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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량의 침, 혈흔으로 어떻게 범인 찾아낼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이태호의 잘 먹고 잘살기(64)  

유전자 분석법이 ‘범인을 검거하고, 친자를 확인하고, 질병의 유전적 요인(암유전자 등)을 추정하는 데 쓰이는 방법’이라는 것쯤은 누구나 다 안다. 그 결과도 의심 없이 받아들일 정도로 신뢰성이 높다. 그 원리는 뭘까. 좀 쉽게 풀어보자.

이 방법은 비교적 최근에 개발된 것으로 과거에 불가능했던 유전자의 염기서열을 알아내는 기법이다. 모든 생물의 유전자는 수만 개에 이르는데, 각 유전자 속에는 핵산염기(G,A, C,T,U)라는 것이 배열을 달리해 나열돼 있다. 염기의 순서가 달라지면 유전자가 달라지고, 생물의 종류가 달라지면 유전자의 염기서열(sequence)이 달라진다.

유전자 분석법은 범인을 검거하고 친자를 확인하고 질병의 유전적 요인을 추정하는데 쓰인다. 이는 비교적 최근에 개발된 것으로 과거에 불가능했던 유전자의 염기서열을 알아내는 기법이다. [중앙포토]

유전자 분석법은 범인을 검거하고 친자를 확인하고 질병의 유전적 요인을 추정하는데 쓰인다. 이는 비교적 최근에 개발된 것으로 과거에 불가능했던 유전자의 염기서열을 알아내는 기법이다. [중앙포토]

이렇게 서로 다른 유전자의 염기서열을 알아내는 실험법을 유전자 시퀀싱(sequencing)이라 한다. 자세한 실험의 디테일은 생략하지만, 매뉴얼이 정해져 있어 초보자라도 조금만 훈련하면 누구나 간단히 할 수 있다. 지금은 인간게놈의 분석도 단시간에 가능해졌다. 이 방법은 획기적인 기법이라 몇몇이 노벨상을 탔다.

생물 간에 같은 기능을 가진 유전자라도 그 염기서열은 동일하지가 않다. 심지어 부모 형제간에도 다르다. 그러나 촌수가 가까울수록 그 유사성(상동성)은 높아진다. 똑같은 경우는 일란성 쌍둥이뿐이다. 유전자 간의 상동성이 높을수록 장기이식 시에 거부반응이 줄어든다.

유전자 서열이 다르면 생산되는 단백질의 아미노산 서열도 달라진다. 자기 것이 아닌 단백질이 들어오면 우리의 면역세포가 타인의 것으로 인식해 항체를 만들어 공격하기 때문이다. 이게 장기이식의 부작용이다. 이런 유전자의 염기서열을 분석해 생물 간의 유연성 혹은 조상의 원류를 따지기도 하고 계통분류도 한다.

유전자의 염기서열을 결정하는 이 기법이 개발된 것은 불과 40여 년 전이다. 짧은 기간에 생명공학(유전공학)이 집약적으로 발전했다. 동식물의 복원과 복제가 가능하고, GMO가 개발되고, 인간의 유전자까지 바꾸는 수준에 이르렀다. 인간게놈을 분석하고 질병과 관련된 유전자를 알게 됐고, 유전자조작으로 생명체의 편집(크리스퍼)까지 가능해졌다.

유전자 감식으로 범인을 특정할 때는 범인일 것으로 추정되는 세포(침, 혈액, 머리카락 등)를 채취해 거기에 있는 유전자의 구조를 분석하고 피의자의 그것과 일치하면 범인으로 간주한다. [사진 pixabay]

유전자 감식으로 범인을 특정할 때는 범인일 것으로 추정되는 세포(침, 혈액, 머리카락 등)를 채취해 거기에 있는 유전자의 구조를 분석하고 피의자의 그것과 일치하면 범인으로 간주한다. [사진 pixabay]

그러면 친자확인 등은 어떻게 하는 걸까. 특정 유전자의 염기서열을 결정해 서로의 상동성(유사성)을 비교해 보는 것이다. 상동성이 높으면 서로 가까운 관계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친자일 가능성이 “몇 퍼센트 이상이다”는 식으로 표현한다.

범인을 특정할 때는 범인일 것으로 추정되는 세포(침, 혈액, 머리카락 등)를 채취해 거기에 있는 유전자의 구조를 분석하고 피의자의 그것과 일치하면 범인으로 간주한다. 유전자 감식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대개의 경우 유전자(DNA)의 염기 배열을 일일이 시퀀싱 하는 것이 어렵고 번거로워 보통은 DNA지문이라는 것을 사용한다. DNA의 어떤 구조는 손가락지문처럼 개인마다 독특한 구조적 패턴을 갖고 있어, 이를 비교하면 일일이 DNA의 염기서열을 확인하지 않아도 된다.

이런 패턴을 미리 분석해 데이터베이스로 보관해 뒀다가 습득한 샘플과 비교해 피의자를 특정한다. 수사기관 등에는 과거 어떤 계기로 채취한 수십만의 유전자지문이 확보돼 있다고 한다.

유전적 질병의 경우는 그 질병에 관여하는 유전자의 변이 정도를 파악해 발병 소지를 짐작한다. 가족력이 있는 질병은 해당 유전자의 염기서열이 대물림되기 때문에 같은 병에 걸릴 가능성이 커진다. 배우 안젤리나 졸리가 유방암에 걸리지도 않았는데 절제한 이유다.

소량의 DNA를 실험적으로 양을 불리는 PCR 기법이 개발됐다. 이를 바탕으로 증거물과 피의자의 것을 비교한다. 이렇게 알아낸 유전자의 염기서열을 기초로 하여 DNA 합성도 가능하다. [중앙포토]

소량의 DNA를 실험적으로 양을 불리는 PCR 기법이 개발됐다. 이를 바탕으로 증거물과 피의자의 것을 비교한다. 이렇게 알아낸 유전자의 염기서열을 기초로 하여 DNA 합성도 가능하다. [중앙포토]

그렇다면 담배꽁초에 묻은 소량의 침, 머리카락, 옷 등의 혈흔만으로 어떻게 범인을 찾아내는 걸까. 방법은 간단하다. 소량의 DNA를 실험적으로 양을 불리는(증폭) 방법이 개발됐기 때문이다. 노벨상을 탈 정도로 기발한 방법인 PCR(polymerase chain reaction)이라는 기법이다. 증거물과 피의자의 것을 비교하면 된다. 정확도는 거의 100%다.

이렇게 알아낸 유전자의 염기서열을 기초로 하여 DNA의 합성도 가능해졌다. 이른바 유전자를 시험관에서 만들 수 있다는 거다. 놀랍게도 비교적 간단하고 짧은 염색체를 가진 특정 박테리아의 경우는 그 게놈 DNA까지도 만들 수 있는 단계에까지 왔다. 생명체의 시험관 내 창제가 가능하다는 거다.

과학이 어디까지 갈지가 가늠이 안 된다. 인조생물체가 혹은 인조인간이 탄생할 날도 멀지 않은 것인가. 신에 대한 도전일까. 오싹하다. 인간의 절제가 촉구되는 시점이다.

부산대 명예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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