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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아콰피나…韓 골든글로브 77년 역사 새로썼다

중앙일보

입력

5일(미국 현지시간)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한국영화 최초로 상을 받은 '기생충'의 (왼쪽부터)배우 이정은과 봉준호 감독, 송강호가 외국어영화상 트로피를 들어보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5일(미국 현지시간)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한국영화 최초로 상을 받은 '기생충'의 (왼쪽부터)배우 이정은과 봉준호 감독, 송강호가 외국어영화상 트로피를 들어보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우선 이것(트로피) 꽤 무겁네요. 정말 영광입니다.(At first this is quite heavy. Such a great honor).”

제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한국영화 최초 외국어영화상을 차지한 봉준호 감독은 무대 뒤 공식 인터뷰에서 영어로 말하며 활짝 웃었다.

“우리는 단 하나의 언어를 쓴다고 생각합니다. 그 언어는 영화입니다(I think we use only one language, Cinema).”

5일 저녁(현지시간) 미국 LA 베버리힐튼 호텔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기생충’은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스페인)의 ‘페인 앤 글로리’ 등 쟁쟁한 거장들의 후보작을 제치고 수상무대에 올라 이런 영어 소감을 말한 데 이어서다.

5일 제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기생충' 韓최초 외국어영화상 수상 #"(트로피) 무겁네요" 봉준호 활짝 #배우 아콰피나 아시아계 신기록 세워 #타란티노 '원스 어폰...' 최다 3관왕

"1인치 자막 장벽 넘으면" 소감에 박수갈채

5일(현지시간)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에 호명된 봉준호 감독이 통역과 함께 수상 무대에 섰다. [AP=연합뉴스]

5일(현지시간)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에 호명된 봉준호 감독이 통역과 함께 수상 무대에 섰다. [AP=연합뉴스]

지난해 5월 한국영화 최초로 프랑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대상)을 거머쥔 ‘기생충’은 이날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며 또 다시 한국영화의 새 역사를 썼다. 한국영화가 수상한 건 77년 골든글로브 사상 처음이다.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가 주관하는 골든글로브 시상식은 아카데미 시상식과 함께 북미 양대 영화제이자, 아카데미 전초전으로 불린다.

세계 영화산업의 중심 할리우드에 우뚝 선 봉 감독은 한국말로 “놀라운 일이다. 믿을 수 없다”면서 “자막(서브타이틀)의 1인치 장벽을 뛰어넘으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다. 알모도바르 등 멋진 감독들과 후보에 오를 수 있어서 그 자체가 이미 영광”이라고, 언어장벽을 허문 수상 소감으로 박수갈채를 받았다.

영화 '기생충' 출연진 이정은(왼쪽부터), 조여정, 송강호가 5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주 베벌리힐스의 베벌리힐튼호텔에서 열린 77회 연례 골든글로브 시상식에 참석해 있다. [AFP=연합뉴스]

영화 '기생충' 출연진 이정은(왼쪽부터), 조여정, 송강호가 5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주 베벌리힐스의 베벌리힐튼호텔에서 열린 77회 연례 골든글로브 시상식에 참석해 있다. [AFP=연합뉴스]

출연 배우 송강호‧이정은‧조여정, 공동 각본가 한진원 작가와 함께 현장 중계화면에 포착된 제작자 곽신애(바른손이앤에이) 대표는 “기쁘다. 이 수상이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본지에 전했다.

골든글로브 2년 연속 한국말 수상소감  

지난해에 이어 골든글로브 시상식에 한국말이 울려 퍼진 순간이기도 했다. 지난해엔 한국계 할리우드 배우 산드라 오가 아시아계 최초 공동 진행을 맡은 데 더해 TV 부문 여우주연상(‘킬링 이브’)을 거머쥐며 “엄마 아빠 사랑해요”라고 한국어로 말했다. 2006년 ‘그레이 아나토미’로 TV 부문 여우조연상을 받았던 산드라 오는 이로써 골든글로브에서 두 번 이상 수상한 최초의 아시아계 배우가 됐다.

아시아계 최초로 골든글로브 뮤지컬/코미디 부문 여우주연상을 받은 래퍼 겸 배우 아콰피나(본명 노라 럼)는 "촬영할 때만 해도 이런 일은 예상하지 못했다"며 '더 페어웰'의 룰루 왕 감독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고 공을 돌렸다. [AFP=연합뉴스]

아시아계 최초로 골든글로브 뮤지컬/코미디 부문 여우주연상을 받은 래퍼 겸 배우 아콰피나(본명 노라 럼)는 "촬영할 때만 해도 이런 일은 예상하지 못했다"며 '더 페어웰'의 룰루 왕 감독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고 공을 돌렸다. [AFP=연합뉴스]

올해는 ‘기생충’ 외에도 한국계 배우가 이런 신기록을 이어받았다. 한국계 어머니, 중국계 아버지를 둔 래퍼 겸 배우 아콰피나(본명 노라 럼)가 중국계 미국 여성의 가족영화 ‘더 페어웰’로 아시아계 최초 코미디/뮤지컬 영화 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할리우드에 아시아계 영화 열풍을 일으킨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범죄물 ‘오션스8’의 개성 강한 조역에 나선지 불과 1년여 만에 시상식의 주역이 됐다. 수상 후 취재진 앞에 나선 그는 “마음이 터질 것 같다”면서 “이것이 (앞으로 아시아 여성 배우 수상기록의) 시작이길 바란다”고 했다.
“아콰피나와 봉준호가 골든글로브의 역사를 만들었다”(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 인종‧문화‧성별 등에서 다양화하고 있는 할리우드 분위기 속에 이날 현지에선 이런 보도가 잇따랐다.

최소 2관왕 예측했는데…감독상 불발

영화 '1917'로 제77회 골든글로브 감독상과 드라마 부문 작품상 2관왕을 차지한 샘 멘데스 감독이다. REUTERS=연합뉴스]

영화 '1917'로 제77회 골든글로브 감독상과 드라마 부문 작품상 2관왕을 차지한 샘 멘데스 감독이다. REUTERS=연합뉴스]

‘기생충’의 이번 수상 결과에 대해선 축하와 함께 아쉬움도 남았다. 후보에 오른 3개 부문 중 각본상‧감독상은 불발됐기 때문이다. 앞서 외신에선 최소 2관왕이란 관측이 많았다. 비영어 영화가 76년간 한 번도 수상한 적 없는 각본상은 어렵더라도, 외국어영화상‧감독상은 유력하다 내다봤다.
칸영화제를 시작으로 비영어 영화로는 이례적으로 북미에서 개봉 두 달 넘게 흥행 순항하며 전 세계 영화제 및 시상식 수상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북미에선 뉴욕비평가협회‧전미비평가협회외국어영화상에 더해 LA비평가협회 작품‧감독‧남우조연상(송강호), 미국영화연구소 특별상 등을 휩쓸었다.

봉준호 감독은 수상 후 무대 뒤 인터뷰에서 "영화감독이 되지 않았다면, 만화가가 됐[REUTERS=연합뉴스]

봉준호 감독은 수상 후 무대 뒤 인터뷰에서 "영화감독이 되지 않았다면, 만화가가 됐[REUTERS=연합뉴스]

특히 골든글로브 감독상에 대해 미국 연예매체 ‘엔터테인먼트 위클리’는 “올해 국제영화계의 가장 화제작이자 봉준호의 눈부신 재능에 대해”,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충격적인 실험작일 뿐 아니라 계급전쟁이란 주제를 상업적인 블랙코미디에 담아냈단 점에서” ‘기생충’을 지지했다. 경쟁 감독 중엔 ‘아이리시맨’의 마틴 스코시즈,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의 쿠엔틴 타란티노가 꼽혔지만, 결과는 이례적이었다.

'조커' 남우주연상 "이건 TV 쇼일뿐"

제1차 세계대전 중 영국군 병사의 실화 영화 ‘1917’의 샘 멘데스 감독이 드라마 부문 작품상과 함께 감독상을 가져갔다. 평단보다는 대중의 응원을 은 영국 가수 엘튼 존의 전기영화 ‘로켓맨’이 뮤지컬/코미디 부문 남우주연상(테런 에저튼), 주제가상(‘아임거너 러브 미 어게인’) 2관왕에 오른 것도 예상 밖의 결과였다.

배트맨 시리즈의 악당 단독영화 '조커'로 드라마 부문 남우주연상을 거머쥔 배우 호아킨 피닉스는 수상 소감에서 스타들의 환경을 생각지 않는 전용기 사용을 꼬집어 공감대를 이끌어 냈다. [AP=연합뉴스]

배트맨 시리즈의 악당 단독영화 '조커'로 드라마 부문 남우주연상을 거머쥔 배우 호아킨 피닉스는 수상 소감에서 스타들의 환경을 생각지 않는 전용기 사용을 꼬집어 공감대를 이끌어 냈다. [AP=연합뉴스]

이외 올해 골든글로브 시상식은 큰 이변 없이 전반적으로 고른 수상이 두드러졌다. 최다 수상작은 지난해 칸영화제에선 빈손으로 돌아갔던 ‘원스 어폰 어 타임…인 할리우드’로 뮤지컬/코미디 부문 작품상, 타란티노 감독의 각본상, 브래드 피트의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지난해 코믹스 영화 최초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차지한 ‘조커’는 드라마 부문 남우주연상(호아킨 피닉스)‧음악상을 차지했다. 수상 무대에 오른 호아킨 피닉스는 “이것은 그저 광고를 창출하기 위한 TV 쇼일 뿐이란 거 다들 알지 않냐”고 운을 뗀 후 “여러분에게 많은 영감을 받고 있다. 우리 함께 힘을 합치면 변화를 만들 수 있다”면서 “(시상식을 위한) 투표도 좋지만 각자의 삶에서 조금씩 희생을 감수할 필요도 있다. 시상식에 오고 갈 때 개인 전용기를 탈 필요는 없다”고 환경을 위한 파격 발언으로 호응을 얻었다.
공로상에 해당하는 세실 B. 데밀상은 데뷔 40년차 배우 톰 행크스가 받았다.

전 세계 수상 강행군에 "코피 났다" 

영화 '기생충'의 기정(박소담, 사진)이 독도는 우리땅 음에 맞춰 부른 '제시카송'은 북미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영화 '기생충'의 기정(박소담, 사진)이 독도는 우리땅 음에 맞춰 부른 '제시카송'은 북미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여러 군데 돌아다녀야 해서 신체적이고 고생이고 스케줄도 살벌하게 빡빡하다. 강호 형님은 워낙 강골이신데 본인 생애 처음으로 코피가 났다.”
봉 감독이 지난달 국내 영화 커뮤니티 사이트 ‘익스트림 무비’ 인터뷰 때 한 말이다. ‘기생충’이 프랑스‧스위스‧브라질 등 세계 40개국 개봉에 더해 고산지대 등을 가리지 않고 영화제‧행사 등에 인기 있다 보니 행복한 피로감에 휩싸인 것. 올해도 영국‧핀란드‧아랍에미리트 등에서 개봉한다. 박스오피스 모조에 따르면 북미에선 지난 주말인 5일까지 이미 2390만 달러(약 279억원)를 벌어들였다. 역대 외국어영화 흥행 8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연예매체 ‘데드라인’은 아카데미상 수상 소식이 전해지면 역대 외국어영화 흥행 7위 ‘무인 곽원갑’(2006, 2460만 달러) 자리도 넘볼 것으로 예측된다.

아카데미상 유력…'기생충' 속편은?

다음달 9일(이하 현지 시간) 미국에서 열릴 아카데미상에선 시상식의 꽃 작품상 후보 호명도 예측된다. 골든글로브 작품상 후보작은 대사의 최소 50% 이상이 영어여야 한다는 규정이 있는 반면, 아카데미 작품상은 언어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작품상·극본상 등 아카데미상 주요 부문 후보는 13일 발표된다.
“뭐 한, 15년 후에, 은퇴할 쯤 만들 예정이에요.” 5일 골든글로브 시상식에 앞서 미국 매체 ‘버라이어티’가 ‘기생충’ 속편 계획을 묻자 봉 감독이 농담처럼 던진 답변이다. 곁에 있던 송강호도 물론 출연하겠다고 응수했다. 이 짧은 영상은 트위터에 올라오자마자 수백 명이 ‘좋아요’를 눌렸다. ‘기생충’의 열기는 계속된다.

한국 영화 최초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에 이어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빈부격차 현상을 블랙 코미디로 풀어냈다. [사진 바른손이앤에이]

한국 영화 최초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에 이어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빈부격차 현상을 블랙 코미디로 풀어냈다. [사진 바른손이앤에이]

제77회 골든글로브 영화 부문 수상 명단

작품상-드라마 | ‘1917’
여우주연상-드라마 | ‘주디’ 르네 젤위거
남우주연상-드라마 | ‘조커’ 호아킨 피닉스
작품상-뮤지컬/코미디 |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여우주연상-뮤지컬/코미디 | ‘더 페어웰’ 아콰피나
남우주연상-뮤지컬/코미디 | ‘로켓맨’ 테런 에저튼
여우조연상 | ‘결혼 이야기’ 로라 던
남우조연상 |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브래드 피트
감독상 | ‘1917’ 샘 멘데스 감독
각본상 |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음악상 | ‘조커’ 힐더 구드나도티르
주제가상 | ‘로켓맨’ - ‘I'm Gonna Love Me Again’
외국어영화상| ‘기생충’ 봉준호 감독
장편애니메이션상 |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 크리스 버틀러 감독
세실 B. 데밀상(공로상) | 톰 행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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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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