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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라기 공원’의 현장, 하와이의 가장 깊은 속살을 걷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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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카우아이는 하와이 8개 유인도 가운데 화산 폭발로 가장 먼저 생긴 섬이다. 면적 70% 이상이 사람이 살 수 없는 험한 산지이지만 그만큼 드라마틱한 풍광도 많다. 기이한 해안절벽이 펼쳐진 나팔리 코스트를 헬기에서 내려봤다.

카우아이는 하와이 8개 유인도 가운데 화산 폭발로 가장 먼저 생긴 섬이다. 면적 70% 이상이 사람이 살 수 없는 험한 산지이지만 그만큼 드라마틱한 풍광도 많다. 기이한 해안절벽이 펼쳐진 나팔리 코스트를 헬기에서 내려봤다.

지난 4년간 한국인 신혼부부가 가장 많이 찾는 여행지는 하와이다(하나투어 통계). 열대 휴양지의 상징인 와이키키 해변과 적당히 따뜻한 날씨, 여기에 미국식 리조트와 대형 아웃렛까지 있으니 그럴 법하다. 그러나 이건 하와이가 아니다. 하와이 군도(群島) 중에서 ‘오아후’라는 가장 문명화된 섬의 이야기일 뿐이다. 호놀룰루 공항에서 북쪽으로 40분만 날아가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카우아이’라 불리는 이 섬에는 그랜드 캐니언 같은 협곡이 있고, 물범이 늘어지게 낮잠 자는 해변이 있다. 때묻지 않은 섬의 속살을 헤집고 왔다.

카우아이 섬 하이킹 #태평양의 그랜드 캐니언 보고 #해안 절벽 나팔리 코스트 만끽 #고래 관광, 스노클링도 필수

정원처럼 싱그러운 섬

하와이는 태평양 한가운데 화산이 분화해 솟은 군도다. 디즈니 단편 애니메이션 ‘라바’에 묘사된 그대로다. 8개 유인도 중 가장 먼저 태어난 섬이 카우아이다. 약 500만 년 전이다. 나이 때문일까. 다른 섬과 생김새가 영 딴판이다. 깊게 팬 협곡과 주름진 해안 절벽, 섬 전체를 덮은 초록빛 숲이 카우아이 섬의 고유한 매력이다.

‘태평양의 그랜드 캐니언’으로 불리는 와이메아 캐니언. 최대 깊이가 900m에 이른다.

‘태평양의 그랜드 캐니언’으로 불리는 와이메아 캐니언. 최대 깊이가 900m에 이른다.

섬에 도착하자마자 헬기를 탔다. 제주도의 70% 크기인 섬을 시계 방향으로 도는 코스를 선택했다. 리후에 공항을 벗어나자마자 발밑으로 초록 세상이 펼쳐졌다. 영화 ‘쥬라기 공원’에 나온 폭포를 내려다본 뒤 와이메아 캐니언에 접어드니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오금이 저렸다. 협곡의 최대 깊이는 900m. 그랜드 캐니언에 비하면 아담하지만 색깔은 훨씬 화려했다.

섬 서쪽 바다로 나가니 더 드라마틱한 장관이 나타났다. 나팔리 코스트다. 거인이 해안절벽을 마구 할퀸 것 같은 기이한 형상이었다. 조종사 브로디는 “워낙 험한 지형이어서 헬기나 보트를 타지 않으면 쉽게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헬기는 섬 북쪽 하날레이 베이를 지나 공항으로 방향을 틀었다. 섬을 한 바퀴 돌고나니 카우아이의 별명이 ‘정원의 섬’인 이유를 알 만했다.

나팔리 코스트는 거인이 손으로 할퀸 것 같은 해안절벽 풍광이 압도적이다.

나팔리 코스트는 거인이 손으로 할퀸 것 같은 해안절벽 풍광이 압도적이다.

협곡과 해안절벽을 하늘에서 내려만 보기는 아까웠다. 한국에서 일찌감치 가이드와 함께하는 하이킹을 예약했다. 하이킹 업체가 ‘누아롤로(Nualolo) 트레일’을 추천했다. 트레일 왕복 길이는 13㎞, 표고 차는 800m이고 하루짜리 코스 중에는 최고난도라는 안내와 ‘안전 동의서’에 서명하라는 e메일을 받았다.

드디어 디데이. 오전 8시, 가이드 제레미아를 만나 트레일이 시작되는 코케에 주립공원으로 이동했다. 한국은 국토 70% 이상이 산이고 등산 경험도 적지 않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호기를 부렸다. 제레미아는 “한국인을 안내하는 건 처음”이라며 “가파른 벼랑을 걸어야 하고 길도 미끄러우니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절벽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다

트레일 초입, 신발 끈을 단단히 조인 뒤 컴컴한 숲으로 들어갔다. 우람한 유칼립투스와 기타 원목으로 쓰인다는 코아 나무가 하늘을 완전히 가렸다. 제레미아는 멸종 위기종 오히아 나무와 환경을 헤치는 외래식물에 대해 설명했다. 처음 30분은 완만했다. 야생 산딸기와 구아바는 보일 때마다 따먹었다. 어른 키보다 큰 생강나무 숲을 헤쳐야 할 때는 힘들었다. 사람 한 명 간신히 걷는 길 안쪽으로 무척 억센 이파리가 웃자라 있었다. 옷이 진흙 범벅이 됐다.

누아롤로 트레일 초중반은 원시림이다. 이파리가 억센 생강나무 군락지가 많다.

누아롤로 트레일 초중반은 원시림이다. 이파리가 억센 생강나무 군락지가 많다.

1시간 30분이 지나서야 바다가 보였다. 멀찍이 니하우 섬도 보였다. 오르막 내리막길이 반복됐다. 길이 미끄러웠다. 스틱을 힘껏 찍으며 걷다 보니 시야가 완전히 트인 산등성이에 다다랐다. 여기서부터 오른쪽에 천 길 낭떠러지를 두고 조심조심 걸었다. 3시간만에 트레일 종착지에 닿았다.

 누아롤로 트레일 종착지에 이르면 나팔리 코스트가 보인다.

누아롤로 트레일 종착지에 이르면 나팔리 코스트가 보인다.

바위에 주저앉아 북쪽 나팔리 코스트의 드라마틱한 광경을 감상했다. 제레미아는 “이 풍경 하나를 보려고 누아롤로 트레일을 걷는다”고 말했다. 챙겨온 샌드위치를 먹었다. 하와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식사시간이었다.

걸어온 길을 되밟아 돌아왔다. 체력이 떨어진 데다 오르막이 많아서 허벅지가 후들거렸다. 앞선 제레미아와 계속 간격이 벌어졌다. 그래도 무사히 하이킹을 마쳤다. 정확히 6시간을 걸었다. 제레미아가 건넨 파인애플과 스타 프루트를 먹었다. 꿀맛이었다.

포이푸 해변에서 잠자고 있는 하와이몽크물범.

포이푸 해변에서 잠자고 있는 하와이몽크물범.

카우아이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누아롤로 하이킹이었으나 바다에서 보낸 시간도 눈부셨다. 12월부터 3월까지는 고래 관광 성수기다. 고래 관광선을 타고 남쪽 바다를 떠돌다 혹등고래 무리를 봤다. 백사장에서 낮잠 자는 하와이몽크물범과 푸른바다거북도 만났다.

스노클링을 하면서 만난 형형색색의 열대어.

스노클링을 하면서 만난 형형색색의 열대어.

카우아이는 하와이에서도 스노클링 하기에 가장 좋은 섬이다. 계절에 따라 놀기 좋은 바다가 다른데, 겨울엔 남쪽 바다가 잔잔하다. 포이푸 해변에서 만난 열대어 수십 종 가운데 하와이 주의 상징인 ‘트리거 피시’가 단연 인상적이었다. 하와이 원주민어로 ‘후무후무누쿠누쿠푸아아(humuhumunukunukuapuaa)’다. 참 만화 같은 이름이다. 그러고 보니, 하와이에서 만난 모든 풍경이 만화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여행정보

한국에서 카우아이를 가려면 호놀룰루에서 비행기를 갈아타야 한다. 인천~호놀룰루 8시간, 호놀룰루~리후에(카우아이) 40분 소요. 카우아이의 1월 기온은 20~25도. 하이킹은 가격이 비싸긴 하지만, 가이드와 함께하는 게 안전하다. ‘카우아이 하이킹 투어’ 같은 업체를 이용하면 된다. 누아롤로 트레일 580달러(약 66만원). 헬기투어는 145달러(약 16만원). 카우아이에서는 차가 없으면 이동이 불편하다. 이번엔 허츠 렌터카를 이용했다. 자세한 정보는 하와이관광청 홈페이지 참조.

카우아이 섬

카우아이 섬

카우아이(미국)=글·사진 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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