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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년 숨결 밴 나무관, 선화공주 남편 백제 무왕 잠들었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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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무왕(재위 600~641)과 그의 왕비 무덤으로 추정되는 쌍릉 가운데 대왕릉의 무덤 방 안에서 나온 나무널(목관). 1917년 일제강점기 때 발굴된 지 103년 만인 10일 국립익산박물관 개관을 맞아 처음 공개됐다. 익산=강혜란 기자

백제 무왕(재위 600~641)과 그의 왕비 무덤으로 추정되는 쌍릉 가운데 대왕릉의 무덤 방 안에서 나온 나무널(목관). 1917년 일제강점기 때 발굴된 지 103년 만인 10일 국립익산박물관 개관을 맞아 처음 공개됐다. 익산=강혜란 기자

1917년 발굴된 지 103년 만에 쌍릉 대왕릉의 나무관이 아스라한 형체를 드러냈다. 백제 무왕(재위 600∼641)과 그의 왕비 무덤으로 추정되는 쌍릉 중 대왕릉의 무덤 방 안에서 나온 나무널(목관)이다. 1500년에 걸친 인고의 세월을 반영하듯 해진 옷처럼 너덜너덜, 부분적인 형체만 남았다.

발굴 103년 만에 공개된 '쌍릉 대왕릉' 무덤 #'국보' 왕궁리 사리장엄구 등 약 3만점 소장 #백제 유적 한데 모은 국립익산박물관 개관

그래도 물에 강하고 잘 썩지 않는 일본산 금송(金松) 자재인 걸로 보아 귀한 분을 모신 ‘영원의 잠자리’임을 짐작할 수 있다. 바로 옆엔 화강암을 고르게 다듬어 조성됐던 대왕릉 현실(玄室·시신을 넣은 널이 안치된 방)을 어른 10명이 들어갈 정도의 규모 그대로 재현해 놨다. 10일 문을 연 국립익산박물관의 상설전시실 풍경이다.

백제 무왕(재위 600~641)과 그의 왕비 무덤으로 추정되는 쌍릉 가운데 대왕릉의 무덤 방 안에서 나온 나무널(목관). 1917년 일제강점기 때 발굴된 지 103년 만인 10일 국립익산박물관 개관을 맞아 처음 공개됐다. 익산=강혜란 기자

백제 무왕(재위 600~641)과 그의 왕비 무덤으로 추정되는 쌍릉 가운데 대왕릉의 무덤 방 안에서 나온 나무널(목관). 1917년 일제강점기 때 발굴된 지 103년 만인 10일 국립익산박물관 개관을 맞아 처음 공개됐다. 익산=강혜란 기자

삼국시대 최대 절터인 익산 미륵사지 출토 유물 2만3000여 점을 포함해 전북 서북부 문화재 약 3만 점을 보관‧전시할 국립익산박물관이 10일 개관했다. 사적 제150호 미륵사지 남서쪽에 있으며 주변 경관을 해치지 않게 유적밀착형으로 나지막이(지하 2층·지상 1층) 건립했다. 연면적 7500㎡, 전시실 면적 2100㎡에 이른다. 2015년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지 5년 만이다.

이날 처음 공개된 상설전시실에선 그간 국립중앙박물관이나 국립전주박물관 등에 흩어져 보관돼온 유물들이 일제히 ‘고향’으로 귀환한 게 눈에 띄었다. 일제강점기에 처음 발굴돼 무덤 주인공을 놓고 갑론을박이 일었던 쌍릉 대왕릉 관련 유물이 대표적이다. 애초 『고려사』 등 옛 기록에 따르면 쌍릉은 백제 제30대 무왕 내외의 무덤으로 전해졌다. 널리 알려진 ‘서동요’ 설화의 주인공인 백제 서동왕자와 신라 선화공주 말이다.

그러다 2009년 미륵사지 서탑의 1층 탑신부 심주석에서 사리장엄구(사리를 봉안하는 일체의 장치)가 발견됐다. 이 중 사리를 안치한 경과를 기록한 ‘사리봉영기’에 639년 미륵사를 건설한 주체가 ‘사택적덕의 딸’로 기록돼 있었다. 이를 계기로 ‘서동요’ 로맨스가 후대에 만들어진 얘기일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 나왔다. 게다가 2017년 공개된 일제강점기 자료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그간 무왕의 무덤으로 여겨져온 대왕릉 주인이 20~40대 여성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1400년 만에 빛을 본 쌍릉 주인공이 다시 미스터리에 빠지는 순간이었다.

국립익산박물관 개관식이 열린 10일 전북 익산시 국립익산박물관에서 참석자들이 박물관 관계자의 설명을 들으며 전시실을 둘러보고 있다. [뉴스1]

국립익산박물관 개관식이 열린 10일 전북 익산시 국립익산박물관에서 참석자들이 박물관 관계자의 설명을 들으며 전시실을 둘러보고 있다. [뉴스1]

결국 2017~2018년간 대왕릉에 대한 재조사가 대대적으로 이뤄졌다. 100년 만에 다시 열린 나무상자에 담긴 102점의 인골 파편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현대 기술로 분석했다. 이를 통해 인골 주인은 50~60대 남성으로 추정됐다. 정강이뼈에서 채취한 시료의 방사선탄소연대 측정 결과 사망 시점은 620~659년으로 산출됐다. 재위 기간이 600~641년인 무왕과 상당부분 일치하는 결과다. 전주박물관에서 보존 재처리를 거쳐 귀환·공개된 나무널 안내판에 대왕릉의 주인을 무왕으로 보는 쪽에 힘을 실은 이유다.

이같은 대왕릉 재조사의 시발점이 된 미륵사지 석탑 사리장엄구와 공양품을 감싼 보자기로 판단되는 비단과 금실 등도 상설전시실에서 만날 수 있다. 1500년의 세월을 이긴 백제 장인의 숨결이 녹아든 영롱한 유리장식들이 관람객을 '영겁'의 상념으로 인도한다. 이밖에 1965년 석탑 보수공사 중 발견돼 국립전주박물관에서 전시돼온 국보 123호 왕궁리 오층석탑 사리장엄구도 ‘고향’에 귀환했다. 익산 입점리 고분군에서 나온 금동관모, 원수리 출토 순금제불상 등도 한자리에 모였다.

국립익산박물관에서 상설 전시되는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사리장엄구. [사진 국립익산박물관]

국립익산박물관에서 상설 전시되는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사리장엄구. [사진 국립익산박물관]

국보‧보물 3건 11점을 포함해 총 3000여점이 모인 상설전은 3개 공간으로 나뉜다. 1실 주제는 백제 마지막 왕궁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하는 왕궁리 유적과 제석사지, 쌍릉 출토 자료로 꾸몄다. 2실은 미륵사지에 초점을 맞춰 토목과 건축, 생산과 경제, 예불 등 관점에서 다채롭게 조명했다. 보물로 지정된 미륵사지 석탑 사리장엄구도 별도 공간에서 만날 수 있다. 3실은 익산문화권 전체를 토기, 도자기, 금동관, 금동신발, 청동기 등 다양한 유물을 통해 소개함으로써 익산에 뿌리내린 고조선과 마한 세력을 탐방할 수 있게 했다.

특히 개관을 기념해 3월 29일까지 특별전 '사리장엄, 탑 속 또 하나의 세계'가 열린다. 국보로 지정된 부여 왕흥사지 출토 사리기, 보물 제1925호 이성계 사리장엄구 일괄 등 사리장엄 15구를 한번에 만날 수 있는 귀한 기회다. 국립경주박물관에 있는 경주 감은사지 서삼층석탑 사리외함과 국립중앙박물관이 보유한 감은사지 동삼층석탑 사리외함이 나란히 진열된 진풍경도 볼 수 있다.

삼국시대 최대 절터인 익산 미륵사지 출토 유물 2만3천여 점을 포함해 전북 서북부 문화재를 보관 전시할 국립익산박물관이 10일 개관했다. [사진 국립익산박물관]

삼국시대 최대 절터인 익산 미륵사지 출토 유물 2만3천여 점을 포함해 전북 서북부 문화재를 보관 전시할 국립익산박물관이 10일 개관했다. [사진 국립익산박물관]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익산박물관과 인근 왕궁리유적을 한데 묶어 볼 수 있는 교통편이 확충되면 전체 백제 문화 조망에 유용할 것”이라며 “고대 사원과 사리장엄구를 브랜드화한 새 박물관이 지역 문화거점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익산=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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