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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인생, 어떤 책이 함께 했나…'책가도'를 보면 알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홍미옥의 폰으로 그린 세상(43)

수영복 차림의 모델이 난 오늘도 한가하다며 야릇한 미소를 짓고 있다. 5060세대라면 어쩜 이미 눈치를 챘을지도 모르겠다. 버스터미널의 가판대에서 혹은 기차승무원의 판매 카트 속에서도 불쑥 고개를 내밀던 그것, 맞다! 선데이서울이다. 내 돈을 주고도 멋쩍어하며 사야 했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잡지가 그림 속으로 들어왔다.

1975년, 유년시절의 추억을 책으로 불러냈다. 당시의 신문 사진 위에 모바일로 그린 책가도. 갤럭시탭s3,아트레이지 사용. [그림 홍미옥]

1975년, 유년시절의 추억을 책으로 불러냈다. 당시의 신문 사진 위에 모바일로 그린 책가도. 갤럭시탭s3,아트레이지 사용. [그림 홍미옥]

책 안 읽는 시대, 책을 그려 추억을 불러내다

최근 함께 그림을 그리는 모임에서 작은 전시를 열게 되었다. 주제는 '책과 나'. 책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그림을 그리는 거였다. 뭘 그릴까?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요즘엔 책을 잘 읽지 않았다. 중년 이후의 노안 때문이라든가 혹은 갱년기의 집중력 부족을 핑계로 말하지만 결론은 게을러서다. 다른 이들의 지나간 시절 혹은 현재, 꿈꾸는 미래는 어떤 책으로 그려질지 궁금했다. 한 집안의 냉장고를 열어보면 식습관을 짐작할 수 있다. 육식파인지 채식파인지 심지어 통장잔고까지도. 마찬가지로 옷장을 보면 옷 주인의 성격까지도 은근히 드러나곤 한다. 서재도 예외는 없을 것이다.

책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책가도 형식의 모바일그림이다, 갤럭시탭s3.아트레이지 사용. [그림 홍미옥]

책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책가도 형식의 모바일그림이다, 갤럭시탭s3.아트레이지 사용. [그림 홍미옥]

서재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나의 책장을 살펴보았다. 역시나 부끄럽게도 먼지가 사뿐하게 앉아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온통 소설이다. 대하소설, 추리소설 등. 헌데 연애소설은 없다. 어라? 재밌어진다. 그나마 색다른 건 미술관 도록과 미술사 관련 책들뿐이다. 저토록 소설이 빼곡한 걸 보니 나는 타인의 인생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나 보다. 나도 미처 몰랐던 내 모습이다. 이번엔 한참 전으로 돌아가 보았다.

나의 1975년, 그림에서 보다시피 다락방의 책들이 주인공이다. 잊을 수 없던 계몽사의 명작동화전집은 그중 제일이다. 오십을 훌쩍 뛰어넘어서도 여전히 꿈을 꾸게 하던 마법의 주인공인 셈이다. 당시엔 월부 책장수의 수입을 보장해주던 소문난 베스트셀러이기도 했다. 이쯤에서 함께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의 책이 있는 그림, 이른바 '책가도(冊架圖)'가 궁금하다. 그들의 인생은 어떤 책들로 그려지고 있을까?

서재엔 또 다른 인생이 펼쳐지고 있다

두 남자-구은주(좌). 침대보 책가도-김현정(우).

두 남자-구은주(좌). 침대보 책가도-김현정(우).

책이 있는 겨울창가-송주연(좌), 어항논 벼가 있는 책가도-이희숙(우).

책이 있는 겨울창가-송주연(좌), 어항논 벼가 있는 책가도-이희숙(우).

놀라웠다. 작은 모바일기기에 그린 그림에 불과한데도 그림 속엔 그들의 인생이 고스란히 들어 있는 게 아닌가. 자녀를 출가시킨 후의 텅 빈 마음은 커다란 소파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몇 권의 책으로 그려졌다.

그런가 하면 뜻하지 않은 인생의 시험을 책과 함께 달래던 이불 위의 책들도 있다. 이젠 창밖으로 당당히 나서는 작가의 마음은 어여쁜 창가의 책들이 말해주고 있다. 들녘이 아닌 베란다 어항에서 해마다 결실을 맺는 벼 이삭처럼 차곡차곡 인생을 꾸리는 작가의 책은 역시나 충만하다. 평소엔 인식하지 못했던 자신이 책으로 또는 책을 그린 그림으로 나타난 것이다.

최근 발간된 책 『서점은 처음입니다』 (박래풍, 이웃집출판사)에서 저자는 말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다수 국민은 1년 동안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 있을 정도로 서점을 방문하고 있다. 인당 연평균 8.3권, 즉 한 달에 한권의 책도 읽지 않는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감성은 이성을 앞선다. 종이책의 미래는 몇 년 전부터 등장한 독립서점으로 인해 채워지고 있는 중이다.”

어? 하고 잠시 놀랐지만 난들 별수 있겠는가. 겨우 평균치에 가까울 뿐이었다. 언제나 뉴스 끄트머리엔 출판시장이 무너진다, 책 읽는 인구가 줄어들었다는 이야기뿐이다. 하지만 우린 알게 모르게 책과 함께 인생을 꾸려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서재에서 이불 위에서 혹은 식탁 위에서 슬며시 나 자신을 드러내면서. 다행히 요즘엔 작은 동네 책방이 북카페 형식으로 부쩍 늘어나고 있다니 환영할 일이다.

따뜻한 차와 함께 읽어 내려가는 책. 그 책들은 자신을 대신하기도 하고 은연중에 드러내기도 한다. 책 안 읽는 시대, 하지만 책은 우리 곁에 있다. 내 인생의 도화지를 풍요롭게 채워 줄 친구처럼.

스마트폰 그림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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