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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세 이동국…세월 역주행은 히딩크의 ‘엔트리 제외’ 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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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41세에 현역으로 뛰는 이동국. 스포츠 유전자를 물려받은 걸까. 큰딸 재아(오른쪽)는 테니스 선수다. 오종택 기자

41세에 현역으로 뛰는 이동국. 스포츠 유전자를 물려받은 걸까. 큰딸 재아(오른쪽)는 테니스 선수다. 오종택 기자

7일 프로축구 전북 현대와 1년 재계약한 이동국은 마흔하나다. 1979년생 동갑내기 박동혁은 K리그 2 아산 감독이고, 두 살 아래 최태욱은 축구대표팀 코치다. 이동국은 올해도 그라운드를 누빈다. 만약 대표팀에 뽑히면 최태욱의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이동국은 최근 JTBC 예능 ‘아는 형님’에 나와 “내가 가장 자주 하는 말은 ‘올해가 형의 마지막 시즌’이다. 그렇게 말한 지 5년 됐다. 이젠 아무도 안 믿는다”며 웃었다. 1998년 포항에서 데뷔한 그는 프로 23년 차다. 일각에서는 “후배에게 자리를 물려주라”고 한다. K리그에 그만한 공격수가 없다. 그는 지난해 9골을 터트렸고, 자신의 7번째 K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그에게는 “40대의 희망”이라는 응원도 쏟아진다.

올해도 전북과 함께 프로 23년차 #2002 월드컵 좌절 이후 마음 다잡고 #꾸준한 관리로 ‘40대의 희망’ 돼

세월 ‘역주행’의 비결은 역설적으로 거스 히딩크(74·네덜란드) 전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이다. 이동국은 “1998년 월드컵이 끝난 뒤 2002년 월드컵 출전은 당연하다고 여겼다. 히딩크 감독님이 날 엔트리에서 제외해 지금까지 선수생활을 한 것 같다. 내게 감사한 존재”라고 자주 말한다. 2002년 엔트리에서 탈락한 그는 한국 경기를 볼 수 없었다. 한 달 내내 술로 마음을 달랬다. 방황은 길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돌아봤다. 절실함, 근성, 수비 가담이 부족했다. 2004년에 국군체육부대(상무)에 입대했다. 그곳에서 절실함의 벼랑 끝에 선 비인기 종목 선수들을 만났다. 나태해지지 않겠다고 몇 번이고 다짐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직전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됐다. 월드컵 출전이 또 좌절됐다. 산전수전 다 겪어서일까. 웬만한 일로는 스트레스받지 않는다. 그는 “인생에서 축구는 그저 한 부분”이라고 말한다. 오래 뛰는 비결을 물으면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고”라고 대답한다. 그는 매일 8~11시간 자고, 뭐든 잘 먹는다. 팀 연고지인 전주의 몇몇 식당에는 그의 사인이 걸려있다. 기분전환을 위한 맥주 한 잔은 마다치 않는다. 지난달에는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버킷리스트대로 미국 마이애미의 해변에서 음악을 들으며 조깅했다.

지난해 6월 23일 수원 삼성 골키퍼 노동건의 골킥이 달려들던 이동국 얼굴에 맞고 그대로 골로 연결됐다. 해외토픽에 나올 만한 골이었다. 그의 무서운 집념을 단적으로 보여준 장면이다. 전북에서 함께 했던 최강희 상하이 감독은 “(이)동국이는 불가사의하다. 40대인데도 경기 다음 날 피부가 뽀송뽀송하다”며 회복 능력에 감탄했다. 이동국은 1998년 이후 쭉 몸무게 80㎏대, 허벅지 둘레 26인치 전후를 유지한다. 체지방과 근육량은 20대 선수보다 우수하다. 물론 그냥 그렇게 되는 건 아니다. 모든 게 노력의 결과다.

이동국의 습관 중 하나는 득점 장면을 반복해 보는 거다. 그는 ‘몸이 골 넣은 느낌을 기억한다’고 믿는다. 40대쯤 되니 언제, 어떻게 뛰어야 할 지 알게 됐다. 지난해 영플레이어상 수상자인 강원 FC 김지현(25)은 “이동국 선배는 말이 안 되는 상황에서 슈팅 공간을 만들어내는 축구 도사”라고 했다. 조세 모라이스 전북 감독도 “유럽에 가도 영리함과 경험은 누구에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맏형으로서 본보기”라고 칭찬했다.

이동국은 쉬는 날 테니스 선수인 큰딸 재아(13)와 테니스를 하거나 따로 골프를 한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선수는 부상을 딛고 부활한 타이거 우즈(45)다. 이동국은 “남들이 다 등 돌려도 자기만의 길을 걸어갔다”고 말했다. 다섯 남매의 아빠인 그에게는 가족도 활력의 원천이다. 한 달 마트 장보기 비용만 100만원이 넘고, 재아 출전비도 자비로 부담한다. 그는 “아빠는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박수받는 사람이란 걸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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