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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날개가 제일 많은 남자랍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날개 그림을 찾아 팔도를 돌아다니는 남자가 있다. 2016년 10월부터 날개를 모았으니 어느새 3년하고도 2개월이 넘었다. 1000일이 훌쩍 넘는 세월의 힘인지, 고단했던 발품의 덕분인지 꾸역꾸역 모은 날개 인증사진이 200개를 넘었다. 여행작가 이종원(54)씨의 사연이다. 인증사진 남기기가 디지털 시대의 여행법이라지만, 이씨의 여행은 분명히 별난 구석이 있다. 지난 9일 서울 지하철 7호선 어린이대공원역에서 200번째 날개를 다는 이씨를 만났다.

날개 사진 200개 이종원 여행작가 #9일 어린이대공원역서 기록 달성 #군산엔 돌 날개, 진도엔 깃털 날개 #지역마다 엇비슷한 베끼기 아쉬워

이종원 여행작가의 200번째 날개는 서울 어린이대공원역에서 촬영했다. 손민호 기자

이종원 여행작가의 200번째 날개는 서울 어린이대공원역에서 촬영했다. 손민호 기자

축하한다. 200개째 날개는 어떻게 달 게 됐나.
“제보를 받았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제보가 날아온다. 내가 날개 사진을 찍고 다닌다는 게 꽤 알려졌나 보다. 제보로 찍게 된 사진이 전체 날개 사진의 30%쯤 된다.”
언제 그리고 왜 날개 사진을 찍게 됐나.
“첫 날개는 2016년 10월 25일 달았다. 강원도 양구 펀치볼 전망대에서였다. 처음엔 그냥 기념사진 삼아 찍었다.”
강원도 양구 펀치볼 전망대에서 촬영한 1호 날개. [사진 이종원]

강원도 양구 펀치볼 전망대에서 촬영한 1호 날개. [사진 이종원]

기록으로 남기자고 작정한 건.
“50개쯤 찍었을 때였던 것 같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날개가 많을 줄 몰랐다. 찍다 보니 50개나 됐다. 그때 100개는 넘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벽화 마을을 많이 가봤겠다.
“전국의 벽화 마을은 다 가본 것 같다. 날개 벽화는 대체로 마을 어귀나 중심이 되는 자리에 그려져 있다. 벽화 마을의 대표 명소라는 뜻이겠다. 요즘엔 지역의 관광지나 축제 현장, 새로 문을 여는 식당도 날개 그림을 그려놓는다.”
전남 진도의 진짜 깃털 날개. [사진 이종원]

전남 진도의 진짜 깃털 날개. [사진 이종원]

날개 사진은 어떻게 찍나.
“처음엔 그때그때 주위 사람의 도움을 받았다. 지금은 삼각대를 이용한다. 휴대전화를 삼각대에 설치하고 리모컨을 누른다. 날개 사진 촬영할 때도 요령이 필요하다. 날개 중앙에 정확히 서야 한다. 삼각대하고도 직각을 이뤄야 한다. 각도 잡는 게 의외로 쉽지 않다.”
기억에 남는 날개라면.
“전북 군산 신시도 새만금휴게소에 4t 무게의 돌 날개가 있다. 진짜 돌로 만들었다. 전남 진도 신비의 바닷길 축제 현장에는 털로 만든 날개가 있고, 강원도 인제에는 양쪽 길이가 20m 가까이 되는 날개도 있다. 서울 명동역에서 촬영할 때는 재미난 일을 겪었다. 날개 사진을 찍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여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했는데, 주변에 외국인만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서울 한복판에서 외국인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영어로 부탁했다. 중국인 관광객이었다.”
전북 군산의 돌 날개. [사진 이종원]

전북 군산의 돌 날개. [사진 이종원]

날개 그림이 많은 게 좋은 걸까.
“관광 콘텐트로서 의미가 있다. 벽화로 유명한 서울 이화마을로 젊은 인도 여성들을 태우고 왔다는 택시 기사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들이 먼저 영어로 "이화마을 윙(Wing)”이라고 했단다. 도시재생 사업의 주요 콘텐트가 벽화 마을 아닌가.”
너무 많은 건 안 좋아 보인다.
“한국 관광의 고질이 베끼기다. 다른  데서 잘된다고 하면 바로 따라 한다. 출렁다리, 케이블카, 레일바이크, 느린 우체통 모두 대표적인 베끼기 콘텐트다. 내 것을 만들어야 하는데 안타깝다.”
경북 경주의 구미호 꼬리. [사진 이종원]

경북 경주의 구미호 꼬리. [사진 이종원]

200개째 날개를 단 이씨는 “욕심이 생긴다”고 말했다. “세상에 날개 모으는 사람이 나밖에 없지 않나요? 그럼 세계 기록이잖아요? 세상에서 날개가 제일 많은 남자라. 멋지지 않나요?”

날개 인증사진 촬영 장비. 리모컨 기능이 있는 휴대전화와 셀카봉 삼각대.

날개 인증사진 촬영 장비. 리모컨 기능이 있는 휴대전화와 셀카봉 삼각대.

여행 문화는 여행지만 만드는 게 아니다. 여행자 스스로 만들기도 한다. 어쩌면 이게 여행의 본령일지 모른다. 이씨의 300번째 날개, 나아가 1000번째 날개를 기대하는 까닭이다.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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