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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골공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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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장혜수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장혜수 스포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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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고려 시대 남경으로 불렸다. 대각국사 의천의 아버지 문종은 남경에 궁궐을 지었고(1068년), 숙종은 남경 천도를 계획했다. 남경에는 많은 사람이 살았고, 사찰도 많았다. 그중 하나가 흥복사다. 남경은 새 왕조 조선의 도읍이 됐다. 조선의 억불정책과 도성 내 공간 부족으로 흥복사 규모는 점점 줄었다. 그러던 중 불교 법회에서 기이한 현상이 목격됐다. 세조는 1465년 흥복사 자리에 새 절을 세웠다. 원각사다. 세조는 원각사에 5만근짜리 범종(고종 때 보신각으로 옮겨져 1985년까지 보신각종으로 사용, 보물 2호)과 12m 높이의 불탑(원각사지 10층 석탑, 국보 2호)도 세웠다. 연산군은 1505년 원각사를 폐사하고, 그 자리에 기생과 악사가 머무는 장락원을 설치했다.

원각사 터가 지금처럼 공원이 된 건 1897년이다. 절터에 서양식 공원을 조성하자는 영국인 존 M. 브라운의 요청을 고종이 허락했다. 초기 명칭은 ‘파고다공원’이었고, 현재처럼 ‘탑골공원’이 된 건 1992년이다. 공원이 위치한 종로 3가는 지하철 3개 노선이 지나는 등 교통이 편리하다. 언제부턴가 노년층이 모여들었다. 공원 주변에 저렴한 식당이 들어섰다. 노인을 상대로 성매매하는 속칭 ‘박카스 아줌마’가 등장했고, 노숙인도 모여들었다. 젊은 층이 기피하는 ‘탑골공원’은 ‘유행이 지난, 낡고 오래된 무엇’을 상징하는 단어가 됐다.

지난해 8월7일 SBS는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방송됐던 가요 순위 프로그램을 24시간 틀어주는 유튜브 스트리밍 채널을 개설했다. 프로그램을 보며 자란 40, 50대는 물론, 본 적 없는 젊은 층까지 열광했다. 네티즌은 채널에 ‘온라인 탑골공원’ ‘온라인 노인정’ ‘온라인 실버타운’ 등 별명을 붙였다. 1990년 데뷔해 3년간 활동하다 사라졌던 가수 양준일은 이 채널을 통해 ‘탑골GD(GD는 그룹 ‘빅뱅’ 멤버 지드래곤)’라는 별명을 얻는 등 인기를 끌었다. 급기야 30년 만에 귀국해 아이돌 일색의 가요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 부모와 자녀가 30년 세월을 넘어 ‘양준일’이라는 화제를 공유했다.

몇 해 전부터 탑골공원 뒤편 익선동 한옥마을이 젊은 층 사이에서 인기다. 이제 탑골공원과 주변은 노년층만이 아닌, 모든 세대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그러고 보면 ‘온라인 탑골공원’은 훈훈한 작명이다.

장혜수 스포츠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