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내믹 스트라이크 존’ 도입, 지루한 야구 아웃시키자

중앙선데이

입력 2020.01.11 00:20

업데이트 2020.01.11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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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9호 25면

이태일의 인사이드피치

닉 일람(Nick Elam)은 스포츠 혁신가다. 미국 인디애나주 볼스테이트대학에서 리더십을 가르치는 그는 2017년 일람 엔딩(Elam Ending)이라는 개념을 농구에 제시했다. 농구는 일반적으로 40분 시간제 경기다. 일람은 36분이 지난 뒤, 그러니까 종료 4분을 남기면 시계를 끄고 스코어 상황에 따라 경기를 끝내는 ‘타겟 스코어(Target Score)’라는 개념을 설정했다. 남은 시간에 두 팀이 도달할 수 있는 합리적 승리 점수, ‘타겟 스코어’를 먼저 기록하는 팀이 승자가 되는 방식이다.

느슨한 플레이로 박진감 떨어져
미 스포츠 혁신가 닉 일람이 제안

원·투 스트라이크 갈수록 존 확대
적극적 타격 유도, 빠른 전개 가능

‘구원투수 최소 타자 3명 상대’ 등
경기 지연 못하게 룰 바꿔야 흥

MLB도 스피드업·박진감이 화두

2020 한국프로야구를 빛낼 간판 선수들. [중앙포토]

2020 한국프로야구를 빛낼 간판 선수들. [중앙포토]

일람의 의도는 경기 후반 점수 상황에 따라 ‘경기의 밀도’가 떨어지는 현상을 막아 모든 순간 최선을 다하는 동기부여를 주고자 함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막판 느슨한 플레이를 없애고, 잦은 파울로 경기의 흐름이 멈추는 것을 방지하며 관중들이 결과를 예단하고 일찍 경기장을 떠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농구는 ‘36분 시간제 + 이후 점수제’라는 형식이 되고 또한 연장전이 생기지 않는다. 실제로 우승 상금 200만 달러를 놓고 64팀이 맞붙는 TBT(The Basketball Tournament)에서 방송 주관사 ESPN은 2017년부터 일람 엔딩을 채택했고, 호의적인 반응을 얻었다. 도입 당시 앞선 팀 점수에 7점을 보탰던 타켓 스코어는 2019년부터 ‘+ 8점’으로 바뀌었다.

야구는 ‘경기가 느슨하고 지루하다’는 반응을 얻고 있는 대표적인 스포츠다. 우리 프로야구는 2019년 관중 728만6008명을 기록했다. 2016년부터 이어진 3년 연속 800만 시대가 끝났다. 많은 전문가가 시즌 초반부터 양극화된 순위와 전통적 인기 구단의 성적 부진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설득력 있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메이저리그의 위기 진단을 고려하면 이는 시대적 현상이다. 한때 여백의 미가 장점으로 여겨지던 야구가, 느리고 지루해졌다는 인상을 주자 사회의 관심이 줄어든 것이다. 더 빠르고 변화무쌍한 경험을 원하는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2000년대 출생)의 인구가 많아지면서 느린 호흡, 단절되는 순간이 잦은 야구의 경험은 이전만큼 매력적이지 않다. 메이저리그는 이런 진단하에 수년 전부터 ‘스피드 업’, 박진감을 화두로 삼았다.

우리 프로야구도 경기 스피드업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선 그 방법을 하드웨어 개선을 통해 모색했다. KBO는 지난 시즌 공인구의 반발력을 낮추었다. 공이 더 멀리 날아가지 않게 되자 투수가 유리해졌다. 홈런 수는 1756개에서 1014개로 크게 줄었다. 3할타자는 34명에서 18명으로 줄어든 반면 2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투수는 1명에서 7명으로 늘어났다. 그래서 평균 경기 시간은 3시간 21분에서 3시간 11분으로 줄었다. 그러나 경기 시간이 줄어든 것과 박진감이 더 해진 것은 의미가 다르다. 경기의 스피드업은 ‘빠른 전개’을 추구하는 것이므로 ‘밀도’, ‘긴박함’, ‘빠른 호흡’ 등의 개념이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여전히 움직임이 느리고, 투구 간격이 길고, 타석에서 더딘 공격을 하는 야구라면 1회 시작부터 9회 종료까지 걸리는 시간이 줄어든, ‘경기 시간 단축’일 뿐이다.

야구에서 박진감이 더해지고 진행 속도가 빨라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일람은 지난 12월 14일 MLB 네트워크가 진행하는 ‘MLB 나우’에 출연해 야구의 흥미를 높여 줄 몇 가지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스트라이크 카운트별로 스트라이크 존이 넓어지는 ‘다이내믹 스트라이크 존’이다.

일람은 삼진이나 볼넷처럼 많은 투구수를 필요로 하는 승부가 늘어난 것이 야구의 호흡을 느리게 만들고, 결국 경기를 지루하게 한다고 했다. 그가 제안한 다이내믹 스트라이크 존은 원 스트라이크-투 스트라이크로 갈수록 스트라이크 존이 넓어지는 방식이다.

산업·문화적 야구로 인식 바꿔야

스포츠 혁신가 닉 알람은 느슨한 야구 경기를 바꾸기 위해 ‘다이내믹 스트라이크 존’을 제안했다. 일반적으로 무릎과 팔꿈치 사이가 스트라이크 존이다. [연합뉴스]

스포츠 혁신가 닉 알람은 느슨한 야구 경기를 바꾸기 위해 ‘다이내믹 스트라이크 존’을 제안했다. 일반적으로 무릎과 팔꿈치 사이가 스트라이크 존이다. [연합뉴스]

일람은 스트라이크 카운트가 없을 때는 벨트부터 무릎 위쪽 높낮이에 홈플레이트에 공 반 개정도 걸치는 조건, 원스트라이크에서는 배꼽 단추부터 무릎 위쪽까지 높낮이에 홈플레이트에 조금이라도 걸치는 조건, 투 스트라이크 이후는 유니폼 글씨부터 무릎 아래쪽까지 높낮이에 홈플레이트에 조금이라도 걸치는 조건으로 스트라이크 존이 점점 넓어지는 변화무쌍(다이내믹)한 스트라이크 존을 적용해 타자들이 이른 카운트에서 적극적으로 타격하게 만드는 것이 경기 스피드업의 본질이라고 지적했다.

일단은 지나치게 급진적이며 말도 안 되는 제안으로 들린다. 그러나 많은 혁신은 그렇게 출발한다. 100년이 넘는 야구 규칙도 많은 변화를 거쳤다. 스트라이크라는 개념은 타자에게 “쳐라!”고 판정하는 심판 콜(Strike)에서 비롯됐고, 볼이라는 상대적 개념은 투수가 타자에게 칠 수 있는 공을 던지라는 의미에서 부정적으로 규정됐다. 그리고 그 제한(4개) 숫자 역시 변화를 거쳤다. 스트라이크는 어떤 물리적 존을 통과한 공 이전에 심판이 ‘타자가 쳐야 했었던 공’으로 판단하는 정성적 개념이 그 본질이다. 스트라이크의 권한을 늘려 경기를 빠르게 하자는 거다.

야구는 그 기본과 정신을 유지하며 시대에 맞게 변해야 구시대의 유물로 사라지지 않고 살아남는다. 일람은 이 밖에 ▶올스타전을 리그(아메리칸 vs 내셔널) 대결에서 세대(데뷔 6년차 이하 vs 6년차 이상) 대결로 바꾸는 것 ▶구원투수가 최소 3명의 타자를 상대하는 것 ▶장내 아나운서가 선수 소개에 그치지 않고 경기 진행에 좀 더 생동감 있게 관여하는 것 ▶라이브 중계에서 셀러브리티 응원 SNS 동시 중계 ▶겨울올림픽 기간 이벤트 경기 진행 등을 제안했다.

우리 프로야구도 인기회복과 생존을 위해 보다 구체적인 청사진이 필요하다. 공인구 반발력 조정처럼 어떤 하드웨어적, 야구의 경기적 관점을 넘어 프로야구 생태계 전반을 바라보는 큰 안목이어야 한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야구의 혁신은 프로야구라는 정체성에 대한 개념적 혁신이다. 경기적, 홍보적 관점의 프로야구를 이 사회의 산업적, 문화적 덕목으로 그 인식 자체를 바꿔주는 혁신일 필요가 있다. 10개 구단 순위경쟁의 제도를 바꾸는 범위를 지나 이 사회에서 프로야구의 인식 자체를 바꿔 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한 몇 가지 아이디어. ▶수도권 인구 집중 환경을 반영한 중립 경기 진행 등 프랜차이즈 개념 재설계 ▶미디어 상생과 시장 확대를 위한 스포츠 광고 관련법 개정 노력, 컨텐트형 광고 확대 ▶스프링캠프-시범경기-정규시즌-포스트시즌-마무리훈련(교육리그)-스토브리그의 일정과 브랜드의 사업적 설계 ▶선수 육성이 아닌 또 하나의 사업을 위한 퓨처스리그 정체성 변화 ▶각종 시상 분야와 그 문화의 리그 브랜드화를 통한 전통, 권위 정립 및 레거시 문화, 기부 문화 확대 ▶세대를 연결할 수 있는 자체 플랫폼 중심의 스토리 발굴의 상시 업무 등이다. 2020년은 한국 야구 전반의 변곡점이 될 수 있는 시기다.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그 개념을 바꾸는 실행 방안을 볼 수 있다면.

이태일 전 중앙일보 야구전문기자
중앙일보 야구전문기자를 거쳐 인터넷 네이버 스포츠실장을 지냈다. 프로야구 NC 다이노스 대표이사로 7년간 재직한 뒤 지금은 데이터업체 스포츠투아이 대표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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