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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의 검찰인사는 악습" 말했던 文대통령, 결국 공수표됐다

중앙일보

입력

현장에서 

참여연대가 문재인 대통령의 검찰개혁 공약 중 "추진 중인 정책이 확인되지 않고 진척도 없는 상황"이라며 박한 평가를 한 대목이 있다. '미완'과 '미흡' 평가를 받은 검찰 인사 중립성·독립성 강화 공약이다.

文대통령 두 차례 대선서 檢인사중립 확보 공약 #참여연대 "어떠한 정보나 진척도 없다"고 지적

2015년 7월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였던 문재인 대통령과 이종걸 당시 원내대표(왼쪽부터) 등 의원들이 국회 로텐더홀에서 검찰의 '성완종리스트' 수사결과에 대해 반발하며 "새누리당은 성완종 특검 즉각 수용하라"며 피켓를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중앙포토]

2015년 7월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였던 문재인 대통령과 이종걸 당시 원내대표(왼쪽부터) 등 의원들이 국회 로텐더홀에서 검찰의 '성완종리스트' 수사결과에 대해 반발하며 "새누리당은 성완종 특검 즉각 수용하라"며 피켓를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중앙포토]

문 대통령은 2012년과 2017년 두 차례 대선에서 살아있는 권력에 웅크리는 정치 검찰을 비판했다. 다음은 2012년 12월 당시 대통령 후보였던 문 대통령이 직접 읽은 검찰개혁 공약이다.

문재인 후보 검찰개혁 전문 中

"검찰총장 임명권을 국민에게 돌려드리겠습니다. MB정권 5년 동안 대통령 및 청와대가 검찰 수사와 인사에 관여했던 악습을 완전히 뜯어 고치겠습니다"

두번의 대선 공약  

문 대통령은 2017년 대선에서도 똑같은 공약을 내세웠다. 검찰총장을 대통령에게 추천하는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에 권력 개입을 배제하고 검찰 인사위원회의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겠다고 했다. 취임 후 100대 국정과제에도 포함됐다. 돌이켜보면 모두 공수표가 된 공약들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지난 8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검찰 인사를 앞두고 "인사권은 대통령에 권한이 있다는 것이 명시돼있다"고 강조했다. 한 현직 검사장은 "그들이 그토록 증오하던 황교안·우병우 때로 검찰개혁의 시계가 되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7월 25일 오전 청와대 본관 충무실에서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준 뒤 환담을 하러 인왕실로 이동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7월 25일 오전 청와대 본관 충무실에서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준 뒤 환담을 하러 인왕실로 이동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수사를 안한 검사가 올라간다

"인사는 메시지라고 합니다" 지난해 7월 권순철(51·연수원 25기) 전 동부지검 차장검사가 사의를 밝히며 검찰 내부망에 남긴 말이다. 송인배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과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 등 현 정권 인사를 수사한 권 차장검사는 한직으로 발령난 뒤 옷을 벋었다. 현장에 있는 검사들은 이번 추 장관 인사에 담긴 메시지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이번 인사의 특징은 과거와 달리 수사를 한 검사가 좌천되고 수사를 하지 않은 검사가 영전한 것"이라 말했다. 과거 보수 정부에서 정권 입맛에 맞는 수사를 하는 검사가 잘 나갔던 모습과는 대조되는 양상이다. 다만 이때도 윤석열(60·연수원 23기) 검찰총장은 국정원 댓글사건 수사를 하다 한직으로 밀려났다.

문재인 정부 검찰 인사의 최대 수혜자로 불리는 이성윤(58·연수원 23기) 서울중앙지검장은 13일 취임사에서 검찰권의 절제와 국민의 인권보호를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대검과 법무부의 핵심 보직을 거쳐 온 이 지검장은 중앙지검장 취임 전까지 일선 검사장을 맡은 적이 없다.

이성윤 신임 서울중앙지검장이 13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강당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연단에 오르고 있다. 오종택 기자

이성윤 신임 서울중앙지검장이 13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강당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연단에 오르고 있다. 오종택 기자

인권 전문가의 靑비판

이 지검장이 인권을 강조한 날 공교롭게도 청와대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검찰 수사의 인권침해 여부 조사를 요청했다. 국가 인권정책 기본계획 가이드라인을 집필해 지난해 법무부 장관상을 받은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는 "조국 전 장관 가족들만큼 검찰 수사에서 특혜와 발언권을 누린 이들이 어디있냐"며 "인권을 띄워서 검찰을 압박하고 개혁의 명분으로 삼으려는 정치적 행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지청장 출신의 변호사는 "검찰의 최우선 목표는 권력형 비리를 포함한 범죄수사다. 그 과정에서 인권침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맞다"며 "오늘 이 지검장의 취임사는 주객이 전도된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감찰 무마’ 의혹을 받고 있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해 12월 27일 오전 구속영장이 기각된 후 서울 송파구 동부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뉴스1]

‘감찰 무마’ 의혹을 받고 있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해 12월 27일 오전 구속영장이 기각된 후 서울 송파구 동부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뉴스1]

검사의 충성

노무현 정부의 초대 법무부 장관인 강금실 전 장관은『문재인·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에서 "인사권을 행사하고 검찰총장보다 장관이 힘이 세다는 것을 보여주니 검찰이 완전히 충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그만두게 되었습니다"라고 회고했다. 1년 5개월의 짧은 임기를 아쉬워하는 대목이다.

임기가 1년 남짓했던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도 같은 책에서 "나한테 다음 인사권이 없다는 것을 뻔히 아는데 누가 충성을 하겠나"라고 했다. 1월 중 조국·울산시장 수사팀 지휘라인뿐 아니라 실무자(차장·부장검사) 까지도 교체를 검토 중인 추 장관의 의중도 여기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 당장은 반발이 심할지라도 "인사는 두 번 물먹으면 끝"이라는 검사들이 곧 충성할 것이라 보는 것이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검찰을 '신하'라 표현하기도 했다. 하지만 검찰의 충성을 요구하는 인사가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한 권력에 당당한 검찰을 만드는 검찰개혁에 부합할지는 의문이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13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고 있다. [연합뉴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13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고 있다. [연합뉴스]

"가짜 검찰개혁" 

정희도 대검 감찰2과장은 13일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추 장관의 인사를 비판하며 "저는 추 장관님이 말씀하시는 검찰개혁이 '검찰을 특정세력에게만 충성'하게 만드는 '가짜 검찰개혁'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라고 적었다. 그의 동료 검사는 "조금만 참았으면 될 것을, 정 과장도 곧 멀리 밀려날 것"이라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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