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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자를거야" 대리점에 갑질한 직원 잘랐다, 정당할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경영의 최소법(15)

인터넷은 수많은 신조어를 만들어 냈습니다.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가 ‘갑질’이라는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위키피디아 백과사전은 ‘갑질’에 대해 갑을 관계에서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갑의 행동에서 특정 행동을 깎아내려 일컫는 ‘~질’이라는 접미사를 붙여 부정적인 어감을 강조한 신조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수직적 관계가 주류인 한국 사회의 특수성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관련된 대표적인 사건으로 대리점 강매, 땅콩 회항 사건 등이 있지만, 그 밖에도 여러 가지 갑질 유형이 있습니다. 관련된 최근 판결을 소개해 봅니다.

대리점 강매, 땅콩 회황 등 각종 유형의 '갑질' 사건이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연합뉴스]

대리점 강매, 땅콩 회황 등 각종 유형의 '갑질' 사건이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연합뉴스]

(사례1) 갑질한 직원을 해고할 수 있을까?

직원 A는 유명 아이스크림 H사의 업무 담당 이사다. H사는 전국에 대리점을 두고 대리점에 아이스크림 배송업무를 위탁해 왔는데, A는 대리점 관리 업무를 담당했다. A는 수시로 대리점들에 ‘계약 해지’를 운운하며 소위 갑질을 해왔다.

예를 들어 한밤중에 술에 취한 상태로 전화를 걸어 “내가 관두는 한이 있더라도 다 자를 거야”라고 말하거나, 대리점주의 부인까지 카카오톡 대화방에 초대해 대리점을 비난하고 모욕성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심지어 시계나 골프와 관련된 선물을 받아왔고, 수십 차례에 걸쳐 유흥 접대도 받았다.

이러한 A의 행동을 참다못한 대리점들은 회사에 ‘A가 영업책임자의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 갑질 횡포를 했으므로 해고해 달라’라고 요구했다. 회사는 징계위원회를 열어 해고를 의결하고 A에게 통지했다. A는 해고가 부당하다며 구제신청을 했으나 서울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A는 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했는데, 법원의 판단은 어땠을까요?법원은 소위 갑질을 이유로 한 해고는 정당하다고 판단하면서, H회사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법원은 A가 대리점 계약 유지 여부에 사실상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에 있어 권력의 우위에 있으며, A의 행위는 최근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된 갑질에 해당한다고 보았습니다. 특히 직원의 갑질은 사업주가 손해배상책임을 지게 만들 수 있고, 갑질 직원이 계속 근무할 경우 2차 피해가 우려된다고 보았습니다.

특정 기업이 갑질을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면 이미지가 실추되고, 불매운동으로 기업 존립마저 위태로워질 위험성마저 있습니다. 이 때문에 갑질을 한 직원에 내린 징계해고 처분은 징계권을 남용했다 볼 수 없다고 보면서 회사 측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직원 A의 갑질은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의 중대한 사유이기 때문에 회사의 징계해고는 정당하다는 것입니다.

갑질은 부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나 기분 나쁜 표현이라고 해서 모두 모욕죄로 처벌할 수는 없다. 그러면 갑질이라는 표현을 모욕죄로 처벌할 수 있을까. [연합뉴스]

갑질은 부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나 기분 나쁜 표현이라고 해서 모두 모욕죄로 처벌할 수는 없다. 그러면 갑질이라는 표현을 모욕죄로 처벌할 수 있을까. [연합뉴스]

(사례2) 갑질이라는 표현이 모욕죄에 해당할까?

B는 건물 1층을 빌려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었다. B는 건물을 사들인 C와 건물 화장실 사용 문제, 이주비를 받고 이사를 나가는 문제 등으로 다투게 되었다. B는 ‘건물주 갑질에 화난 B원장’이라는 내용이 포함된 미용실 홍보 전단 500장을 제작해 이 중 100장을 지역 주민들에게 배포했다. 그리고 15장은 석달간 미용실 정문에 부착했다. 검찰은 ‘건물주라는 지위를 이용하여 세입자인 B에게 갑질을 하는 사람’이라는 취지로 공연히 C를 모욕했다는 혐의로 기소했다.

법원의 최종 판단은 “갑질이라는 표현은 무례하나 모욕죄에 해당한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갑질이 부정적인 의미를 갖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당신이 갑질했다’라는 말은 듣는다면 기분 좋은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기분 나쁜 표현이라고 해서 모두 모욕죄로 처벌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갑질이라는 표현을 모욕죄로 처벌할 수 있을까요?

갑질이 모욕죄로 처벌할 표현에 해당하는지는 매우 어려운 문제라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법원도 의견이 엇갈렸습니다. 위 사건에 대해 1심 법원은 갑질이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나 경멸적 표현에 이를 정도는 아니라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하지만 2심 법원은 갑질이라는 표현은 상대방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할 추상적인 판단이나 상대방에 대한 경멸적 감정을 내포하고 있어 모욕에 해당한다며 유죄 판결을 하면서 벌금형을 선고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건물주의 관계, 전단을 작성하게 된 경위, 갑질이라는 표현의 의미와 전체적인 맥락, 표현의 방식과 전후 정황 등을 살펴보면 표현이 상대방을 불쾌하게 할 수 있는 다소 무례한 방법으로 표시되기는 했지만, 객관적으로 건물주의 인격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저하할 만한 모욕적 언사로 보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갑질은 무례한 표현이지만, 모욕은 아니라는 취지입니다. 앞으로 갑질이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의미가 더 강해진다면 모욕죄가 인정될 수 있다고 보입니다.

최근 근로기준법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 규정을 두면서 직장 내 갑질에 대해 법적 규제까지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보입니다. 법적 규제로 을의 상처가 치유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2020년 경자년 새해 갑질 없는 사회를 기대해 봅니다.

변호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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