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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장세정의 시선

윤석열의 운명은 제갈량일까, 사마의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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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장세정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추 장관의 '학살 인사' 후폭풍이 거세다. [뉴스1, 뉴시스]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추 장관의 '학살 인사' 후폭풍이 거세다. [뉴스1, 뉴시스]

 10여개 혐의로 이미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 조국 전 민정수석은 분노한 군중의 1차적 관심사가 아니었다. 조국을 대체한 새로운 표적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었다.'추미애 탄핵'과 '친문 적폐 수사 방해자 추미애는 망나니 칼춤 접어라'는 문구가 등장했다.
 하지만 새해에도 광장을 가득 메운 국민의 외침에 청와대가 제대로 응답할 것 같지 않다. 오히려 갈수록 민심을 무시하고 역주행한다. 조국의 대타로 등장한 추미애의 최근 행보를 보면 양심과 이성을 중시하는 판사 출신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폭주 기관차' 같다. 왜 무리수를 둘까.

지난 11일 '무법 불법 추미애 탄핵' 손팻말을 들고 있는 서울 광화문 집회 참가자. 장세정 기자

지난 11일 '무법 불법 추미애 탄핵' 손팻말을 들고 있는 서울 광화문 집회 참가자. 장세정 기자

'윤석열 화이팅 정의 수호' 손팻말도 지난 11일 서울 광화문 집회 현장에 등장했다. 장세정 기자

'윤석열 화이팅 정의 수호' 손팻말도 지난 11일 서울 광화문 집회 현장에 등장했다. 장세정 기자

 서울 광진을에서 다섯번 당선한 그는 다가오는 4월 총선에서 6선을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한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의 가상 대결 여론조사에서 밀린다는 소문이다. 부랴부랴 더불어민주당은 광진을에 임종석·이광재·김동연 차출 카드로 여론 간보기 중이다.
 조국 낙마는 추미애에게 위기가 기회로 반전되는 순간이었다. 오세훈을 피해 불출마하면서도 법무부 장관이라는 정치적 실리까지 챙기는 꽃놀이패였던 셈이다. '야생마' 윤석열을 잘 요리하면 2011년 당시 오세훈 시장의 갑작스러운 사퇴로 치른 보궐선거에서 불발된 서울시장의 꿈을 다시 꿀 수도 있을지 모른다.
 추 장관이 검찰 인사를 서두르는 과정에서 윤석열 총장과의 협의를 거치지 않아 검찰청법 위반이란 비판을 받았다. 그러자 청와대와 여당은 서둘러 윤 총장의 '거역' '항명' 구도로 여론을 몰아가고 있다.

이낙연 총리가 지난 9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통화하고 있다. 이 총리는 검찰 인사 관련 상황을 보고 받고 ’인사 과정에서 검찰청법이 정한 법무부 장관의 의견 청취 요청을 검찰총장이 거부한 것은 공직자의 자세로서 유감스럽다“ 며 ’법무부 장관은 검찰사무의 최고 감독자로서 잘 판단해 이번 일에 필요한 대응을 검토하고 실행하시라“라고 지시했다. [사진 총리실]

이낙연 총리가 지난 9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통화하고 있다. 이 총리는 검찰 인사 관련 상황을 보고 받고 ’인사 과정에서 검찰청법이 정한 법무부 장관의 의견 청취 요청을 검찰총장이 거부한 것은 공직자의 자세로서 유감스럽다“ 며 ’법무부 장관은 검찰사무의 최고 감독자로서 잘 판단해 이번 일에 필요한 대응을 검토하고 실행하시라“라고 지시했다. [사진 총리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지난 9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법무부 정책보좌관에게 징계 관련 법령을 찾아보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윤석열 총장을 징계할거란 관측이 나온다. [연합뉴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지난 9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법무부 정책보좌관에게 징계 관련 법령을 찾아보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윤석열 총장을 징계할거란 관측이 나온다. [연합뉴스]

 이 와중에 총선 출마를 위해 사퇴를 코앞에 둔 이낙연 총리가 느닷없이 판에 끼어들어 적잖은 관객을 갸우뚱하게 했다. 이 총리는 차기 대선 주자 여론조사에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를 앞서고 있어 표정관리 할 상황이다. 그런 이 총리가 추 장관을 두둔하며 윤 총장 징계를 시사하는 통화 장면을 연출했고, 이례적으로 언론에 사진이 공개됐다.
 여기에는 나름 정치적 계산과 이낙연·추미애의 특수 관계가 숨어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두 사람은 이른바 친문이 아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눈에 띄어 정치에 입문한 동교동계다. 동교동계라는 이유로 오누이처럼 가깝게 지내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총리와 추 장관은 검찰의 칼 앞에 사실상 동병상련(同病相憐) 처지다.
 추 장관은 검찰이 수사 중인 문재인 정권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당시 민주당 대표였다. 그런 그가 살아 있는 정권의 의혹과 비리를 수사하지 못하도록 검찰의 손발을 묶는 인사를 했으니 적반하장(賊反荷杖)이란 뒷말이 나온다.
 이 총리의 동생은 공직자윤리법 위반 사실이 드러났다. 그 동생이 대표로 불법 취업한 SM삼환이 문재인 정부 들어 관급공사를 대거 수주했다고 야당이 문제를 제기한 상태라 여차하면 검찰이 특혜 의혹을 수사할 상황이다.

이낙연 총리가 2018년 6월 20일 당시 국회에서 열린 고위당·정·청 회의에 참석해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대화하고 있다. 두 사람은 김대중 대통령의 눈에 띄어 정치에 입문한 동교동계다. [연합뉴스]

이낙연 총리가 2018년 6월 20일 당시 국회에서 열린 고위당·정·청 회의에 참석해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대화하고 있다. 두 사람은 김대중 대통령의 눈에 띄어 정치에 입문한 동교동계다. [연합뉴스]

 물론 이런 배경과 이유만으로 이 총리와 추 장관의 연합전선 형성을 설명하기 부족할 수도 있다. 그래도 시간이 가면 숨겨진 진실은 드러날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 고위직을 지낸 한 법조인은 "조국 수사는 윤석열이 아니면 하기 어려운 수사였다"고 했다. 구 적폐든 신 적폐든 가리지 않는 검객(劍客) 윤석열의 차가운 칼에는 눈이 없다는 말인가. 윤 총장은 최근 지인에게 "검사는 검사다"라는 말도 했다고 한다. 윤 총장이든 무명의 일선 검사든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정의를 세우는 일은 검사의 사명이자 존재 이유다.
 일부에서 정치적 진영 논리를 앞세워 검찰 개혁을 주장하지만, 검찰의 오랜 숙제는 권력으로부터 독립성 확보가 핵심이다. 지난 9월 이 총리는 국회에서 윤 총장을 겨냥해 "자기 정치 하겠다고 덤빈다"고 거친 언사를 동원했다. 검찰을 겁박하는 것은 부정부패를 눈감으라는 해괴한 주문일뿐이다.
 윤 총장의 미래에 대해 한 지인은 "제갈량(제갈공명)이 아니라 사마의(사마중달)가 될 수도 있다"는 흥미로운 화두를 던졌다. 제갈량은 유비의 그늘에서 평생을 머물렀지만, 조조의 칼잡이였던 사마의는 조조의 의심을 잠재우고 마침내 천하 대권을 잡았던 인물이다.
 누가 이 시대의 조조·유비·손권인지 적확한 비교대상을 찾기는 어렵다. 분명한 것은 『삼국지』의 세 영웅 중에서 최후의 승자가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법치와 정치가 뒤죽박죽된 대한민국에서 삼국지 속 영웅들의 변화무상한 운명을 새삼 곱씹어본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지난 8일 '검찰 인사 대학살' 이후 윤석열 총장의 대응이 주목받고 있다.[중앙포토]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지난 8일 '검찰 인사 대학살' 이후 윤석열 총장의 대응이 주목받고 있다.[중앙포토]

장세정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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