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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독립" 반기 든 차이잉원…中 "역사의 죄인" 경고 던졌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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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잉원 총통이 11일 밤 재선이 확정된 뒤 주먹을 불끈 쥐며 국민들에게 화답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차이잉원 총통이 11일 밤 재선이 확정된 뒤 주먹을 불끈 쥐며 국민들에게 화답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대만이 이겼다”

11일 오후 9시, 대만 수도 타이베이 차이잉원(蔡英文) 선거 캠프 앞 광장은 환호로 넘쳐났다. 시민들은 차이잉원 총통의 애칭인 “샤오잉”(小英)과 “대만이 승리했다”는 구호를 번갈아 가며 연호했다.

흥분은 차이 후보의 득표수가 500만 표를 넘어가며 국민당 한궈위(韓國瑜) 후보를 150만 표 이상 따돌리기 시작하자 최고조에 달했다. 승리를 확신한 시민들은 대만 국기를 흔들며 목청껏 소리치고 그의 재선을 축하했다.

11일 차이잉원 총통 선거 캠프 앞 광장에서 국민들이 개표 방송을 보며 환호하고 있다. 박성훈 기자

11일 차이잉원 총통 선거 캠프 앞 광장에서 국민들이 개표 방송을 보며 환호하고 있다. 박성훈 기자

차이잉원 총통의 재선이 확정되자 지지자가 그의 후보 기호인 3번을 표시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AP=연합뉴스]

차이잉원 총통의 재선이 확정되자 지지자가 그의 후보 기호인 3번을 표시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AP=연합뉴스]

그의 연임은 예견된 것이었다. 현지에서 차이잉원 후보와 한궈위 후보의 유세 현장을 따라 다니며 시민들의 반응을 관찰했다. 마지막 유세날인 10일 차이 후보는 타이베이 시내를 1시간 동안 트럭을 타고 돌며 시민들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이때 거리에 나온 시민들이 차이잉원 총통을 바라보는 표정은 ‘존경’과 ‘기대’에 다름 아니었다. 시민들은 차이잉원 후보의 선거 기호 3번을 뜻하는 ‘OK’모양으로 손 모양을 만들어 양팔을 흔들었다. 지지 의사의 표현 방식이었다.

한궈위 후보의 대규모 유세 현장에서도 지지층의 열기는 뜨거웠다. 그러나 50~60대 이상의 장년층이 대부분이었고 차이잉원 총통의 지난 3년 반의 정책에 대한 비판 세력이 다수였다. 그들은 현 정부가 부패했고 경제는 몰락했으며 여론조사 결과는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15대 대만 총통 선거 결과.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15대 대만 총통 선거 결과.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한궈위 후보는 중국 정부를 적대시하면 대만 경제가 어려워진다고 주장했지만 국민들의 인식은 달랐다. 홍콩 사태를 지켜 본 국민들은 일국양제 체제인 홍콩에 대한 중국의 강압적인 태도에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여기에 지난 7월23일 한 후보는 “홍콩 시위는 홍콩에도 손실일 뿐 아니라 대만에도 손실”이라고 발언해 지지율 급락을 자초했다.

9일 오후 한궈위 후보 유세 현장. 박성훈 기자

9일 오후 한궈위 후보 유세 현장. 박성훈 기자

경제보다 주권 수호가 우선이라는 차이잉원 후보의 주장이 결국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다. 차이잉원 현 대만 총통은 817만표(57.2%)를 얻어 552만 표(38.6%)에 그친 국민당 한궈위 후보를 265만 표 차이로 눌렀다. 역대 총통 선거 중 최다 득표였다. 이날 동시에 치러진 입법위원 선거에서도 민진당은 총 113석 가운데 61석(54%)을 차지해 38석(33.6%)을 얻은 국민당을 이기고 과반을 확보했다. 최종 투표율은 74.9%로 2016년 66.3%보다 8%p 이상 높았다.

시진핑에 반기든 차이잉원..."中 협박·엄포에 굴복 않겠다"

차이잉원 총통이 당선 직후 가진 기자회견 장면.[EPA=연합뉴스]

차이잉원 총통이 당선 직후 가진 기자회견 장면.[EPA=연합뉴스]

재선에 성공한 차이잉원 대만 총통의 취임 일성은 대만 독립 선언이었다. 차이잉원 총통은 11일 당선 확정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중국은 대만에 일국양제(一國兩制, 한 나라 두 체제) 방안을 받아들이라고 압박했다”며 “주권을 양보하라는 중국의 일방적인 시도에 맞서 대만은 방위 체제를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대만해의 안전을 지킬 수 있는 국방력을 갖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중국 당국의 협박과 엄포에 굴복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월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대만과의 통일 방안으로 ‘일국양제’를 강조하며 여의치 않으면 무력 사용도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차이 총통의 이날 발언은 시 주석의 경고에 대한 정면 반박이었다.

나아가 “중국이 대만에 대한 무력 위협을 포기하는 것이 곧 ‘평화’이고, 양국이 상호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대등’이며 쌍방이 마주 앉아 미래 관계 발전을 말할 수 있는 것이 ‘대화’”라며 “대만의 미래는 2300만 대만 국민이 결정하는 ‘민주’에 따를 것”이라는 양안(중국과 대만) 관계의 4대 원칙을 천명했다. ‘하나의 중국’이라는 중국 정부의 입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11일 국민당 한궈위 후보가 선거에서 패배한 뒤 고개를 숙였다. [AP=연합뉴스]

11일 국민당 한궈위 후보가 선거에서 패배한 뒤 고개를 숙였다. [AP=연합뉴스]

차이 총통은 또 “이번 선거 결과의 중요한 의미는 국민들이 주권과 민주주의가 위협 당할 때 더 큰 목소리로 냈다는 점”이라며 홍콩 사태도 상기시켰다. 대만 민주주의 수호는 그가 유세 기간 내내 유권자들에게 호소했던 내용이다. 지난해 홍콩 시위와 중국 정부의 대응을 지켜보며 대만 국민들이 느낀 위협감은 차이잉원 총통의 지지율 회복에 고스란히 반영됐고, 재선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 선거에 가장 큰 도움을 준 것이 ‘중국’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이유다.

차이잉원 총통은 “지난 4년간 성과도 있었지만 부족한 점도 많았다”며 “청렴한 정부, 지역 균형 발전, 빈부 격차 개선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도 말했다.

“대만 독립 추구하면 역사의 죄인”…경고 던진 중국

중국 국무원 대만판공실 마샤오광(馬曉光) 대변인은 중국 정부는 대만에 대한 일국양제 방침을 견지한다는 성명서를 냈다. [사진 중국 국무원 대만판공실 홈페이지]

중국 국무원 대만판공실 마샤오광(馬曉光) 대변인은 중국 정부는 대만에 대한 일국양제 방침을 견지한다는 성명서를 냈다. [사진 중국 국무원 대만판공실 홈페이지]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민진당 출신의 차이잉원 총통이 연임에 성공한 데 대해 중국의 속이 편할 리 없다. 그것도 대만에서 1996년 총통 직선제가 실시된 이래 최다 득표로 당선됐으니 더욱 그렇다.

중국에서 대만 문제를 전담하는 국무원 대만판공실 마샤오광(馬曉光) 대변인은 그래도 절제된 입장을 보였다. 그는 앞으로 대만에 대한 중국의 정책을 다섯 가지로 요약해 말했다.

평화 통일과 일국양제(一國兩制, 한 나라 두 체제) 방침 견지, ‘하나의 중국’ 원칙 견지, 국가주권과 영토보존 수호, 어떤 형식이든 ‘대만독립’ 시도 반대, 대만 동포의 이익과 복지 증진 등이다.

그러나 이 같은 점잖은 반응은 중국 언론으로 가면 거의 저주와 독설로 바뀐다. 중국 관영 신화사는 ‘대만 선거 결과를 어떻게 봐야 하냐’란 제하의 글에서 차이잉원 당선의 배후엔 비열한 수단이 난무했다고 비난했다.

첫 번째는 수천 억 대만 달러를 미친 듯이 풀어 표를 샀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경쟁 후보를 공격했는데 특히 ‘인터넷 부대’를 동원해 가짜 뉴스를 살포했다. 세 번째는 중국에 대한 공포를 부추겨 대만 민중을 협박했다는 주장이다.

특히 차이잉원이 현재 집권하고 있는 상황을 십분 활용해 기만과 압박, 공갈 등의 더러운 수법으로 표를 낚아 올림으로써 그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우며 사악한 본성을 유감없이 드러냈다고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중국 환구시보(環球時報)는 ‘차이잉원과 민진당은 요란하게 떠벌리지 않는 걸 좌우명으로 삼아야 한다’는 제하의 사설에서 “차이와 민진당은 양안(兩岸, 중국과 대만) 문제에서 주관적 억측으로 주화입마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양안 사회 모두로부터 버림을 받고 끝내는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중국 언론 대부분은 ‘대만독립’ 추구는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는 막다른 길이란 주장을 펴 향후 대만이 중국 이탈의 행보를 보일까 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美 폼페이오 "미국과 강력한 동반 관계 발전시키자" 

미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12일 트위터를 통해 ’미국과의 강력한 동반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는 당신의 리더십에 감사한다’고 적었다. [트위터]

미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12일 트위터를 통해 ’미국과의 강력한 동반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는 당신의 리더십에 감사한다’고 적었다. [트위터]

반면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대만과의 전략적 동맹 관계를 강화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트위터를 통해 차이잉원 총통의 재선을 축하하면서 “강력한 민주체제의 힘을 과시했다”고 추켜세웠다. 그러면서 “미국과의 강력한 동반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는 당신의 리더십에 감사한다”며 사실상 대만과의 전략적 동맹 관계를 강화하고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향후 4년 간 중국과 대만, 미국을 둘러싼 국제적 긴장 관계는 더욱 고조될 수밖에 없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타이베이=박성훈 특파원 park.seong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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