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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 말고도 암·성병·사냥 수난···호주 야생동물 원래 위기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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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북동부를 휩쓸고 있는 산불 속에서 불에 타서 도망가는 코알라의 모습이 공개됐다. [유튜브 캡처]

호주 북동부를 휩쓸고 있는 산불 속에서 불에 타서 도망가는 코알라의 모습이 공개됐다. [유튜브 캡처]

지난해 9월부터 다섯 달째 계속되는 호주의 산불.
가뭄과 고온으로 바짝 마른 숲에 옮겨붙은 불이 꺼질 줄 모른다. 기후변화 재앙이란 지적이 나온다.

벌써 남한 면적보다 넓은 10만7000㎢가 불탔고, 28명이 목숨을 잃었다.
코알라와 캥거루 등 10억 마리의 야생 동물이 희생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물 부족에 늘어난 야생 낙타를 도살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호주 산불을 쉽게 잡지 못하는 것은 극심한 가뭄과 고온 탓이다.
격렬한 화염 토네이도가 나타나고, 화염 토네이도는 산불 적란운을 형성한다.
산불 적란운과 화염 토네이도는 악순환을 거듭하며 상승 작용을 일으키기도 한다.

하지만 호주에서 살아온 야생동물은 이번 산불이 아니더라도 오래 전부터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었다.

극심한 산불 피해를 계기로 호주 야생동물의 수난사를 돌아본다.

성병에 걸려 고통받는 코알라

지난달 22일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주 애들레이드 인근 커들리 크릭에서 소방관들이 젖병에 담긴 물을 코알라에게 먹이고 있다. [AP]

지난달 22일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주 애들레이드 인근 커들리 크릭에서 소방관들이 젖병에 담긴 물을 코알라에게 먹이고 있다. [AP]

뭉툭한 코에 순하게 생긴 눈을 가진 코알라는 귀여운 모습 때문에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코알라는 행동이 느린 편이다. 하루에 보통 20시간을 자고 나머지 시간 동안에는 유칼립투스 나뭇잎이나 새싹만 약 900g 정도 먹고 산다.
평소에는 물을 마시지 않는지만, 가뭄이 심해지면서 직접 물을 마시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한다.

코알라의 몸길이는 60~80㎝이다.
임신 기간은 25~35일로 한 번에 약 2㎝ 길이의 새끼 한 마리를 낳는다. 육아 주머니 속에서 몇 개월 기른 후에는 어미가 다시 반년 정도 업어서 기른다.

코알라는 호주의 동부와 동남부 지역 해발 600m 이하의 유칼립투스 숲에 산다.
사람들은 1870년대부터 1920년대 사이에 사람들이 모피를 얻기 위해 코알라를 사냥하면서 숫자가 줄기 시작했다.

호주 내 코알라 숫자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2018년 기준으로 호주에는 32만 9000마리 정도의 코알라가 남아있다는 보고도 있지만, 8만 마리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있다.

뉴사우스웨일스 주에서는 2018년 코알라 숫자가 3만6000마리로, 20년 전보다 26%가 줄었다는 보고가 나왔다.
기후변화와 서식지 파괴, 질병 확산, 개의 공격 등이 원인으로 지적됐다.
반면 빅토리아 주에서는 코알라 숫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2015년 주 정부에서 안락사와 함께 암컷에 대한 피임 시술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2016년 코알라의 절반 정도가 성병의 일종인 클라미디아(기생성 세균)에 감염돼 숫자가 급격히 줄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짝짓기를 통해 클라미디아에 감염된 코알라는 결막염으로 인해 시력을 잃고, 암컷은 불임이 된다.
육아 주머니 속의 새끼 코알라도 병에 걸리기도 한다.

한편, 코알라는 이번 산불로 서식지의 80%가 파괴되는 등 엄청난 피해를 당하였다.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 캥거루 섬에서만 4만8000마리 코알라 중에 2만5000마리가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골칫거리가 된 캥거루

지난 7일 산불 피해를 입은 호주 캥거루 섬의 국립공원에서 목격된 캥거루. [EPA=연합]

지난 7일 산불 피해를 입은 호주 캥거루 섬의 국립공원에서 목격된 캥거루. [EPA=연합]

캥거루는 호주의 상징이지만, 해를 끼치는 동물이기도 하다.
산불이 확산하기 전인 2017년 호주의 농부들이나 생태학자들은 캥거루 숫자가 너무 많아 생태계를 훼손하기 때문에 캥거루 고기를 더 많이 먹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호주 정부 추산에 따르면 2016년 기준으로 모두 4500만 마리의 야생 캥거루가 살고 있다. 2010년 2700만 마리에서 급격히 불어난 것이다.
강수량이 늘어나면서 먹이를 얻기가 쉬워진 때문이다.

매년 캥거루를 포획하고는 있지만, 각 주에서는 캥거루 포획을 까다롭게 규제하는 편이고, 포획을 둘러싸고 논쟁도 벌어진다.

일부에서는 캥거루 고기가 지방 성분이 적고, 캥거루가 다른 가축에 비해 온실가스인 메탄을 적게 배출하기 때문에 캥거루 포획과 고기 소비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호주에서는 캥거루 4000여 마리가 포획됐다. 포획된 캥거루 가죽은 수출되지만, 고기는 버려지는 경우도 많다.

사살되는 것 외에 로드킬로 문제다.
2004년 기준으로 호주에서는 1만7748건의 로드킬이 발생했고, 이 중 73%인 1만3000건은 캥거루 등 유대류가 희생된 것이다.

암으로 죽어가는 태즈메이니아 데블

태즈메이니아 데블. [AFP=연합]

태즈메이니아 데블. [AFP=연합]

태즈메이니아 데블(Tasmanian Devil)은 과거 호주 본섬에도 살았지만, 지금은 남쪽에 위치한  태즈메이니아 섬에서만 사는 육식 동물이다.
크기는 작은 개 정도이고, 육아 주머니를 가지고 있다.

암컷은 3주 임신 후에 0.2g 정도 되는 새끼 20~30마리를 낳는다.
육아 주머니에는 젖꼭지가 4개뿐이어서 새끼들 사이에 경쟁이 치열하고, 결국 몇 마리만 살아남는다.
새끼는 100일 후 약 200g으로 자라고 육아 주머니에서 방출된다.

1990년대 후반부터 태즈메이니아데블 사이에서는 안면암(devil facial tumor disease, DFTD)가 번지기 시작했다.
특이하게 암이 전염되면서태즈메이니아데블 숫자도 급격히 줄기 시작했다. 이전 숫자와 비교하면 이제는 10%만 남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태즈메이니아 데블은 짝짓기 과정에서, 또 먹이 다툼 때 서로 얼굴을 할퀴고 상처를 입는다.
상처가 낫는 과정에서 입 주변에 혹이 생기고, 이것이 먹이 활동을 방해해 결국 죽게 한다.

영국 연구팀은 유전적 분석 결과, 태즈메이니아 데블의 암은 90년대 북동부 지역에 살았던 단 한 마리의 암컷에서 시작됐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보통은 암세포를 외부인자로 인식하는 면역 체계에 의해 개체 간 전염이 저지되지만, 이 암의 경우 면역체계에 관여하는 유전자에 돌연변이를 일으켜 개체 간 확산이 계속된다는 것이다.

안면암에 걸린 태즈메이니아 데블. [중앙포토]

안면암에 걸린 태즈메이니아 데블. [중앙포토]

2014년에는 태즈메이니아데블 사이에서 전염되는 또 다른 암이 발견되기도 했다.

하지만 태즈메이니아 데블 사이에서 암에 견디는 개체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암에 걸려도 2~3년 더 생존하면서 번식을 계속하는 것들이 등장, 멸종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있다.

하지만 타스마니아 데블 가운데 매년 350~450마리가 로드킬로 희생되고 있어 여전히 생존은 위협받고 있다.

이미 멸종된 태즈메이니아 호랑이

멸종된 태즈메이니아 호랑이. [중앙포토]

멸종된 태즈메이니아 호랑이. [중앙포토]

호주 본섬과 태즈메이니아에는 과거 태즈메이니아 호랑이(Tasmanian Tiger)가 살고 있었다.
육아 주머니를 가진 육식동물인데, 호랑이만큼 큰 편은 아니었다.
코요테만 한 크기였지만, 줄무늬를 갖고 있어 태즈메이니아 호랑이라고 불렸다.

호주 본섬의 태즈메이니아 호랑이는 3000년 전에 가뭄을 겪으면서 사라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유전적 다양성이 낮은 상태에서 기후변화를 겪으면서 살아남지 못한 것이다.

반면 태즈메이니아 섬에서는 20세기까지 살아남았다.
하지만 양과 가축을 해친다는 오해를 받았고, 사람들이 지속해서 사냥을 하는 바람에 숫자가 계속 줄었다.

야생에서는 1900년대 초에 사라졌고, 동물원에 잡혀있던 것도 1936년 마지막으로 숨을 거두면서 태즈메이니아 호랑이는 완전히 멸종됐다.

이후에도 태즈메이니아 호랑이를 목격했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고, 살아있다는 증거를 제시하면 거액의 상금을 주겠다는 제안도 있었다.
지난 80여 년 동안 태즈메이니아 호랑이가 살아있다는 사실은 확인되지 않았고, 구체적인 증거도 찾지 못했다.

도살 위기에 처한 낙타

낙타. [중앙포토]

낙타. [중앙포토]

극심한 가뭄을 겪고 있는 호주에서는 최근 헬리콥터를 동원해 호주 남부지역의 야생 낙타 수천 마리를 사살하고 있다.
가뭄 속에 낙타들이 물을 찾아 호주 원주민들이 사는 지역의 도시 거리를 배회하면서 마을과 건물을 훼손한다는 이유다.
울타리와 농장 설비를 훼손하고, 사람들의 식수를 마셔 없애기도 한다.

사실 낙타는 원래 호주에 살지 않던 동물이다. 사람들이 19세기 인도와 아프가니스탄, 중동 등지에서 들여왔다.
외딴 지역에 사람과 짐을 실어 나르기 위해 들여왔는데, 20세기 철도와 도로망이 깔리고, 자동차가 보급되면서 낙타는 버려졌고, 야생화됐다.

야생 낙타는 호주 중부지역을 중심으로 수십만 마리가 사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호주 정부는 2009년부터 낙타를 사살하기 시작, 2013년 말까지 13만 마리를 사살하기도 했으나, 이후에도 매년 10%씩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호주 전체를 뒤덮은 회색 토끼

호주 야생에서 살아가는 토끼. [중앙포토]

호주 야생에서 살아가는 토끼. [중앙포토]

원래 호주에는 토끼가 살지 않았다. 그런데 1859년 호주의 남동쪽 빅토리아 주의 한 농장 주인이 유럽 토끼를 농장에 풀어놓았다. 취미로 토끼를 사냥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토끼는 엄청난 번식력을 자랑하며 호주 전역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토끼는 풀을 다 뜯어 먹었고, 땅에 굴을 파 나무를 죽이는 등 생태계에 심각한 영향을 끼쳤다.

1907년 호주 정부는 토끼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6년에 걸쳐 2000마일(3200㎞)이 넘는 긴 울타리를 설치하고, 폭약 등으로 굴속의 토끼를 사냥하기도 했다.
하지만 울타리도 폭약도 소용이 없었다. 1910년 무렵에는 빅토리아 주 반대편인 호주 서해안에서도 토끼가 발견될 정도로 호주 전체에 토끼가 퍼져나갔다.
1920년대에는 토끼가 100억 마리에 이르기도 했다.

호주 정부는 토끼를 죽이기 위해 1950년대에 믹소마 바이러스를 살포했고, 6억 마리에서 2년 만에 1억 마리 수준으로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에 대한 저항성이 생기면서 1991년에는 다시 2억~3억 마리로 늘었다.
호주 정부는 다시 캘리시 바이러스를 들여와 1996년 10월부터 살포했다. 바이러스를 살포한 지 약 3년 만에 토끼들은 거의 멸종되었지만, 다시 이 바이러스에 면역을 지닌 토끼가 나타났다.

현재도 2억 마리의 토끼가 호주 전역에서 살아가고 있다.

독을 품은 수수두꺼비

호주에서 퍼지고 있는 외래종 수수두꺼비. 지난 7월 시드니 북쪽 50km에서도 발견된다. [AFP=연합]

호주에서 퍼지고 있는 외래종 수수두꺼비. 지난 7월 시드니 북쪽 50km에서도 발견된다. [AFP=연합]

수수두꺼비는 원래 중남미가 원산이다. 호주 정부는 사탕수수를 해치는 딱정벌레를 퇴치하기 위해 1935년 이를 들여왔다.
하지만 번식력이 뛰어나 퀸즐랜드와 뉴사우스웨일스 등지에서는 골칫거리가 됐다.

수수두꺼비는 당초 목적이던 사탕수수 딱정벌레는 먹지 않고 다른 작은 동물을 닥치는 대로 잡아먹었다.
이는 곤충을 먹는 고유종의 먹이를 빼앗는 결과를 낳았다. 머리 뒤에 독 분비샘이 있는 이 두꺼비를 먹은 반려동물들은 독에 중독되기도 했다.
병을 옮기기도 해 생물 다양성을 해치기도 했다.

두꺼비는 점차 남서쪽으로 퍼져나갔고, 확산 속도도 더 빨라졌다.
당초에는 연간 40㎞ 속도로 퍼졌으나, 이제는 연간 60㎞ 속도로 퍼지고 있다.
현재 두꺼비 숫자는 2억 마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독특한 호주의 야생동물

곤드와나 초대륙 [중앙포토]

곤드와나 초대륙 [중앙포토]

호주는 브라질·인도네시아·마다가스카르·미국·중국 등 전 세계 17개 최고 생물다양성(megadiverse) 국가 그룹에 포함된다.
최고 생물다양성 그룹에 들어가려면 5000종 이상의 고유 생물종을 가지고 있고, 바다와 접하고 있어야 한다.

호주는 오래전 곤드와나(Gondwana)라는 초(超)대륙의 일부였다. 지금의 남미와 아프리카, 인도, 남극대륙에서 떨어져 나온 것이다.
곤드나와는 1억4000만 년 전부터 분리가 시작됐고, 약 5000만 년 전 호주와 남극대륙이 분리됐다.

호주의 특별한 기후 덕분에 곤드나와 대륙에 살던 유대류 등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호주에는 다양한 생물이 사는데, 포유류의 83%, 파충류의 89%, 물고기의 90%, 양서류의 93%가 호주 고유종이다.

이런 호주에 약 5만 년 전에 아시아 지역에서 인류가 건너와 정착했고, 서양인들은 1788년 이주했다.
사람들은 호주 생태계에 큰 피해를 줬다. 사냥을 통해 일부 동물을 멸종시켰고, 새로운 동물을 들여와 생태계를 변형시키기도 했다.

5만 년 전에 호주에 들어온 인류는 디포로돈(하마 크기의 유대류)과프로콥토돈(말 크기의 캥거루), 유대류 사자를 멸종시켰다.
18세기에 도착한 유럽인은 태즈메이니아 호랑이를 멸종시켰다.

엄청난 호주의 산불 뒤에는 기후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당연히 기후변화는 인류의 탓이다.
21세기에도 호주 야생동물들의 수난은 계속되고 있다. 인류의 잘못 때문이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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