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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미래] 25g 작은 몸집이지만…죽어서 400개 데이터를 남겨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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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충북 오창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실험동물자원센터에서 함석현 연구원이 연구용 생쥐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충북 오창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실험동물자원센터에서 함석현 연구원이 연구용 생쥐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길이 8㎝, 무게 25g의 작은 체구에서 생체 데이터 400개를 남기는 ‘작은 거인’. 인간의 건강과 생명을 위한 연구에 보탬이 되기 위해 국내에서만 연간 350만 마리가 희생되는 동물. 인간 유전자와 90% 이상 일치하는 데다, 평균 수명도 2~3년 정도라 노화 연구에까지 용이한, 실험실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

경자년 실험쥐가 말합니다 #연구 위해 연간 350만 마리 희생 #몸값 5만~10만원…60만원짜리도 #2018년 국가전략연구자원 선정 #동물실험 대체 기술 국내선 아직

참, 내 자랑만 하고 소개를 안 했구나. 나는 지난해 충북 청주시 오창읍에 위치한 한국생명공학연구원(생명연) 실험동물자원센터에서 태어난 실험 쥐야. 사실 난 태어날 때부터 당뇨를 앓고 있어. 의도적으로 아프게 태어난 셈이지. 바로 ‘질환모델’이야.

‘질환모델’이 뭐냐고? 쥐는 2만8000여개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데, 그 중 특정 유전자를 일부러 망가뜨려 기능을 못 하게(Knock-out, KO) 만드는 거야.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용해 수정란 상태에서 해당 유전자를 편집하는 거지. 이 쥐가 만들어지면 특성(표현형)을 확인하는 작업을 거쳐야 해. 사람들이 하는 건강검진과 비슷해. 청각·시각도 체크하고 엑스레이와 골밀도 검사도 해. 죽고 나서는 해부를 통해 병리조직학 검사까지 해.

그런데 어느 한 나라 혼자서 2만8000개 유전자를 하나씩 모두 편집할 수 없으니까, 각 나라가 뭉쳐 ‘국제마우스표현형분석컨소시엄(IMPC)’을 만들었어. 현재 전 세계적으로 8500건이 등록됐다고 하네. 우리나라도 여기 참여하고 있어. (2013년 국가마우스표현형분석사업단이 발족했다. 현재 성제경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가 단장을 맡고 있다. 170여 건의 유전자 변형 쥐를 개발했고, 이 가운데 95건이 IMPC에 등록됐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는 2500여 종, 1만 5000여 마리의 연구용 쥐를 보유하고 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는 2500여 종, 1만 5000여 마리의 연구용 쥐를 보유하고 있다.

내가 태어난 생명연은 쥐를 공유하는 일종의 플랫폼이야. 사업단에서 만든 쥐 등을 보존하고 번식시켜 전국의 연구자들에게 제공해. 당뇨, 신경계 질환, 암 등 각자 연구의 필요에 맞게 유전자가 편집된 쥐들을 데려가는 거지. 유전자 치료법 신약 테스트에도 쥐가 쓰여. 사람에게 임상실험을 하기 전에, 쥐에게 먼저 투약해 반응을 보는 거지. 정리하면, 쥐는 특정 유전자와 질환의 상관관계를 밝히거나 신약효과를 검증하는 데 쓰이는 거야. 연구의 처음과 마지막 모두에 쓰인다고 보면 돼.

내 몸값은 5만~10만원 정도인데, 친구들 중에는 50만원 정도로 더 비싼 아이들도 있어. 당뇨나 신경계 질환에 걸린 쥐나 암에 잘 걸리는 쥐들이 연구자들에게 많이 ‘픽’(pick) 당한다고 해. 예를 들어 P53은 암을 억제하는 유전자인데, 여기에 이상이 있는 친구들은 암에 빨리 걸린다고 해. 이런 친구들을 데려가서 약을 먹인 후 암이 발병하는지 안 하는지 독성 실험을 하는데, 일반 쥐들이 보통 18개월이 지나야 암이 생긴다고 하면 P53 KO 쥐들은 6개월 만에 생기기도 한대.

실험에 쓰이는 쥐 중에는 나 같은 ‘결함모델’ 말고도 건강한 ‘노령 쥐’들도 있어. 이들은 노화 연구에 쓰이는데, 30만~60만원으로 몸값이 좀 더 비싸. 연구자들이 와서 15개월, 24개월, 30개월 등 연구에 필요한 나이의 쥐를 찾아서 데리고 가는 식이야. 요즘 더 많은 사람이 찾고 있다고 하네. 보통 생후 15개월 이상 쥐들을 노령 쥐라고 하는데, 생후 30개월 쥐는 사람 나이로 따지면 무려 80세에 해당하는 할머니·할아버지 쥐라고 할 수 있어.

국내에서 만들어진 유전자 변형 쥐

국내에서 만들어진 유전자 변형 쥐

나는 체외수정을 통해 태어날 때까지 약 3개월이 걸려. 생명연에서 1년에 200~300종류가 탄생하는 걸 감안하면, 거의 매일 하나씩 나온다고 볼 수 있지. 내년에는 150~200종의 친구들이 추가될 예정이야.

나는 A4용지보다 작은 케이지에 비슷한 친구들 4~5명과 함께 지내고 있어. 이 케이지는 ‘무병원균’ 상태로 유지돼. 공기도 깨끗하게 걸러서 들어오고 물과 먹이도 고압증기멸균기(120℃로 작동)를 통과해야 들어올 수 있어. 나는 많이 먹지 않아서 하루 이틀에 한 번씩 물과 먹이 각각 25g 정도만 제공해주면 돼.

오해 좀 바로잡고 싶어. 나는 생각보다 무척 청결해. 쥐를 불결함의 상징으로 생각하는데 억울해. 실험실에서 깨끗하게 길러져서 그런지, 더러운 걸 참을 수 없어. 항상 혀로 몸을 핥아서 스스로 깨끗함을 유지하지. 또 사람들이 실험 쥐는 흰 쥐만 있는 줄 알지만, 사실 검은 친구들도 많아. 희고 검은 쥐들이 큰 차이는 없지만, 검은 쥐에 대한 기존 실험 데이터가 많아서 검은 쥐들을 찾는 사람도 많다고 하네.

이제 국가에서도 나를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한 것 같아. 2018년 쥐가 국가전략생명연구자원 중 하나로 선정됐어. 국가 차원에서 중요한 생명자원을 체계적으로 관리한다는 뜻이지. 그런데 한편에서는, 나 같은 쥐들이 실험에 쓰이기 위해 태어나고 죽는 것에 대한 윤리적 문제도 제기되고 있더라고. 그래서 요즘에는 동물 실험의 한계를 극복할 대체 시험법으로 인체의 생리적 특성을 정확히 모사한 ‘장기 칩’도 주목받고 있대. 혈관·폐·간 등 인체 장기를 구성하는 세포를 3차원으로 배양한 뒤 전자회로가 형성된 미세 유체 칩 위에 놓고 실제 인체와 유사한 생체환경을 만들어 약물 반응성을 시험하는 기술인데, 국내에서는 아직이야.

올해는 풍요의 상징인 ‘흰 쥐’의 해 경자년(庚子年)이라고 하네. 다들 풍성한 한 해 되기를 바랄게. 안녕!

※ 이 기사는 ‘실험 쥐’의 입장에서 1인칭으로 작성됐습니다.

오창=권유진 기자 kwen.y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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