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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권혁주의 비즈니스 현장에 묻다

적자? 10년 뒤 1등 되려고 투자하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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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권혁주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새벽 배송’ 돌풍, 마켓컬리 김슬아 대표

’와서 도와달라.“ 현업부서가 부르면 마켓컬리 김슬아 대표는 달려가 함께 일한다. 지난해 마지막 날에는 물류센터에서 배송 물품 분류·포장 작업을 하고 밤 1시에 택시로 퇴근했다. 임현동 기자

’와서 도와달라.“ 현업부서가 부르면 마켓컬리 김슬아 대표는 달려가 함께 일한다. 지난해 마지막 날에는 물류센터에서 배송 물품 분류·포장 작업을 하고 밤 1시에 택시로 퇴근했다. 임현동 기자

“한번 뜻을 세우면 절대 꺾지 않았다. 고집 센 학생이었다.”

일손 달리면 직접 포장·고객상담 #투자자 유치는 물론 영업도 뛰어 #대기업들 뛰어든 새벽 배송 시장 #“좋은 경쟁자 있어야 기록 세운다”

‘새벽 배송’ 돌풍을 일으킨 마켓컬리 김슬아(37) 대표는 자신을 이렇게 평했다. 울산에서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이었다. ‘견문을 넓혀 장차 세계를 누비는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고는 “유학 가겠다”고 부모를 졸랐다. 말리던 부모는 조건을 내세웠다. “자격이 있음을 성적으로 증명해라.”

민족사관고에 입학했다. 첫 학기에 부모가 제시한 성적 커트라인을 넘었다. 부모는 손을 들었다. 그렇게 고교 6개월 만에 국내 학업을 접고 혈혈단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현지 고교를 마치고 힐러리 클린턴이 나온 웰즐리여대를 졸업했다.

2010년대 초반 글로벌 컨설팅 업체인 베인앤드컴퍼니 한국지사에서 일할 때였다. 식도락을 즐겨 맛집을 돌아다녔고, 퇴근 후엔 이런저런 요리를 만들었다. 요리도 손이 많이 가지만 장보기 또한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누군가 싱싱하고 좋은 식재료를 집 문 앞까지 가져다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소원이 생겼다. ‘샛별 배송’의 원조인 마켓컬리 사업 아이디어가 싹튼 순간이었다.

마켓컬리는 2015년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고 4년여가 흐른 2019년의 마지막 날 저녁 서울 장지동 서울복합물류센터. ‘MARKET Kurly’라고 보라색으로 인쇄된 골판지 상자에 물품을 분류해 담는 손길이 분주하다. 그 손 중에 하나는 김슬아 대표의 것이었다. 김 대표는 이날 저녁부터 담당 직원들과 함께 배송할 물품을 분류하고 포장했다.

1t 트럭 몰며 직접 택배도

최고경영자(CEO)가 ‘막노동’을 한 건 혹시 송년 이벤트? 아니었다. 마켓컬리 본사는 서울 논현동에 있다. 하지만 배송이 밀리는 시기에 김 대표는 일터를 물류센터로 옮긴다. 거기서 회의하고 자기 일을 처리하다 배송을 맡은 주문처리팀에서 요청이 오면 합류해 분류·포장 같은 현장 작업을 한다. 지난해 12월은 거의 날마다 이런 식으로 보냈다. 좀 희한한 CEO다.

왜 현장 일까지 직접 하나.
“회사 일이 돌아가려면 가서 일손을 거들어야 하니까….”
배송 일만 거드나.
“아니다. 판매 관련 부서에서 요청하면 가서 프로모션을 하고, 고객 응대 부서에서 얘기하면 고객과 직접 통화를 한다. 영업을 뛰기도 하고, 회사에 돈이 필요하면 투자자 구해오고…. 사업 초기에 택배 인력이 모자랄 때는 직접 1t 트럭을 몰았다. 내가 하는 일을 보면 회사 상황을 알 수 있다. 주문이 많아 매출이 쭉쭉 늘 때는 배송에 매달린다. 반대로 고객 확보하러 뛰어다닐 때는 매출이 정체될 때다. CEO가 다른 게 아니다. 회사에 필요한 것, 부족한 것을 채워주는 필러(filler) 역할을 하는 게 CEO라고 생각한다.”
부서·팀들이 CEO에게 “와서 일 도와달라”고 하는 게 쉽지 않을 텐데.
“그뿐 아니라 CEO에게 아닌 것은 분명히 아니라고 말하는 게 우리 문화다. 커뮤니케이션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서로 이름을 부른다. 그래야 편하게 얘기할 수 있으니까. 나도 ‘슬아님(이름 + 님)’아니면 영문명 ‘소피’다. 커뮤니케이션을 중시하는 이유는 마케팅·판매·배송 같은 조직들이 한 몸처럼 돌아가야 해서다. 팀워크로 서비스를 전달해야 한다. 화합과 밸런스가 중요하기에, 컬리(마켓컬리의 법인명)는 직원으로 개성이 강한 사람을 원하지 않는다.”
CEO는 현장 작업 말고 다른 일도 많지 않나. 전략과 원칙을 정하는 것 같은.
“그렇다. 회사의 비전, 연간 목표, 분기 목표, 월간 목표를 세운다. 그러면 다음은? 실행이다. 각 팀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움직여야 한다. 그걸 도우려고 현장 일을 하는 거다.”
‘회사의 비전’은 뭐로 정했나.
“‘생산자·소비자까지 모두 잘사는 유통업체’다. 우리는 판매 대행만 하는 유통업체와 다르다. 생산자에게서 100% 직매입한다. 재고 부담을 생산자가 아니라 우리가 떠안는다. 처음 그렇게 한다고 했을 때, 경영컨설팅사 시절 동료가 ‘리스크가 너무 크다. 망하는 지름길’이라고 했다. 그러나 해내면 좋은 길이기에 도전했다. 직매입은 우리가 품질 관리까지 하는 것이어서 소비자에게도 좋은 일이다.”
‘퇴근 후 저녁 장만을 위한 장보기 걱정 덜어주기’가 목표였다면, 새벽 배송이 아니라 저녁 배송이 맞는 것 아닌가.
“오후에 배송 와서 퇴근 때까지 문밖에 놓여 있는 것보다, 아침에 받아 냉장고에 넣는 게 더 싱싱하지 않겠나. 그리고 이젠 아침 식사용 상품 판매가 많이 늘었다.”

3년 만에 50배 성장, 적자는 지속

마켓컬리

마켓컬리

새벽 배송 아이디어는 적중했다. 마켓컬리 매출은 그야말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2015년 30억이던 매출이 3년 뒤인 2018년 1570억으로 52배가 됐다. 2018년에도 340% 성장했다. 지난해 실적은 아직 나오지 않았으나 “대략 성장률이 2018년과 비슷하다”고 한다. 매출이 5000억원에 이른다는 얘기다. 마켓컬리가 인기를 얻자 지금은 대기업들이 너도나도 새벽 배송에 뛰어들어 경쟁이 치열해졌다.

대기업들이 아이디어를 베낀 것 아닌가.
“신문·우유 배달이 마켓컬리보다 먼저였다.”
경쟁이 심해진 건 사실이다.
“정체된 시장에서라면 어려워질 거다. 하지만 지금 이 시장은 아주 빨리 팽창하고 있다. 오프라인 대형마트의 식품 시장을 빼앗아 오고 있다. 식품 시장이 연간 약 100조원 정도인데, 온라인으로 넘어온 것은 10조도 안 된다. 의류나 책은 온라인 비중이 40%를 넘었다. 식품도 그 비슷하게 가면 온라인 시장은 40조, 50조원으로 커질 거다. 경쟁이 심해도 충분히 성장할 수 있다. 경쟁이 주는 압박 또한 우리에겐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훌륭한 경쟁자가 없으면 기록이 잘 나오지 않는다.”
식품뿐 아니라 주방·생활·뷰티 용품과 가전까지 취급 상품을 늘렸다.
“시작은 고객 요청이었다. 식품 아닌 첫 상품이 냄비였다. 식품 홍보용으로 올린 사진을 보고 고객이 ‘저 냄비 사고 싶다’고 한 게 시초다. 생리대처럼 소비자들이 한번 불신을 가졌던 상품도 많이 들여왔다. 유통 중재자인 우리가 소비자에게 좋은 제품을 직접 골라 준다는 철학에 맞췄다.”

마켓컬리는 아직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2018년 337억원 영업 손실을 냈다. “19년에도 매출 대비 영업손실률이 전년과 비슷하다”고 한다.

대규모 적자가 계속되고 있다.
“마케팅과 물류 투자 때문이다. 고객이 늘어나는 만큼 물류센터를 확장해야 한다. 지난해 경기 남양주시 화도읍과 용인시 죽전동에 센터 두 곳을 더 만들었다. 올해 경기 김포시에 하나를 더 짓는다.”
투자자들이 흑자를 요구할 텐데.
“오히려 길게 가자고 한다. 5년, 10년 후에 1등 하기 위해 지금 충분히 투자하고 있느냐고 묻는다. 그러면서 주주들은 고객 인식 개선, 물류 자산, 기술에 더 투자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대용량 데이터 흐름을 순식간에 파악해 고객에게 적절한 상품을 추천하는 같은 새 기술을 개발하고 엔지니어를 뽑으라고 한다.” 

빅데이터 수요·공급 예측, 그래도 고등어는…

마켓컬리에겐 빅데이터 분석이 핵심 가운데 하나다. ‘신선식품을 최대한 싱싱한 상태로 배달해야 한다’는 사업의 특성 때문이다. 그날그날 얼마나 팔릴지를 잘 예측해 생산자에게 발주해 놓아야 한다. 어긋나면 소비자 주문에 맞추지 못하거나, 아니면 거꾸로 안 팔린 식품을 대량 폐기해야 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아직까지는 성공적이었다. 신선식품 폐기율이 1% 미만이다. 자체 개발한 빅데이터 분석 시스템 ‘데멍이(데이터 물어다 주는 멍멍이)’의 덕이다. 그래도 한계가 있다. 고등어처럼 바다에서 잡아 바로 마켓컬리 물류센터로 오는 수산물이 문제다. 어획량을 예상하기 어렵다. 주문을 잔뜩 받았는데 잡히지 않으면 사고가 난다. 김슬아 대표는 “달이 높이 뜨면 생선들이 숨어 잘 잡히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다”며 “수산 담당자가 달 상태를 살펴 높이 뜨면 주문받는 양을 줄이는 식으로 대응한다”고 전했다. “빅데이터로 어쩔 수 없는 영역”이라고도 했다.

그렇다면 과연 ‘달이 높이 뜨면 고기가 숨는다’는 속설은 진실일까. 국립과학수산연구원 김중진 박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고등어는 배에 불을 밝혀 유인해 잡는다. 그런데 달이 높이 뜨는 건 보름을 전후한 시기여서 밤바다가 밝다. 그땐 불빛의 유인 효과가 떨어져 고등어가 잘 잡히지 않는다.”

권혁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