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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은 왜, 28년 만의 CES에서 '프라이버시'를 말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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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2020의 '프라이버시 관리자 원탁 회의'에서 제인 호바스 애플 이사가 발언하고 있다. [Parker Ortolani 트위터]

7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2020의 '프라이버시 관리자 원탁 회의'에서 제인 호바스 애플 이사가 발언하고 있다. [Parker Ortolani 트위터]

애플이 28년 만에 CES(소비자가전박람회)에 돌아왔다. 애플이 CES에 참가한 건 1992년이 마지막. 당시 애플의 최고경영자(CEO) 존 스컬리가 PDA 제품 뉴턴(Newton)을 들고 나왔다. 이후 애플은 너도나도 부스를 여는 IT 박람회와는 거리를 뒀다.

그런 애플이 CES 복귀 무대로 택한 주제는 '프라이버시(Privacy·사생활 보호)'다. 지난 7일(현지시간) 애플의 제인 호바스 애플 글로벌 개인정보보호 담당 수석 이사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의 '개인정보 관리자 원탁회의'에 토론자로 나섰다. 주제는 ‘소비자는 무엇을 원하는가’. 호바스 이사는 "애플은 제품 설계 단계부터 프라이버시를 고려하며, 팀 쿡(애플 CEO)부터 애플 전체에는 프라이버시를 최우선하는 문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애플의 '프라이버시' 철학

애플의 '프라이버시 우선주의'는 새로운 얘기는 아니다. 애플 공동 창업자인 고(故) 스티브 잡스는 2010년 6월 월스트리트저널 컨퍼런스에서 "실리콘 밸리에서는 구식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는 프라이버시를 극도로 신중하게 다룬다"고 강조했다. 페이스북과 구글이 사용자의 다양한 정보를 활용해 광고로 돈을 벌어들이는 비즈니스로 한창 기업가치를 끌어올리고 있을 때였다. 애플은 왜 이렇게 프라이버시에 집착하는 것일까.

전 애플 최고 경영자(CEO) 스티브 잡스가 생전에 아이폰 발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모습.  [중앙포토]

전 애플 최고 경영자(CEO) 스티브 잡스가 생전에 아이폰 발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모습. [중앙포토]

잡스의 뒤를 이은 팀 쿡 CEO도 이런 철학을 잇고 있다. 2016년 2월 미국 샌 버나디노 총기 난사 사건 이후 미 연방수사국(FBI)의 아이폰 잠금 해제요구를 거부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팀 쿡 CEO는 "애플은 모든 시민의 데이터와 프라이버시를 보호할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이후에도 애플은 "프라이버시가 인간의 기본권이라고 믿는다"며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혹시 말뿐인 것은 아닐까.

애플은 프라이버시 보호를 애플 생태계의 룰(Rule)로 삼고 있다. 2016년 세계개발자회의(WWDC)에서 발표한 '차등 사생활(differential privacy)'기술이 대표적이다. 개인정보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이용자의 행동 패턴을 파악하는 기술이다. 특정되는 데이터값 대신 근사치로 데이터를 모아 딥러닝(deep learning)과정으로 보정하는 식이다. iOS 앱 개발사들도 애플의 개인정보 보호 정책을 따라야 했다. 애플의 기술 리더십이다.

애플이 홈페이지를 통해 공지하고 있는 개인정보보호 정책 [애플 홈페이지 캡처]

애플이 홈페이지를 통해 공지하고 있는 개인정보보호 정책 [애플 홈페이지 캡처]

글로벌 핫이슈로 떠오른 '프라이버시'  

글로벌 IT 기업은 연례 컨퍼런스를 통해 자사의 최신 기술과 서비스를 발표하곤 한다. 애플의 WWDC, 구글의 I/O, 페이스북의 F8, 마이크로소프트의 빌드(Build) 등이다. 평소에는 신제품이나 최신기술이 주연이었지만, 지난해는 개인정보보호(Privacy)가 핵심 아젠다였다. 2018년 이후 미국 IT 거물 기업들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잇따라 일어난 영향이다. 2018년 3월 페이스북의 개인정보 유출 은폐 의혹(케임브리지 어낼리티카앱 스캔들)부터, 구글의 SNS인 구글플러스의 50만건 개인정보 유출 사고(2018년 10월) 등이 반복됐다. 얼굴 인식 서비스(아마존·페이스북)의 정부감시 악용이나 사생활 침해 논란도 있었다. 조원영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AI 정책연구팀 팀장은 "개인정보보호 문제가 최소한의 규제를 충족시키는 수준에서, 적극적으로 관련 기술을 개발하고 강점을 부각하는 세일즈 포인트로 중요하게 바뀌었다"고 말했다. 지난달 일본을 방문한 팀 쿡 애플 CEO는 니혼게이자이 신문과 인터뷰에서 "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하며 어디에 있고 친구가 누구인지, 세세한 사항을 몰라도 인터넷 광고는 할 수 있다"며 "광범위한 프로필 수집이 프라이버시를 침해한다"며 구글과 페이스북의 방식을 비판했다.

'IT기업의 최근 개인정보침해논란'.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의 '글로벌 IT기업의 최신기술 및 서비스 동향' 연구보고(2019년 7월) [SPRI]

'IT기업의 최근 개인정보침해논란'.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의 '글로벌 IT기업의 최신기술 및 서비스 동향' 연구보고(2019년 7월) [SPRI]

이제 페이스북과 구글도 프라이버시 이슈를 무시하기 어려운 형편이 됐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는 지난해 F8 기조연설에서 "페이스북의 미래는 사생활 보호(The Future is Private)"라며 “기존 페이스북은 개인 사생활이 보호되지 않는 광장이었지만, 미래의 페이스북은 관심을 공유하는 그룹이 모인 거실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페이스북은 서비스 이용기록 삭제 옵션이나 메신저의 완벽한 암호화(End-to-End Encryption) 등을 통해 프라이버시 강화에 나섰다. 구글도 서비스 제공을 위한 최소한의 개인정보만 수집하겠다는 전략을 내놨다. 앱 설정에 '프라이버시' 탭을 만들고, 구글 지도에 사용자 기록이 저장되지 않는 익명 모드(Incognito Mode)를 도입했다.

공격적으로 '프라이버시' 마케팅 나선 애플

애플은 한발 더 나가고 있다. 애플은 지난해 연례개발자회의(WWDC 2019)에서 '애플 로그인(sign-in-with-Apple)'을 공개했다. '페이스북으로 로그인'이나 '구글 ID로 로그인' 등을 겨냥했다. 페이스북이나 구글로 로그인할 경우 사용자의 이름·아이디·성별 같은 개인정보나 직업 정보가 페이스북·구글에 광고를 하는 기업에 제공되는 데 반해, '애플로 로그인하기'는 이를 차단했다. "애플은 개인정보를 수익 창출의 방식으로 활용하지 않는다"는 애플의 원칙을 다시 강조한 것이다. 시장조사업체 CCS 인사이트의 벤 우드 선임연구원은 BBC와 인터뷰에서 "애플은 페이스북과 구글과는 다르게 프라이버시라는 차별점을 뒀고, 애플엔 좋은 마케팅 요인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크레이그 페더리기 애플 수석부사장이 지난해 6월 3일 열린 애플의 WWDC에서 '애플로 로그인하기'를 소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크레이그 페더리기 애플 수석부사장이 지난해 6월 3일 열린 애플의 WWDC에서 '애플로 로그인하기'를 소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제 '프라이버시'는 애플의 가장 확실한 전략무기다. 애플 제품의 심미성이나 기술적 혁신만으로는 더는 삼성전자나 구글·페이스북과 차별화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기도 하다. 실제 애플은 지난해 유튜브와 TV에 '아이폰의 프라이버시 - 사생활 편' 광고를 내보내며 '프라이버시' 아젠다를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애플 vs. 페이스북, 구글 구도

각국 규제기관이 IT 기업들에 프라이버시 강화를 요구하는 분위기도 한몫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올해 1월부터 '개인 정보 보호'에 방점이 찍힌 새로운 소비자법(CCPA)을 시행했다. 유럽연합에서 시행 중인 개인정보보호 규정(GDPR)과 같은 맥락이다. 캘리포니아 주민들은 기업이 어떤 정보를 수집하는지 알 권리가 있고, 자신의 개인정보를 제3자에게 공유하거나 판매하지 않도록 기업에 요청할 권리를 갖는다는 내용이다. 소비자 보호법은 향후 미국 내 다른 주에서도 시행될 가능성이 높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의 조원영 팀장은 "글로벌 디지털 규제는 범위와 깊이가 모두 확대되는 경향"이라며 "유럽에서는 개인정보 데이터에 더해 수집 알고리즘까지도 규제의 대상으로 논의되고 있다"고 말했다.

팀 쿡 애플 CEO는 "프라이버시는 인권이자 시민권"이라며 개인정보보호를 강조하고 있다. [중앙포토]

팀 쿡 애플 CEO는 "프라이버시는 인권이자 시민권"이라며 개인정보보호를 강조하고 있다. [중앙포토]

다만, 구글이나 페이스북은 사용자 데이터와 광고 간 연결 고리를 끊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사용자 데이터를 '판매'하지 않고 맞춤형 광고 목적으로만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개인정보 유출이나 악용은 막아야 하지만, 특정 개인정보를 활용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건 유지하겠다는 거다. 전 세계 광고 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두 회사의 수익모델을 고려하면 애플처럼 하긴 쉽지 않아 보인다. 7일 CES에서 애플 임원과 공개 토론에 나선 에린 에건 페이스북 부사장은 "페이스북과 애플은 서로 다른 비즈니스 모델을 가졌지만, 프라이버시 강조라는 측면은 같다"며 "상황의 변화에 따라 적절히 대처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원엽 기자 jung.wonyeob@joongang.co.kr

구독 서비스로 발넓힌 애플, 여기서도 '프라이버시 강조'

애플은 최근 '구독 기반' 서비스를 연이어 선보였다. 지난해 3월 뉴스·잡지 구독 서비스 '뉴스플러스'를 시작으로 6개월 뒤(2019년 9월)엔 게임구독 서비스 '애플 아케이드', 그로부터 다시 두 달 후엔 TV 스트리밍 서비스 'TV플러스'를 선보였다.

기존 애플뮤직·애플페이 등 서비스에 TV·게임·뉴스를 더하면서 애플은 점차 '서비스 플랫폼'으로 변신 중이다. 시장의 반응은 좋다. 애플 주가는 지난해 연초 대비 83% 올랐다. 이어팟 등 웨어러블 기기의 호조와 함께 새로 선보인 콘텐트 서비스가 큰 몫을 했다. 지난해 3분기(7~9월)엔 서비스 부문 매출이 125억달러(14조원)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넷플릭스나 유튜브 같은 구독 모델 경쟁자들에 비해 후발 주자지만 애플이 믿는 구석은 있다. 7억 3000만명에 달하는 아이폰 사용자 등 충성도 높은 소비자 생태계다. 그 안에서도 '차별화된 프라이버시 제공'이라는 전략은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3월 TV플러스, 뉴스플러스, 애플 아케이드 계획 발표당시 애플은 "구독 서비스에서 구독자의 정보나 구매성향 등을 파악할 수 없다"며 사생활 보호가 애플 구독모델의 차별점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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