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삿짐센터 살인' 성치영 부인 "남편, 흙투성이로 집에왔다"

중앙일보

입력 2020.01.07 11:00

업데이트 2020.01.07 12:41

경찰청이 올해 초 공개한 2020년 상반기 공개 수배 대상자 전단에 있는 '정읍 이삿짐센터 살인사건' 피의자 성치영(48)씨. [연합뉴스]

경찰청이 올해 초 공개한 2020년 상반기 공개 수배 대상자 전단에 있는 '정읍 이삿짐센터 살인사건' 피의자 성치영(48)씨. [연합뉴스]

"남편의 머리카락과 바지는 흥건히 젖어 있었고, 옷은 흙투성이였다."

[사건추적]
경찰청, 사건 발생 11년 만에 공개수배
도박 빚 50만원 때문에 업주 동생 살해
화물차 기사 성씨, 2차 조사 당일 도주
성씨 부인 "흙탕물서 뒹군 모습" 진술
베체트병 환자…진료 기록 등 없어
경찰 "타인 행세하거나 밀항 가능성"

경찰이 사건 발생 11년 만에 공개 수배한 '정읍 이삿짐센터 살인사건'의 피의자 성치영(48)씨의 부인(47)이 당시 경찰에서 한 말이다.

화물차 기사로 일하던 성씨는 지난 2009년 4월 20일 오후 9시쯤 전북 정읍시 공평동 한 이삿짐센터 사무실에서 '전날 도박 자금으로 빌려준 돈 50만원을 갚으라'는 이삿짐센터 업주 동생 이모(당시 37세)씨를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 후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씨는 가끔 도박판에서 기사들에게 도박 자금을 빌려 주던 속칭 '전주'였다고 한다.

성씨는 경찰 수사망이 좁혀 오자 도주했고, 10년 넘게 그의 행방은 오리무중이다. 경찰청은 최근 성씨를 포함한 20명을 2020년 상반기 공개 수배 대상자로 선정해 이들 사진과 인적 사항이 담긴 전단 2만장을 전국 관공서 등에 게시했다.

7일 전북경찰청 등에 따르면 당시 성씨 부인은 사건 당일(4월 20일) 남편이 집에 돌아오지 않자 뜬눈으로 밤을 꼬박 새웠다. 성씨는 이튿날 새벽 엉망인 몰골로 귀가했다. 부인이 '옷이 왜 그러냐'고 묻자 성씨는 '넘어졌다'고만 말했다고 한다. 성씨 부인은 경찰의 참고인 조사에서 "남편은 마치 흙탕물에서 나뒹군 듯한 모습이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범행 전날(4월 19일) 이씨에게 도박 자금 50만원을 빌린 성씨가 이튿날 '빚을 갚으라'는 이씨 독촉에 '파산 상태여서 갚을 돈이 없다'며 승강이를 벌이다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성씨는 범행 당일 전주지법에서 파산 선고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업주는 동생이 휴대전화를 꺼둔 채 이삿짐센터에 나타나지 않고, 사무실 바닥과 화장실 등에서 핏자국이 발견되자 4월 21일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다.

2009년 전북 정읍에서 발생한 이삿짐센터 살인사건 피의자 성치영(48)씨가 11년 만에 공개 수배됐다. 경찰청은 성씨를 포함한 20명을 2020년 상반기 공개 수배 대상자로 선정해 이들의 사진과 인적 사항이 담긴 전단 2만장을 전국 관공서 등에 게시했다고 5일 밝혔다. [연합뉴스]

2009년 전북 정읍에서 발생한 이삿짐센터 살인사건 피의자 성치영(48)씨가 11년 만에 공개 수배됐다. 경찰청은 성씨를 포함한 20명을 2020년 상반기 공개 수배 대상자로 선정해 이들의 사진과 인적 사항이 담긴 전단 2만장을 전국 관공서 등에 게시했다고 5일 밝혔다. [연합뉴스]

경찰은 성씨가 이씨의 실종과 연관이 있다고 보고 한 차례 참고인 조사를 했으나, 그 시간대에 '집 근처에서 술을 마셨다'고 진술하고, 뚜렷한 살해 증거도 찾지 못해 돌려보냈다. 이후 실종된 이씨 사무실과 승용차 안에서 성씨 지문이 나오자 다시 소환 통보를 했다. 그러나 성씨는 2차 조사 당일(4월 25일) 부안에서 가족에게 "2~3일간 머리 좀 식히고 오겠다"며 10만원과 현금카드를 갖고 사라졌다.

경찰은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성씨를 쫓았지만, 소재조차 파악하지 못해 기소 중지했다. 이씨는 실종 5년 만인 2014년 7월 16일 이삿짐센터에서 3㎞ 떨어진 공사장 폐정화조 안에서 백골 상태로 발견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 이씨의 좌우 늑골 10여 곳이 흉기에 찔린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성씨가 희소병인 베체트병을 앓았던 점을 토대로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있는 그의 진료 기록과 카드 사용 내역 등을 뒤졌지만, 아직까지 디지털 흔적도 찾지 못했다. 베체트병은 입안과 성기 등에 궤양이 발생하고, 시력을 잃을 수 있는 만성 염증성 질환으로 꾸준히 약을 복용해야 한다. 성씨는 가족과도 10년 넘게 연락이 끊긴 상태다.

경찰은 성씨가 신분을 감추고 다른 사람 행세를 하며 살거나 외국으로 밀항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하고 있다. 성씨는 키 164㎝의 작은 체구로, 전라도 말씨를 쓴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피해자 유족은 숨진 이씨가 키 170㎝, 몸무게 80㎏의 거구였고, 돈을 빌려준 사람이 많았던 점 등을 들어 공범이 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성씨는 정읍에서 민간방범대원으로 3년간 근무해 경찰 생리를 잘 안다"며 "시민의 신고가 이 사건을 푸는 열쇠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읍=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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