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임명동의안 표결을 앞둔 정세균 국무총리 후보자가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등 일부 야당 지도부에 직접 전화를 걸어 찬성표결을 부탁한 것으로 확인됐다.
12일 평화당 관계자에 따르면 정 후보자는 지난 10일 정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임명동의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정 대표가 도와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통화 중에 잠시 긴장도 흘렀다고 한다. 정 대표가 중앙일보와 통화하는 과정에서 복기한 바에 따르면 아래와 같은 대화가 오갔다.
▶정동영="총리로서 선거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약속이 우선돼야 한다. 만약 그럴 우려가 있다면 우리(평화당)는 찬성할 수가 없다."
▶정세균="전혀 불법을 할 생각이 없고 그러지도 않겠다."
▶정동영="정 의장(국회의장을 뜻함), 총리가 '초도순시'를 명목으로 고향인 전북을 방문해서 민주당 총선 후보자들과 만나면 그게 바로 선거개입이다. 불법이 아니더라도 꼼수다."
▶정세균="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일도 하지 않겠다. 더는 걱정하지 말라. 이번 선거가 끝나면 협치를 하려고 한다."
▶정동영="선거 때 야당을 죽이려고 하면, 선거 후 협치가 무슨 소용이 있나. 선거 중립을 지켜달라."
전남·북을 아울렀던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전북을 대표해 온 두 정치인 사이엔 부드럽지 않은 인연이 있다. 1995년 제1야당이던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총재가 영입한 '정치 입문 동기'인 두 사람은 노무현 정부에선 각각 통일부 장관(정동영)과 산업자원부(정세균) 장관을 지냈고, 모두 열린우리당 의장을 역임했다. 그러나 2007년 대선에서 패배한 정 대표가 2009년 4월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전주 덕진 출마를 선언하자 당 대표이던 정 후보자는 정 대표를 공천에서 배제했다. 정 대표는 탈당을 감행해 무소속으로 당선됐지만, 복당까지는 9개월이 걸렸다. 당시 정 후보자는 "친노 통합 우선" 입장을 고수했다.
이번 총선에서도 정 후보자가 주목받아 전북의 표심이 민주당에 쏠리면 정 대표의 정치생명이 위협받을 수도 있다. 정 대표는 "정 후보자에게 분명하게 짚은 것도 있지만, 당적과 상관없이 '잘 되길 바란다'는 덕담도 했다"고 전했다.
같은 전북 출신인 유성엽 대안신당 의원과의 통화는 훨씬 부드러웠다고 한다. 유 의원은 12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대안신당을 이끌어 도와달라'고 하길래 '제게 뭣 하러 전화하느냐. 걱정 안 하셔도 된다'고 말했는데도 재차 전화가 왔다"고 말했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박주선 바른미래당 의원 등도 정 후보자의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정 후보자의 한 측근 인사는 "반대표가 예상되는 한국당 중진들에게도 전화를 돌린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정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 표결이 무산되거나 부결될 것으로 전망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정 후보자와 연말 모임에서 만났다는 한국당의 한 중진 의원은 "그 모임에서도 정 후보자가 '도와달라'고 했다"며 "청문회를 봐도 큰 문제가 없었다. 한국당에서도 찬성표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임명동의안 표결이 무기명 투표로 이뤄진다는 점과 호남의 반대가 있는 유치원 3법의 표결 순서가 미정이라는 점 등이 그나마 변수다.
정 후보자와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한 민주당 의원은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게 정 후보자의 성격"이라며 "도움을 구하는 과정 자체를 협치의 시작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효성 기자 kim.hyose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