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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설 ‘유전자 가위 대가’···中당국은 왜 그를 감옥에 넣었나

중앙일보

입력

허젠쿠이 전 중국남방과학기술대학(SUSTC) 교수. [중앙포토]

허젠쿠이 전 중국남방과학기술대학(SUSTC) 교수. [중앙포토]

일명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에이즈(후천성 면역 결핍증)에 면역력을 가진 쌍둥이를 탄생시켰다고 주장한 허젠쿠이(35·賀建奎) 전 중국남방과학기술대학(SUSTC) 교수에게 징역 3년의 실형이 선고됐다.

중국 신화통신과 CCTV 등 관영언론은 지난 달 30일(현지시간) 중국 법원이 불법 의료시술 등의 혐의로 기소된 허 전 교수에게 징역 3년과 300만위안(약 5억원)의 벌금을 선고했다고 보도했다. 세계 최초로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유전자 맞춤 아기'를 탄생시켰다고 주장한 허 전 교수가 수감되면서, 세계 유전자 편집 관련 연구가 위축되는 건 아닌지 우려가 나오고 있다.

◇비주류 과학자의 깜짝발표    

허 전 교수의 이름이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8년 11월이다. 그는 홍콩에서 열린 학회에서 '크리스퍼(CRISPR-Cas9)'로 알려진 제3세대 유전자 편집 기술을 이용해 에이즈에 걸리지 않는 쌍둥이를 탄생시켰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허 전 교수 연구팀은 총 8쌍의 남녀를 모집해 이 가운데 산모 2명의 자궁에 에이즈 면역을 갖춘 유전자 편집 배아를 이식하는데 성공했다. 이 중 한 명의 산모로부터 '루루'와 '나나'라는 가명이 붙은 쌍둥이 여아가 태어났으며, 나머지 한 명의 산모도 유전자 맞춤 아기를 임신 중이라고 주장했다.

허 전 교수가 실험한 일명 '유전자 가위(크리스퍼)'의 원리. [중앙포토]

허 전 교수가 실험한 일명 '유전자 가위(크리스퍼)'의 원리. [중앙포토]

생명윤리에 논란을 가져올 수 있는 실험을 진행한 것도 모자라 이 실험에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는 허 전 교수의 주장이 더욱 주목을 받았던 이유가 있다. 바로 허 전 교수가 생명과학 및 유전공학계의 주류 과학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1984년생 젊은 과학자인 허 전 교수는 스탠퍼드 대학에서 박사 학위, 래사대학에서 생물물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SUSTC 교수직을 맡으며 연구를 진행하던 무명의 학자였다. 비주류 과학자에서 한순간에 '유전자 가위의 아버지'가 된 허 전 교수는 그해 과학전문지 네이처가 꼽은 올해의 '과학계 10대 인물'에 선정되기도 했다.

◇생명윤리 논란 핵심 세가지

그러나 그가 진행한 연구에 대해서는 논란이 계속됐다. 단연 생명윤리적으로 가장 논란이 된 것은 그의 연구가 편의에 따른 자의적 유전자 편집 기술로 사용될 수 있다는 위험성이었다. 유전 질병의 치료라는 본연의 목적이 아닌 아이의 성별, 능력, 키 등 부모가 원하는 '맞춤 아이'를 낳기 위해 기술이 왜곡 사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만에 하나 유전자 편집으로 태어난 아이가 향후 겪게 될 '알 수 없는' 부작용도 논란의 핵심이다. 유전자 맞춤 아이가 미래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질병이나 부작용에 시달릴 경우 이를 책임질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유전자 변형이 미래 세대에게로까지 전이된다는 측면에서 그 이후 세대가 감당해야 할 위험도 높다는 지적이다. 미국이 실험실에서의 연구 외에 배아 편집을 금지하고 있는 이유다.

유전자가위를 이용한 유전자 교정의 개념을 그린 컴퓨터 그래픽. [중앙포토]

유전자가위를 이용한 유전자 교정의 개념을 그린 컴퓨터 그래픽. [중앙포토]

또 연구결과의 신빙성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허 전 교수가 주장한 '에이즈에 걸리지 않는 쌍둥이'의 존재가 증명된 적은 없다. 발표 당시 두 아이의 신원이 밝혀지지 않으면서 실제 그의 주장이 사실인지 아무도 확인하지 못한 것이다. 이달 초 출간된 MIT 테크놀로지 리뷰(MIT Technology Review)는 허 전 교수의 첫 연구결과에서 실제로 특정 질병에 저항력이 있는 유전자 돌연변이가 발견되지 않았다며, 연구 자체가 실패했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다만, 중국 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세번째 유전자 조작 아이도 이미 태어났다"며 유전자 편집이 이뤄진 아이 세 명이 탄생했음은 인정했다.

◇연구중단 → 실종 → 결국 수감

처음 허 전 교수의 연구가 논란이 됐을 당시 일각에서 중국 정부의 암묵적 지원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에 SUSTC는 곧바로 허 전 교수의 연구를 중단시켰다. 이후 허 전 교수의 행방이 묘연해지며 '실종설'이 돌았지만, 허 전 교수는 대학 내에서 당국의 감시를 받으며 생활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SUSTC는 곧 허 전 교수와의 계약을 해지했고, 허 전 교수는 이후 기소돼 재판을 받아왔다.

중국 법원은 허 전 교수팀에 대해 "3명의 연구자가 유명세와 부를 위해 적절한 자격과 승인 없이 의료시술을 하였고, 과학 연구와 치료에 관한 국가 규정을 고의로 위반했다"며 "과학연구와 의료윤리의 기준선을 넘어섰다"고 지적했다. 연구팀의 나머지 두 연구자도 각각 2년형과 1년 6월형을 선고받았다.

◇유전자 편집의 미래는 

유전병 치료의 혁신이 될 수도 있는 유전자 편집 연구의 미래는 불투명해졌다. 허 교수가 자신의 실험에 대해 자문을 구했던 윌리엄 헐벗 미국 스탠포드대 생명윤리학 교수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그에게 이런 식으로는 파탄이 올거라고 경고했으나, 너무 늦었다"며 "이 사건으로 허 교수, 그의 가족, 그의 동료 및 그의 나라 등 모두가 패배한 슬픈 이야기이나, 세계는 우리의 진전된 유전자 기술의 위중함을 각성하는 효과도 봤다"고 말했다.

인간 배아에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주입하고 있는 모습. 이 유전자 가위는 한국 기초 과학연구원이 만들었지만 실험은 미국에서 진행됐다. 국내에선 인간 배아 유전자 교정이 허용되지 않아서다.  [사진제공=미 오리건보건과학대]

인간 배아에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주입하고 있는 모습. 이 유전자 가위는 한국 기초 과학연구원이 만들었지만 실험은 미국에서 진행됐다. 국내에선 인간 배아 유전자 교정이 허용되지 않아서다. [사진제공=미 오리건보건과학대]

지난 3월에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와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를 비롯한 세계 7개국 18명의 관련 분야 학자들이 향후 최소 5년간 인간 배아의 유전자 편집 및 착상을 전면 중단하고 이 같은 행위를 관리 감독할 국제기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의 공동성명서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하기도 했다.

김다영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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