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파워는 저의 3000배" 할리우드 열광시킨 봉준호 어록

중앙일보

입력 2020.01.07 12:15

업데이트 2020.01.07 17:59

5일(미국 현지시간) 제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한국영화 최초 외국어영화상을 받았다. [AFP=연합뉴스]

5일(미국 현지시간) 제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한국영화 최초 외국어영화상을 받았다. [AFP=연합뉴스]

“경합이 더 무시무시한 느낌이다. 마틴 스코시즈, (쿠엔틴) 타란티노 이런 분들이 있는 상태에서, 심지어 ‘아이리시맨’은 스코시즈 감독의 걸작이고 나도 응원하는 영화인데 상을 하나도 못 받고 돌아가는 걸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6일(한국시간) 제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기생충’으로 한국영화 최초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은 시상식 후 한국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지난해 칸 황금종려상과 이번 수상을 비교해달란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골든글로브 '기생충' 수상소감 왜? 

이날 외국어영화상 수상자로 호명된 그는 “와우, 어메이징, 언빌리버블” 하며 무대에 올라 “자막의 장벽, 장벽도 아니죠. 그 1인치 되는 장벽을 뒤어넘으면 여러분들이 훨씬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다”며 “I think we use only just one language, the Cinema(우리는 한 가지 언어만 사용한다고 생각한다. 바로 영화)”란 영어 소감으로 마무리해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봉준호 감독이 6일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뒤 소감을 말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봉준호 감독이 6일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뒤 소감을 말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이런 수상 소감이 화제가 된 데 대해 봉 감독은 “상 자체가 외국어영화상이다 보니까, 특히 북미 관객분들이 여전히 자막 있는 영화 보는 걸 꺼린다고들 하더라. 그런 장벽을, 별것 아닌 장벽이니까 그런 장벽만 넘으면 영화의 바다가 펼쳐진다.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오른 작품들이 다 그런 바다에 있는 영화들이고 상의 성격이 그렇다 보니까 그런 멘트를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골든글로브 한국 첫 외국어영화상 뒤
'봉하이브' '봉도르' 이끄는 매력 화법

나란히 후보에 올랐던 감독상‧각본상 수상은 불발됐지만, 현지 반응은 뜨거웠다. ‘기생충’의 연이은 수상 낭보 뿐 아니라 봉 감독 특유의 소탈함과 재치 있는 언변도 ‘봉하이브’(BongHive)에 한몫한다. ‘봉하이브’는 SNS(소셜미디어)에서 봉 감독의 팬덤을 일컫는 말. 통역을 대동해 한국말과 영어를 섞어 인터뷰나 수상 소감을 말하지만, 적재적소의 유머와 듣는 이가 충분히 공감할 만한 대화로 호감도를 높인다. 다름 아닌, ‘영화’라는 하나의 언어로 말이다.

골든글로브 수상 후 봉준호 감독(가운데)이 왼쪽부터 '기생충' 배우 이정은, 송강호와 트로피를 들고 활짝 웃었다. [EPA=연합뉴스]

골든글로브 수상 후 봉준호 감독(가운데)이 왼쪽부터 '기생충' 배우 이정은, 송강호와 트로피를 들고 활짝 웃었다. [EPA=연합뉴스]

'기생충'의 북미 배급사 네온은 자사 트위터에 미국영화연구소(AFI) 오찬에서 "송강호 팬 브래드피트가 송강호를 만났을 때"란 글과 함께 두 배우가 만난 사진을 올렸다. 피트가 먼저 다가와 송강호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사진 네온 트위터 캡처]

'기생충'의 북미 배급사 네온은 자사 트위터에 미국영화연구소(AFI) 오찬에서 "송강호 팬 브래드피트가 송강호를 만났을 때"란 글과 함께 두 배우가 만난 사진을 올렸다. 피트가 먼저 다가와 송강호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사진 네온 트위터 캡처]

 봉준호식 화법 인기 비결…

황금종려상 수상한 봉준호 감독  (칸[프랑스] EPA=연합뉴스)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25일(현지시간) 프랑스 칸에서 열린 제72회 칸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뒤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황금종려상 수상한 봉준호 감독 (칸[프랑스] EPA=연합뉴스)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25일(현지시간) 프랑스 칸에서 열린 제72회 칸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뒤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지 언어로 인사를 건네는 건 기본. 지난해 칸 황금종려상 수상 무대에선 “메르시(불어로 감사합니다)”라 운을 떼고 불어 연설을 준비 못 했다고 영어로 먼저 사과했다.
“뭐 불어 연설은 준비 못했지만, 언제나 프랑스 영화를 보며 영감 받고 있습니다. 앙리 조르주 클루조와 클로드 샤브롤 두 분께 감사드립니다.”

현지 거장 감독들을 언급한 뒤엔 어김없이 함께한 제작진, 배우들에 공을 돌렸다. 제작자 곽신애바른손이앤에이 대표, 주연배우 송강호를 무대에 불러내 “저기 계신 여자분이 우리 프로듀서 곽신애 대표다. 무엇보다 ‘기생충’은 위대한 배우들이 없었다면 단 한 장면도 찍을 수 없던 영화”라며 송강호의 수상 소감까지 청해 들었다.

봉준호 감독(오른쪽)이 배우 송강호에게 무릎을 꿇었다. 프랑스 칸에서 25일(현지시간) ‘기생충’으로 제72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직후 송강호에게 황금종려상 트로피를 바치는 동작을 취했다. [로이터]

봉준호 감독(오른쪽)이 배우 송강호에게 무릎을 꿇었다. 프랑스 칸에서 25일(현지시간) ‘기생충’으로 제72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직후 송강호에게 황금종려상 트로피를 바치는 동작을 취했다. [로이터]

“지난 17년간 4편의 작품을 송강호 선배님과 같이할 수 있어 기뻤죠, 영광이고. 정신적으로 많이 의지를 했어요. 강호 선배님과 있으면 영화 찍으며 제가 더 과감해질 수 있고 더 어려운 영화도 찍을 수 있는 그런 선배님이셔요.”

칸 출국 전달 한국서 열린 제작보고회에서 송강호를 “경기의 수준을 바꿔버리는” 축구선수 메시에 비견하며 이렇게 말한 그는 칸에선 송강호에 한쪽 무릎을 꿇고 황금종려상 트로피를 바치는 세레모니도 했다.

봉준호가 말한 '기생충' 북미 흥행 이유 

“저는 그냥, 열두 살의 나이에 영화감독이 되기로 마음먹었던 되게 소심하고 어리숙한 영화광이었습니다. 이 트로피(황금종려상)를 제 손에 만지게 될 날이 올 줄상상도 못 했습니다. 메르시보꾸.”

수상 무대에서 내려올 땐 진심을 담은 마무리로 뭉클한 박수를 끌어냈다. 또 늘 시대를 풍자해온 사회파 감독답게 정곡을 찌르는 주제의식을 드러내 화제가 됐다.

영화 '기생충'에서 가난한 남매 (왼쪽부터) 기정(박소담)과 기우(최우식)가 반지하집에서 휴대폰 와이파이를 잡으려 애쓰고 있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영화 '기생충'에서 가난한 남매 (왼쪽부터) 기정(박소담)과 기우(최우식)가 반지하집에서 휴대폰 와이파이를 잡으려 애쓰고 있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이 영화가 결국은 가난한 자와 부자, 자본주의에 관한 얘긴데 미국이야 말로 자본주의의 심장 같은 나라니까, 논쟁적이고 뜨거운 반응이 있을 수밖에 없겠단 생각이 들었고요.”

이는 골든글로브 수상 후 무대 뒤 인터뷰에서 비영어 영화론 북미에서 이례적 흥행을 거두고 있는 데 대한 질문에 봉 감독의 촌철살인 답변이다.

“100년 역사를 맞은 작년에 칸에서 경사가 있었고 이번에 101년째를 맞아 골든글로브에서 이런 일이 있고, 해를 이어서 무척 좋은 일들이 벌어지는 것 같고요.”

지난해 한국영화 100주년이 전세계에 알려진 것도 봉 감독이 칸 기자회견에서 거듭 언급하면서였다. 그가 자신을 낮추고 다른 아티스트에 존경을 표하는 태도는 분야를 가리지 않았다.

"BTS 파워는 저의 3000배" 

제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이 열리는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베버리힐튼 호텔 레드카펫 행사장에서 포착된 봉준호 감독. [사진 골든글로브 홈페이지 캡처]

제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이 열리는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베버리힐튼 호텔 레드카펫 행사장에서 포착된 봉준호 감독. [사진 골든글로브 홈페이지 캡처]

“제가 비록 지금 골든글로브에 와있긴 하지만 BTS(방탄소년단)가 누리는 파워와 힘은 저의 3000배는 넘는 거니까요. 그런 아티스트들이 많이 나올 수밖에 없는 나라인 것 같아요. 되게 감정적으로 격렬하고 다이내믹한 나라거든요.”

골든글로브 레드카펫에서 한 외신이 그와 BTS 같은 세계적 아티스트들이 한국에서 배출되는 이유를 묻자 봉 감독의 답변이었다. 이런 발언이 트위터에 화제가 되며 BTS 팬클럽 아미 사이에선 BTS의 차기 앨범 뮤직비디오를 봉 감독이 연출해달라는 청원이 쏟아지기도 했다.

골든글로브 시상식장에서 봉준호 감독과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귓속말을 나누고 있다. [AFP=연합뉴스]

골든글로브 시상식장에서 봉준호 감독과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귓속말을 나누고 있다. [AFP=연합뉴스]

할리우드의 소문난 덕후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과 여러 번 “논스톱 엔진”을 단 듯 영화에 관한 수다를 떨곤 했다는 봉 감독이다. ‘영화’를 향한 열정과 ‘덕심’을 드러낸 발언으로도 자주 주목받았다. ‘기생충’의 북미 배급사 네온 대표와 함께 미국 매체 ‘버라이어티’를 만난 영상에선 조지 밀러 감독의 액션영화 ‘매드맥스’ 2편의 “엄청난 팬, 광팬(huge fan, crazy fan)”이고 시리즈 최신작을 보곤 “울었다(I cried)”고 영어로 말한 뒤 한국어로 애정을 뿜어냈다. “모래폭풍에 차들이 빨려들어가면서 음악이 상승할 때 내 영혼이 막 에스컬레이트 되는 느낌이 되면서 울었어요. 와, 이건 마스터다. 보면 되는 거다. 다른 토를 달 것이 없다.”

봉준호 감독이 히어로물 연출한다면?

북미 영화 전문 사이트 IMDB에 소개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한 장면. [사진 CJ 엔터테인먼트]

북미 영화 전문 사이트 IMDB에 소개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한 장면. [사진 CJ 엔터테인먼트]

같은 영상에서 마틴 스코시즈 감독이 마블 히어로물은 ‘시네마’가 아니라고 말한 데 대한 생각을 밝힐 땐 조심스러우면서도 유쾌함을 잃지 않았다.

“나는 뭐 스코시즈, 코폴라 이분들 워낙 존경하고 그분들 영화를 공부하면서 자란 세대로서 그분들이 왜 그런 맥락의 이야기를 하셨는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런 의견을 존중하는 반면 저는 마블 전체라기보다 ‘가디언즈오브 갤럭시’라든가 제임스 맨골드 감독의 ‘로건’이라든가 루소 브라더의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라던가 되게 재밌게 봤다”면서 자신이 히어로물을 연출할 수 없는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실생활에서도 그렇고 영화에서도 그렇고 몸에 딱 붙는 옷을 입은 상태를 못 견뎌요. 저도 그런 것을 입을 일이 없지만 누가 그런 상태를 봐도 되게 힘들거든요. 정신적으로. 그래서 눈을 이렇게 막 (감고) 마음이 질식하는 것 같고.”

그러면서 영어로 덧붙였다. “만약에 넉넉한 코스튬을 입은 수퍼히어로가 있다면 시도해볼 수 있겠네요(If there is a superhero who has a very boxy costume, maybe I can try).”

칸에서 봉준호, 은퇴에 대한 생각 밝혀

지난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에 호명된 순간 봉준호 감독이 송강호와 얼싸안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에 호명된 순간 봉준호 감독이 송강호와 얼싸안고 있다. [AFP=연합뉴스]

그는 지난해 칸영화제 현지에서 한국 취재진을 만나 은퇴에 대해서도 조심스레 생각을 밝힌 적이 있다. “정년이 정해진 것도 아니고 감독은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면서 최소한 두 군데 정도의 투자사가 있을 때 내가 먼저 안하겠다, 해야겠다. 모든 곳에서 리젝트(거절) 당하고 은퇴하려고 하면 되게 비참할 것 같아요. 최소한 나를 놓고 두 군데가 비딩할 때, 그때 쉬어야겠다 인제 그런 계획이 있어요.”

"'기생충', 작품상도 받을 만했다"  

“‘기생충’은 외국어영화상이 아니라 드라마 부문 작품상을 받을 만했다.”

‘기생충’이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을 받자 미국 현지 매체 ‘매리 수’가 전한 평론가 프린세스 위스키의 말이다. 미 일간 LA타임스는 수상 소식을 전하며 “골든글로브를 주관하는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가 ‘#봉하이브(BongHive)’의 일부가 됐다”고 썼다. ‘봉하이브’가 칸 황금종려상(Palme D'or)과 봉 감독을 합친 별명 ‘봉도르’와 함께 신조어가 된 분위기다. 뉴욕타임스는 ‘골든글로브 파티에서 모두가 ‘기생충’을 만든 남자를 만나고 싶어한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봉 감독은 “여러분들이 이런 기사를 보면서 ‘이게 뭐지’ 하고 느끼는 감정과 저희도 비슷하다” 했다. “‘기생충’ 파티를 1월 3일에 했는데 ‘셰이프오브 워터’로 유명한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호스트를 하고 많은 영화인이 왔다”면서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나 오늘 상(여우조연상)을 받은 로라 던, 그리고 에드거 라이트를 비롯한 많은 감독이 와서 성황리에 파티가 됐는데 뉴욕타임스에서 기사까지 쓸 줄이야. 전혀 예상 못 했다”고 돌이켰다.

예상 못할 일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당장 다음 달 9일 열릴 북미 최대 영화상 아카데미 시상식 수상 여부도 주목된다. 봉준호 감독과 ‘기생충’의 한국영화 최초 기록 행진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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