환경에서 ‘육성되고 있다’고 본다. 다만 연구센터 설립, 커뮤니티 구축 등을 통해 그런 인력들이 취업하고 창업하기 위한 생태계를 국내에 만들어야 한다. 국가가 나서서 돈과 데이터, 협력 채널을 투입해줘야 한다. 벤처 생태계가 풍부해진다면 미국에서 경력을 쌓고 돌아와 한국에서 건전한 방식의 ‘대박’을 노리는 창업자들이 많이 생기지 않을까 싶다. 회사 차원에선 미국이나 캐나다에 연구개발센터를 둬 해외 인력을 영입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중국이 AI와 데이터 사이언스 관련 ‘인력 사재기’를 하고 있다고 해외언론이 보도했는데.
“데이터 사이언스 분야의 영향력과 기업의 업적이 증명되면 인재 부족이 더 심화될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중국보다 미국으로 많이 나가는 편이다. 그러나 중국은 여전히 무서운 존재다. 국가 차원에서 개인정보 보호라는 관념을 다 깨고 AI 개발을 대폭 지원한다. 파괴력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
AI와 관련한 규제의 문제는 없는가.
“규제보다는 정책의 관점을 얘기하고 싶다. 단계적 포용적 혁신이 필요하다. 혁신기업은 소규모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혁신 때문에 피해 볼 가능성이 큰 기존의 플레이어들을 혁신가들이 껴안는 건 순서가 아니다. 돈이 있어야 껴안는다. 1단계에서의 포용은 결국 국가가 나서야 한다. 국가가 세금이나 국가 자금을 이용해서 포용한 뒤, 2단계 포용으로 혁신에 성공을 거둔 혁신기업들이 나서 소득세가 됐든 혁신세가 됐든 고려할 수 있다고 본다.”
AI에 관심 있는 대학생이나 구직자들에게 조언한다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제일 쉬운 파이선(python, 프로그래밍언어)부터 배워라. 행렬·확률·통계 기초를 열심히 한 석·박사 인재가 갈수록 간절하다. 문제는 교육이다. 중국은 최근 AI 필수교육을 도입했다. 해당 교재를 보면 대부분 코딩에 관한 내용이다.” 

◆백상엽 대표

- 1966년생, 서울대 산업공학 학사ㆍ석사ㆍ박사
- 미 스탠퍼드대 최고 경영자과정
- (주)LG사장/LG CNS 미래전략사업부장 사장
- 카카오엔터프라이즈 대표(2019년 12월~)

박승희 논설위원

※윤서아 인턴기자가 인터뷰에 참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