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29일 밤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허름한 한정식집. 느닷없는 노랫소리가 정적을 깼다.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잡으러~”
가수 송창식씨의 ‘고래사냥’이었다. 노래를 부른 이는 당시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 원내대표였던 유승민 의원. 주위에는 유의동ㆍ이종훈ㆍ민현주 등 원내 부대표단 소속 의원들이 10명 정도 있었다. 모두 얼굴이 불콰해진 상태였다. 이날은 전국 재보궐 선거가 있던 날로 국회의원 선거 4곳 중 3곳에서 새누리당이 승리했다.
취기가 다소 오른 유 의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크게 노래를 불렀다. 다른 의원들은 앉아서 박수를 치며 따라 불렀다.
“우리들 가슴 속에 뚜렷이 있다, 한 마리 예쁜 고래 하나가~”
마침 그날 옆방에는 조윤선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이 지인들과 식사 중이었다. 조 전 수석은 유 의원의 노랫소리를 듣고만 있었고, 이들은 한정식집을 나갈 때까지 마주하지 않았다.
‘유승민과 그의 사람들’의 돈독한 관계를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당시 박근혜 정부 청와대와 유 의원의 관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당시는 유 의원이 원내교섭단체 대표연설(2015년 4월 8일)에서 박근혜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를 “허구”라고 하는 등 당ㆍ청 간 마찰음이 컸던 때였다.
유 의원은 두달 후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배신의 정치”(6월 25일)로 낙인 찍히며 결국 원내대표에서 사퇴(7월 8일)했다. 5개월 만에 원내 사령탑에서 물러난 유 의원과 핵심 측근 상당수는 2016년 총선 과정에서 공천 배제 등 시련을 겪기도 했다.
2916년 총선에서 대구 동을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유 의원은 2017년 1월 바른정당을 창당한 뒤 2018년 2월 안철수 전 의원의 국민의당과 합당, 바른미래당을 만들었다. 하지만 지난해 4·3 재보선 참패 이후 당권파와 충돌해온 유승민계는 지난 3일 탈당한 데 이어 5일 ‘새로운보수당’(이하 새보수당)을 창당했다. 정병국·이혜훈·오신환·유의동·하태경·정운천·지상욱 의원 등이 유 의원을 따라 새로운보수당 기치 아래 모인 이들이다.
이날 새보수당 창당식 주변에선 여러 얘기가 나왔다. 유 의원 측 한 인사는 “5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과 사이가 안 좋았던 때에 청와대가 지척인 곳에서 ‘고래사냥’을 부른 게 아직도 선하다”며 “지금 돌이켜보면 ‘유승민계’라는 것도 그때쯤 만들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유 의원 측 관계자는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이제 진짜 고래를 잡아야 할 때가 됐다”고 했다.
새보수당 창당을 주도해온 유 의원도 창당대회에서 “지금 오늘의 8석을 80석으로 반드시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유 의원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에 새로 시작을 하는 만큼 우리들은 두려울 게 없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현일훈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