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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 북, 노골적 남한 무시…그 뒤엔 하노이 노딜, 금강산 관광 재개 불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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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삶은 소대가리가 앙천대소할 노릇이라더니(2019년 8월 16일 문재인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 평화경제 제안에 대한 북한 입장) 바보 신세가 되지 않으려면 자중하라(1월 11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의 생일 축하 메시지 전달에 대한 북한 입장)는 소리까지 들었다. 끝없이 손을 내미는 한국에 북한이 이렇게까지 면박과 무시로 일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부, 영변 내주면 미국 양보 기대 줘” #북한, 한국이 배달사고 냈다고 불신

복수의 정부 안팎 소식통들은 지난해 2월 ‘하노이 노 딜’로 인한 불신 증폭을 주된 이유로 꼽았다. 북한은 2018년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 공동선언에서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에 합의하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해제 등이 담보된 것으로 이해했다는 것이다.

하노이 회담 직전인 지난해 1월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미국을 찾았을 때 “영변 외에 다른 핵시설은 없다”는 취지로 주장한 것도 이런 배경이었다고 한다. 미국이 구체적 비핵화 조치 계획을 묻자 “그것은 최고지도자가 결정할 일”이라는 식으로 얼버무리면서 제재 완화만 주로 요구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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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 인해 미국은 북한의 최종 목표가 진짜 비핵화가 아니라 ‘영변의 비핵화’가 아니냐고 의심했고, 섣부른 제재 해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다시 확인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우리 정부가 평양 남북 정상회담에서 영변을 내놓으면 미국이 양보할 것이라는 잘못된 기대감을 심어준 측면이 있다”며 “특히 이번에 무게감 있는 김계관 외무성 고문이 직접 담화를 낸 것은 한국이 국내정치적 이득을 노려 계속 중재자 같은 인상을 풍기는 데 특히 분노한 것 같다”고 말했다. 북한은 한국이 ‘배달사고’를 냈다고 보는 셈이다.

그렇다고 금강산 관광 재개 등 한국의 독자 제재가 풀린 것도 아니었다. 한 대북 소식통은 “북한 입장에선 한국이 미국을 설득도 못하면서 독자 제재를 해제할 배짱도 없다고 본다. 지금 김 위원장의 불만은 그동안 한국 말을 믿고 너무 많이 나와 지금에 와서 수습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북한의 이런 한국 무시는 상당 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김홍균 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북한은 이미 트럼프 대통령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고, 남북관계를 개선해 미국으로부터 뭔가 얻어낼 수 있는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미국과 협상을 하든, 대결을 하든 한국의 역할은 없으니 자꾸 끼어들려 하지 마라’는 메시지를 반복해서 내는 이유”라고 분석했다.

유지혜 국제외교안보에디터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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