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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수록 목마른 소금물처럼, 욕망은 더 큰 욕망 부르는 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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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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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함경』 16권 완역 김윤수 전 판사 #늘 판단해야 하는 판사직에 회의 #삶 이후의 삶 고민하며 불교 입문 #“진정으로 가질 수 있는 건 없어 #그걸 알고 나니 괴로움 벗어나”

“욕망은 소금물을 마시는 것과 같다. 마실수록 목이 마르다. 설령 충족된다 해도 더 큰 욕망을 부른다.”

10일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에서 판사 출신인 김윤수(69)씨를 만났다. 경남 하동이 고향인 그는 경남고를 거쳐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이후 부산지방법원, 서울북부지방법원, 서울고등법원, 서울민사지방법원, 사법연수원 교수, 시군법원 판사 등을 거쳤다. 평생 법조인으로 살아온 그가 최근 초기불교 경전인 『아함경』(운주사)을 번역 출간했다. 총 16권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 꼬박 8년간 매달려서 일궈낸 성과다.

국립양평치유의숲에서 자동차로 불과 5분 거리였다. 그는 그곳에 전원주택을 짓고 생활하고 있었다. 김 전 판사가 지금껏 출간한 경전 등 불교 서적은 무려 38권이다. 판사 출신인 그는 왜 불교 경전 번역에 자신의 삶을 걸다시피 했을까. 그에게 이유를 물었다.

김윤수 전 판사는 경기도 양평에 전원주택을 짓고서 살고 있다. 차로 5분 거리에 국립양평치유의숲이 있다.

김윤수 전 판사는 경기도 양평에 전원주택을 짓고서 살고 있다. 차로 5분 거리에 국립양평치유의숲이 있다.

판사로 재직 중일 때부터 15년간 불교 경전을 풀었다. 쉽지 않은 일이다. 원래 불교 집안인가.
“아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판사 일을 하면서도 불교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대학 다닐 때 선배가 불교책을 하나 던져준 적은 있었다. 선어록집(禪語錄集)이었다. 조금 읽다가 집어 던졌다. 뭔가 있긴 있는 것 같은데,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더라.”

김 전 판사는 대학을 5년간 다녔다. 젊은 시절, 방황을 하다가 한 해 낙제했다. 1학년 1학기 때는 한 과목 빼고 모두 에프(F)학점을 받았다. 당시 그에게는 뚜렷한 삶의 방향도 없었다. 사법고시에 합격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판사가 됐지만 늘 회의적이었다”고 말했다.

왜 판사 일에 회의적이었나.  
“판사직은 늘 판단을 해야 하는 일이다. 이 판단이 쉽게 할 수 있고, 확신이 가는 판단이라면 문제가 없다. 그런데 판단에 확신이 없을 때도 판단을 해야 한다. 그럴 때마다 생각이 들었다. ‘이게 과연 내가 해야 할 일인가. 가야할 길인가.’ 늘 판단을 내려야 하는 부담. 판사라면 누구나 안고 있는 부담이다. 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그럴 때마다 회의감이 들었다.”  
그런 회의를 막기 위한 법적인 장치가 있지 않나.  
“법에는 ‘입증 책임’이라는 게 있다. 입증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설령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인정을 받지 못한다. 법률 시스템은 그렇게 돼있다. 그렇다 해도 그게 판사 개개인의 심리적 부담까지 없애주는 것은 아니다.”  
김윤수 전 판사는 "판사는 늘 판단을 해야했다. 스스로 확신이 서지 않을 때도 판단을 내려야 했다. 판사라면 누구나 안고 있는 부담이다"고 말했다.

김윤수 전 판사는 "판사는 늘 판단을 해야했다. 스스로 확신이 서지 않을 때도 판단을 내려야 했다. 판사라면 누구나 안고 있는 부담이다"고 말했다.

그런 회의감이 누적된 끝에 그는 판사 생활 10년 만에 법복을 벗었다. 서울 서초동에서 변호사 생활도 10년간 했다. 그러다가 하루는 서점에 들렀다. “책꽂이에 많은 책이 꽂혀 있었다. 그 중에 눈에 확 들어오는 제목이 둘 있었다. 하나는 『삶 이전의 삶』, 또 하나는 『삶 이후의 삶』이었다.”

어떤 책이었나.
“그건 종교적인 책은 아니었다. 대신 나에게 삶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던진 책이다. ‘만약 삶 이후에 또 다른 삶이 있다면?’ 그때까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이번 삶이 다라고 생각했다. 삶 이후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의 삶에서 많이 성취하고, 많이 누리는 게 정답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세속적인 노력을 했다. 그런데 ‘삶 이후의 삶’이 있다면 어찌 되나. 나는 그걸 알아야 했다.”
왜 그걸 알아야 했나.  
“그건 삶을 포괄하는 커다란 구조다. 전체 구조를 알아야 어떻게 살지가 보이지 않겠나. 만약 삶 이전과 삶 이후가 있다면 ‘많이 성취하고, 많이 누리는 것’이 정답일까. 과연 그게 제일 행복한 삶일까. 이런 물음을 제기할 수밖에 없더라. 오히려 그게 행복한 삶에 방해가 될 수도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김윤수 전 판사가 지난 15년간 번역한 경전 등 불교 서적은 무려 38권이다. 바닥에서 한 줄로 쌓아올려 보았다. 그의 키만큼 올라왔다. [사진 신동엽]

김윤수 전 판사가 지난 15년간 번역한 경전 등 불교 서적은 무려 38권이다. 바닥에서 한 줄로 쌓아올려 보았다. 그의 키만큼 올라왔다. [사진 신동엽]

그 길로 그는 답을 찾기 시작했다. 3~4년간 닥치는 대로 불교 서적을 읽었다. 불교가 ‘삶 이전의 삶, 삶 이후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해결이 되지 않더라. 당시 불교 서적은 대부분 선어록이나 선불교 문헌이었다. 그걸 봐도 답은 안 나오더라. 그래서 ‘초기 경전부터 차근차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교의 초기 경전부터 살펴봤더니 어땠나.
“그제야 불교의 구조와 윤곽이 잡히더라. 그러니까 불교가 무엇을 말하는지 이해가 가더라. 그리고 ‘윤회(輪廻)의 이유’도 알게 됐다. 우리가 윤회하는 원인은 기본적으로 욕망을 갖기 때문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의 본질적인 뜻은 ‘원인과 결과’다. 그걸 줄여서 ‘인과(因果)’라고 부른다. ‘죽은 뒤 다시 태어나는 것’은 오히려 윤회의 협소한 의미다. 세상 모든 일은 원인과 결과로 돌아간다. 씨앗을 심으면, 그에 따른 열매가 열리는 법이다. 그걸 불교에서는 ‘윤회’라고 부른다.

윤회의 원인은 욕망이라고 했다. 욕망을 갖는 게 왜 문제가 되나.
“인간의 삶은 기본적으로 괴로움이다. 왜 그럴까. 우리가 욕망을 갖기 때문이다. 괴로움의 원인은 욕망이다. 욕망이 채워지지 않을 때 우리는 괴로워한다.”
그럼 욕망을 채우면 되지 않나.
“설령 욕망을 충족해도 더 큰 욕망을 부르게 된다. 그래서 부처님은 ‘욕망을 갖는 일은 소금물을 마시는 것과 같다’고 했다. 마시면 마실수록 더 목이 마르기 때문이다.”
김윤수 전 판사는 "설령 묙망이 충족된다고 해도, 더 큰 욕망을 부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윤수 전 판사는 "설령 묙망이 충족된다고 해도, 더 큰 욕망을 부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대부분 ‘나의 욕망이 충족될 때 비로소 괴로움에서 벗어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들 욕망을 추구한다. 삶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말이다.    
“그건 착각이다. 욕망의 충족을 통해서는 결코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왜 그럴까. ‘욕망의 뿌리’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욕망을 없앨 때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욕망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없애고 싶다고 없어지지도 않는다. 어떡해야 욕망을 없앨 수 있나.
“욕망은 대상을 필요로 한다. 그 대상이 고정돼 있다고 보기에 우리는 그걸 가지려 한다. 그게 욕망이다. 사람들은 모든 것을 고정된 상태로 파악한다. 여기 책도 고정돼 있고, 저기 책상도, 우리의 마음과 몸도 고정돼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소유하려고 한다. 그런데 고도의 배율을 갖춘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달라진다.”
어떻게 달라지나.
“이 책은 매순간 낡아가고 있고, 사라지고 있고, 이 컵의 동그라미도 삐죽삐죽한 게 연결돼 동그랗게 보일 뿐이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고정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고정된 것이 없으니 진정으로 가질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아무 것도 가질 수 없다. 그럼 남는 것도 없지 않나. 삶이 너무 허무하지 않나.  
“그건 소유하는 방식에 익숙한 삶을 사는 사람의 생각이다. 오히려 진정으로 가질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음을 알 때 우리는 자유로워진다. 그러니 이 세상과 현상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설령 깨닫지 못하고 이해만 한다 해도 ‘절반의 해결책’은 되기 때문이다.”

김 전 판사는 “이걸 이해하고 나니까 삶이 좀 더 수월해졌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이 원리를 알고 나면 삶의 해법을 스스로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삶에 좌절감을 느낀 사람이 절을 찾아가면 이런 원리를 좀 설명해주면 좋겠다. 사찰에서 산사음악회만 한다고 사람들이 자유로워지는 건 아니니까”라고 지적했다.

김윤수 전 판사는 "세상 어떠한 것도 고정된 것은 없다. 달리 말하면 우리가 진정으로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걸 이해할 때 우리는 비로소 자유로워진다"고 말했다.

김윤수 전 판사는 "세상 어떠한 것도 고정된 것은 없다. 달리 말하면 우리가 진정으로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걸 이해할 때 우리는 비로소 자유로워진다"고 말했다.

그는 변호사 생활 10년을 마치고 다시 판사가 됐다. 법원에는 대법원과 고등법원, 지방법원이 있다. 지방법원은 도청소재지에 있다. 그 아래 큰 도시에는 지원이 있다. 그러다 보니 조그만 도시에는 법원이 없거나 순회재판을 한다. 시민들의 불편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원이 없는 작은 도시에 판사가 상주하게 하는 시군법원 판사 제도가 생겨났다. 그때 지원했다. 경기도 광주와 파주에서 시군법원 판사를 하면서 초기불교 경전 번역에 매진했다. 그렇게 다시 10년간 판사 생활을 했다. 2011년 퇴직하고 나서 8년간 매진한 끝에 최근에서야 『아함경』을 완역했다.

그는 “방대한 분량인 『아함경』의 골수를 추리고 또 추리면 다음과 같다”며 넉 줄의 글을 건넸다. 『아함경』의 메시지를 직접 요약한 게송이다.

‘형성된 모든 것은 무상하다는 것을 관찰하라(觀諸行無常)
 이것을 이름해서 바르게 보는 것이라 하는데(是名爲正觀)
 바르게 보면 곧 욕망에서 떠나고(正觀卽離欲)
 모든 괴로움의 무더기에서 벗어난다네(解脫諸苦蘊)’

양평=글·사진 백성호 종교전문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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