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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올라가지만 결국 바닥으로…무례함은 '대관람차'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강하라·심채윤의 비건라이프(18)

스웨덴에는 ‘라곰(Lagom)’, 덴마크와 노르웨이에는 ‘휘게(Hygge)’라는 표현이 있다. 오랜 시간 삶에 녹아든 그들의 문화가 느껴지는 말이다. 북유럽이라 부르는 이들 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다고 한다. 복지와 자연환경뿐 아니라 문화의식까지도 반영된 지표에서 해마다 우수한 평가를 받는다. 혹독한 기후환경임에도 이들 나라 국민이 우리보다 월등하게 행복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북유럽 몇 도시를 다녀보면서 이곳 사람들은 예의가 바르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의 문화에는 배려와 존중이 깊이 담겨 있었다. ‘라곰’이란 이런 배려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문화다.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에 지나치게 다가가지 않고 섣불리 판단하지 않는다. 충분히 친해질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둔다.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에서 뭉근하게 여유를 담아 쌓아간다. 묻지 않는 말에 대답하지 않는다. 사소한 것을 서로 캐묻지 않는다. 말 한마디라도 조심하게 된다.

여러 사람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도 조용함이 오히려 편안하게 느껴진다. 침묵이 흘러 서먹하고 어색해지는 상황을 깨기 위해 아무 말이나 꺼내지 않는다. 일부러 떠들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정확하게 정의하거나 설명할 수 없는 배려와 중용의 가치를 담은 말이 ‘라곰’이다. 우리말의 ‘적당히’라는 말로만은 표현이 부족하다. 이런 문화는 오랜 시간 교육이 필요하고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접해야 가능해진다. 말수가 적으면 자신감이 없거나 나약하게 보는 우리의 시각과는 대조적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바뀌어 가고는 있지만 우리나라는 내성적인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존재한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적막을 깨고 무슨 말이라도 꺼내야 할 것 같은 상황을 누구나 경험한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도, 잘 보이고 싶은 사람에게도, 상사에게, 연인의 부모에게 그래야만 할 것 같은 부담을 누구나 경험해보았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 쓰지 않지만 많은 사람은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지나치게 신경 쓰기 때문에 침묵과 적막에 불안을 느낀다. 뭐라도 말해야지 싶어 나오는 말에 실수가 따르기도 한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ć)의 비디오 전시. 나와 타인의 생각이 다른 것은 머리색과 생김, 취향이 다른 것만큼 자연스러운 일이다. 생각이 달라서 불편한가? 그렇다면 생김이 달라서도 불편한가? 코펜하겐 루이지애나 미술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ć)의 비디오 전시. 나와 타인의 생각이 다른 것은 머리색과 생김, 취향이 다른 것만큼 자연스러운 일이다. 생각이 달라서 불편한가? 그렇다면 생김이 달라서도 불편한가? 코펜하겐 루이지애나 미술관.

다양한 인종과 국가가 밀집된 유럽에서 말수와 배려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여러 피부색과 눈동자 색, 여러 국적이 공존하는 환경에 나를 던지니 절로 드는 생각이었다. 북적이는 유럽의 도심에서 그들은 다른 문화, 다른 가치관으로 어떻게 공존할지에 대해 많은 생각과 시행착오를 거듭했을 것이다.

배려와 존중은 숨 쉬는 것과 같아 몸에 익은 사람은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반면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숨 쉬듯이 무례한 사람도 있다. 무례함과 배려의 정도 또한 정해진 답과 기준이라는 것이 없기에 사회 구성원들 간에 생각하는 정도보다 더 많이 조심하면서 ‘라곰’의 문화도 넓은 의미로 확장되고 있다.

배려의 기본은 존중이다. 자신과 다른 사람, 우리와 다른 문화를 존중하는 마음이 바탕이 될 때 비로소 배려할 수 있고 동등해진다. 의견의 대립은 있을 수 있다.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우리 자신의 감정도, 관계도 달라진다. 시간이 지나서 회상할 때 정말 별것이 아닌 일로 타인과 분쟁했던 과거가 부끄러워지는 경험은 누구나 있다. 타인에게 내 생각을 강요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존중하는 마음으로는 절대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강요할 수 없다. 타인의 생각을 무조건 옳지 않다며 귀를 막는 일도 마찬가지다.

다름을 인정하고 왜 다른지, 왜 저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는지 마음의 여유를 가지지 않을 때 우리는 우물 안 개구리나 꼰대가 된다.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 발전된 관계와 조직, 사회는 기대할 수 없다. 이러한 인식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배려와 존중이 불가능한 영역도 있다. ‘돈’이다. 돈이나 이익관계가 끼어들면 배려도 존중도 뒷전이 된다. 혹은 나보다 잘난 것 같지 않은데 나서거나 입바른 말을 하면 슬그머니 존중도 사라지고 미움과 비꼼이 고개를 내밀어 우리의 혀를 조종한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ć)의 비디오 아트 ‘AAA AAA’. 두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소리를 지르며 대립한다. 코펜하겐 루이지애나 미술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ć)의 비디오 아트 ‘AAA AAA’. 두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소리를 지르며 대립한다. 코펜하겐 루이지애나 미술관.

이마리아 아브라모비치와 울라이(Ulay)의 퍼포먼스 아트 ‘Light/ Dark’. 두 사람이 미술관에서 실제로 쉼 없이 빰을 때리고 있다. 코펜하겐 루이지애나 미술관.

이마리아 아브라모비치와 울라이(Ulay)의 퍼포먼스 아트 ‘Light/ Dark’. 두 사람이 미술관에서 실제로 쉼 없이 빰을 때리고 있다. 코펜하겐 루이지애나 미술관.

우리는 비거니즘에 관한 글을 쓰고 책을 통해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타인이 무엇을 먹느냐에 대해 관여하는 것을 폭력으로 여긴다. 음식을 선택하는 취향은 어떤 색과 디자인의 옷을 입느냐만큼 개인적이다. 고기를 먹는 것이 폭력이 아니라 고기가 만들어지는 현재의 축산에 문제가 있다. 개인의 취향에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타당한 공익의 관점에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무엇을 먹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잘못된 방법으로 생산되는 과정과 원인이 문제다. 비거니즘을 말하면서 비폭력을 외치는 사람들조차도 역으로 고기 먹는 사람에 대해 폭력적인 시선을 가진다는 것을 느꼈다. 태어날 때부터 채식을 해왔던 사람은 극소수다. 대부분의 채식인들도 과거에 삼겹살과 치킨을 먹었고 즐겼을 것이다. 극소수의 사례를 전체로 해석하는 것도 위험하고, 다수의 시각으로 소수의 다름을 평가하는 것도 위험하다. 그곳에는 존중과 배려가 사라진다. 생각의 폭력, 말의 폭력으로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 폭력을 행하는 사람만 있게 된다.

해가 새롭게 시작되었다. 배려와 존중은 놀이공원의 회전 마차처럼 자리를 떠나 다시 그 자리로 돌고 돈다. 내가 전하면 내게 다시 돌아온다. 뺨 때리기와 소리 지르기는 대관람차 같다. 내가 높이 올라간 것 같다가도 결국 바닥으로 돌아간다. 무례함은 더 빨리 깊숙이 전달되고 더 크게 돌아온다. 새해에는 배려와 존중이 담긴 회전 마차를 타고 함께 좋아서 더 즐거운 관계를 만끽하고 싶다.

작가·PD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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