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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사람의 정치, 그 예정된 비극에 대하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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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박원호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박원호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정치’라는 추상적 개념은 멀고 ‘정치인’이라는 구체적 개인은 가깝다. 정치라는 과정은 보이지 않지만 정치인들의 쇠락과 너절함만큼 눈에 띄고 욕하기 쉬운 대상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정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정치인을 보며, 정치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인의 행위를 평가한다.

정치 영웅의 추대·추락을 #반복하는 ‘사람의 정치’는 #과거에 의한 과거의 정치 #사람을 위한 정치는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정치사는 정치적 거인들의 눈부신 영광과 처절한 추락이 명멸한 역사이기도 했다. 박정희가 있었고 3김(金)이 있었으며, 노무현이 있었고, 또 거슬러 올라가면 이승만이 있다. 거의 모든 정치 관련 여론조사들이 묻는 질문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선생님께서 가장 존경하는 역대 대통령은 누구입니까.” 이 질문은 정당, 정책, 이념을 묻는 어떤 질문보다도 응답자의 성향을 잘 드러내는 질문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죽은 정치인들의 시대를 산다.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학술적 재해석이 테러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박정희 대통령의 ‘영애’가 대통령에 선출되기도 했으며, 노무현 대통령의 비석에는 오늘도 조문객들이 줄을 이을 것이다. 이들이 세상을 떠난지는 오래되었지만 시민들의 여전한 갈망 속에 정치적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따라서 한국의 정당은 그 공식적 이름이 의미가 없다. 수없이 반복되는 창당과 분당과 합당 속에서 중요한 것은 김대중당이, 노무현당이, 박정희(박근혜)당이 어느 당인지 유권자가 식별하기만 하면 될 일이기 때문이다. 외국학자들이 수수께끼로 생각하는 숱한 한국 정당 당명 변경의 비밀은, 출마자의 정당명이 무엇이고 어떤 정파이며 어떤 정책을 지니고 있건, 그가 어느 정치적 유령의 계승자인지만 유권자들에게 신호하면 된다는 선거전략이었다.

이러한 ‘사람의 정치(politics of personality)’는 과거의 거인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라는 말을 쓸 때 우리는 대통령의 개인 인격이 정부의 모든 기구와 관료제 최말단까지 구석구석 녹아들어 있는 모습을 상상한다. 우리가 ‘조국 법무부’라는 말을 쓸 때도 마찬가지이며 ‘윤석열 검찰’이라는 말을 쓸 때도 마찬가지이다. 요컨대 우리는 사인(私人)의 인격과, 기관으로서의 공인(公人)과, 해당 인물이 이끄는 조직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에 대한 옹호나 공격도 매우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를 비판하는 것은 대통령을 공격하는 것과 같고, 대통령 개인을 증오하는 것은 정권심판과 같은 일이라는 것이다. 똑같은 논리로 조국의 개인적 흠결을 찾는 일은 정부와 법무부 정책을 비판하는 것과 동치이며, 윤석열 개인을 공격하는 것은 검찰을 비판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이 말이 과장되었다고 생각한다면, 이상의 내용이 유튜브에서 오늘도 수없이 생성되는 동영상들의 주제이기도 하다는 것을 확인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근대 정치의 핵심이야말로 바로 사람의 지배를 제도의 지배로 바꾼 것이 아니었던가. “짐(朕)이 곧 국가”라고 했던 어느 왕이 했던 말을 그대로 전복한다면, 대통령은 개인이 아니라 개인이 잠깐 머물다 가는 정거장 같은 기관이며, 그 개인과 기관을 구분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정치의 핵심이 아니었던가.

이것은 정치학자의 머리 속 이론만은 아니다. 사실 이런 ‘사람의 정치’를 가장 즐기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여야를 막론한 우리의 정치엘리트들이며, 그 이유는 끊임없는 정치적 동원과 권력의 재생산이 보다 수월하게 이뤄지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이 내용을 생산하고 시민들을 설득할 의무보다는 차라리 영웅을 만들고 상대방은 그를 공격하고 폭로하는 것이 훨씬 쉽고 안전한 길이기 때문이다. 잘하면 절반의 승리를 거둘 것이고 못해도 제1 야당으로 남을 것이다.

사람의 정치와 패키지로 같이 오는 것은 바로 도덕주의이다. 굳이 온 나라가 작년 한해를 통째로 소모했던 조국 법무부장관 임명 이야기는 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정치가, 그리고 특히 인사청문회가, 공인으로서의 능력과 가능성을 검증하기보다는 개인의 인격적, 도덕적, 가족사적 흠결을 까발리는 장이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지적은 이전 정권들에서 여야가 바뀌고 공수(攻守)가 전환된 채 늘 나오던 이야기다. 검찰이 법의 영역을 넘어 도덕의 영역을 기소할 수 있게 된 배경에는 사람의 정치가 있는 셈이다.

사람의 정치가 우리 공동체를 이끄는 곳은 끝없는 니힐리즘(nihilism)이다. 사람을 믿고 영웅을 세우고 메시아를 끝없이 기다리는 곳에서는 사람의 정치는 있을지언정 사람을 위한 정치가 들어서기 어렵다. 끊임없이 사람은 변하고 영웅은 쇠락할 것이며 메시아는 결국 가짜임이 들통나 감옥을 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라는 것이 결국 불완전한 사람들, 우리와 다르지 않은 흠결있는 사람들을 잠시 임시직에 올려놓고 소모하는 과정이라는 것, 그들이 할 수 있는 일보다는 해서는 안되는 일이 매우 많으며, 그 과정에서 우리 공동체가 다같이 전진할 수 있는 한 뼘을 찾는 일이라는 것을 발견하는 새해가 되었으면 한다. 그렇게 4월을 맞았으면 한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