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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상연 논설위원이 간다

이재오 “무반성 한국당, 무능 지도부…이대론 총선 어렵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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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최상연
최상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보수진영 사분오열 속 ‘국민통합연대’ 띄운 비박계 

국민통합연대 이재오 중앙집행위원장이 ’한국당 중심으론 보수진영이 통합되기 어렵다“며 ’보수당과 사회단체 연석회의서 토론과 논의로 우파 단일후보를 공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상선 기자

국민통합연대 이재오 중앙집행위원장이 ’한국당 중심으론 보수진영이 통합되기 어렵다“며 ’보수당과 사회단체 연석회의서 토론과 논의로 우파 단일후보를 공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상선 기자

크리스마스를 앞둔 지난 23일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실. 보수분열 극복을 내건 ‘국민통합연대’가 창립대회를 열었다. 햇살 없이 착 가라앉은 날씨에 동지 바람이 매서웠지만 행사장 안은 달아올랐다. 문재인 정권을 향한 맹폭격이 이어졌고 ‘무능, 기만의 오만방자한 정권에 사망을 선고한다’는 창립선언문이 나왔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 등 전현직 의원 20여명을 포함해 500여명이 자리를 빼곡하게 메웠다.

“보수정당, 사회단체 연석회의 열어 #단일후보 뽑고 밀어야 선거 치를만 #지도력·정치력 잃고 헤매는 한국당 #참여 거부한다면 실력행사 나설 것”

총선이 불과 석달 남짓이다. 야권 인사들이 정권을 두들겨 패는 거야 이상한 일이 아니다. 눈 여겨 볼 대목은 모인 사람이 대부분 친이·비박계(친이명박·비박근혜) 인사들이란 점이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 이문열 작가와 함께 보수쪽 명망가 여럿이 이름을 올리고 더러 참석했다. 전광훈 목사는 축사를 했다. 그래도 이명박 정권서 요직을 맡았던 사람들이 주축이다. 이재오 중앙집행위원장과 홍준표 전 대표가 한가운데 있다.

두 사람은 ‘친박 그룹’에 둘러싸인 황교안 대표와 한국당에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는 중이다. 홍 전 대표는 이튿날 “무기력한 야당만 믿고 따르기엔 너무 답답하고 앞날이 보이지 않아 창립한 게 국민통합연대”란 글을 올렸다. 31일엔 “한국당 지도부는 총사퇴하고 비상대책위를 꾸려야 한다”고 황 대표 사퇴를 요구했다. 이재오 위원장은 지난 10월3일 광화문의 조국 규탄집회장에서 “자유한국당은 집회에서 빠지라”고 외쳤다.

가뜩이나 뿔뿔이 흩어진 각자도생의 보수세력이다. 한국당과 우리공화당에다 새로운 보수당, 이언주 신당, 이정현 신당이 나올 판이다. 게다가 개정선거법의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군소정당에 유리한 분열요인이다. 중앙선관위에 등록된 정당이 34개인데 창당준비위원회를 설립한 예비정당만 16개에 달한다. 야권 빅텐트를 외칠만한 상황이긴 하다.

그런데 통합을 내건 이재오 위원장은 “어느 한 정당이나 단체 중 힘 있는 정당, 단체를 중심으로 뭘 하자는 식의 통합은 어렵다”고 주장했다. 황교안 대표와 한국당 중심의 보수 통합론을 가로막고 나선 셈이다. 그렇다고 ‘힘 있는’ 한국당이 ‘힘 없는’ 국민통합연대의 주문에 따를 리는 없다. 결국 친이계가 떨어져 나가는 ‘보수 4분열’이란 해석이 나왔다. 정말 그럴까. 국민통합연대는 조만간 친이 비박 신당으로 탈바꿈할 것인가. 이재오 위원장에게 물었다.

모임의 성격이 뭔가.
“보수를 하나의 틀과 흐름으로 통합하자는 시민단체다. 보수 분열과 갈등이 해방 이후 최고 수준이다. 이 대로면 보수 자체가 괴멸될 위기다.”
보수 진영은 왜 이 지경이 됐다고 보나.
“2007년 이명박 후보를 뽑은 한나라당 대선 경선전이 출발점이다. 유례 없이 격렬해 대선 후에도 갈등이 해소되지 않았다. 그래도 이명박 정권 땐 갈등 수준이었는데 박근혜 정권을 거치며 분열이 고착화됐다.”
친이와 친박 싸움이 보수 분열의 핵심이란 건데 지금 또 친이 비박계 인사들이 국민통합연대를 만들었다.
“꼭 그런 건 아니다. 공동대표단에 송복 교수, 이문열 작가가 있다. 세력이라면 주로 교수들이다.”
참여 정치인은 모두 친이계 의원 아닌가.
“현직 의원은 배제다. 행사장에 온 분들은 인사차 온 거다. 전직 의원은 친이했던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단체 성격이 사람들로 규정되는 건 아니다.”
친이명박당으로 가나.
“아니다. 통합하자면 뭔가 주체가 있어야 하지 않나. 막연하게 하늘에 대고 ‘보수 통합하자’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런 주체가 되겠다는 거다.”
한국당은 그런 주체가 한국당이라고 하고 있는데.
“한국당 중심으론 보수 통합이 어렵다. 유승민당, 이언주당, 이정현당이 생기고 있다. 눈 똑바르면 여기저기 당 만드는 판인데 그 사람들이 한국당으로 들어가겠나. 자유우파 진영의 대동단결 앞에 한국당은 여럿 중 하나다.”
어떻게 통합을 만들겠다는 건가.
“제정당, 사회단체 연석회의를 열어 통합비상회의를 만들면 된다. 참여 정당 대표들의 토론과 논의로 자유우파 진영의 단일 후보를 내야 한다.”
한국당이 참여할까.
“물론이다. 안 하면 퇴로가 없다.”
참여 안 하면 어떻게 하나.
“비상대책이 있다. 우리가 우파진영 단일후보 운동에 나설 거다. 무슨 보수가 됐든…”
어떤 후보를 단일후보로 미는 게 사실상 정당활동 아닌가.
“당은 아니다. 우리가 공천하고 후보를 내는 게 아니다. 다만 국민이 바라는 제일 좋은 후보를 선택하도록 돕는 지원이다. 지원은 누구든지 할 수 있다.” 
지난달 23일 출범한 국민통합연대 창립대회서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 등 참석자들이 ‘오만방자한 정권에 사망을 선고한다’는 선언문을 채택한 뒤 ‘국민 통합’과 ‘분열 극복’을 외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지난달 23일 출범한 국민통합연대 창립대회서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 등 참석자들이 ‘오만방자한 정권에 사망을 선고한다’는 선언문을 채택한 뒤 ‘국민 통합’과 ‘분열 극복’을 외치고 있다. 김경록 기자

‘늘푸른 한국당’을 만들었고 그 때도 보수 통합을 말했다. 하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 수사가 급속하게 진전되자 당을 접고 한국당으로 들어갔다. 이번에도 비슷한 길을 걷는 것 아닌가.
“박근혜 정권이 우릴 덮어놓고 자르고 쳐낼 때다. ‘저 사람들론 안 되겠다’고 생각해서 당을 만들었다. 결국엔 보수 통합을 위해 당을 접고 희생했다. 나는 통합을 실천했다. 자꾸 이명박 세력이라고 하는데 이명박 세력이 역사에 죄를 지은 게 있나? 이명박 세력은 단합하면 안되나? 친박만 단합하면 되고 이명박 세력은 단합하면 안되는 이유가 따로 있나? 이명박 세력이 단합해서 통합에 힘을 보탠다는 데 ‘이명박 세력이니까 안 된다’는 게 말이 되나.”
홍준표 전 대표는 ‘한국당을 따르기엔 앞날이 캄캄하다’고 했다.
“한국당만으로 우파 진영이 어렵다는 건 누구든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얘기다. 심지어 한국당 국회의원들도 모두 그렇게 생각한다.”
황교안 대표가 뭘 잘못하고 있나.
“보수의 지도력 행사를 못한다. 말로만 통합한다는 데 보수 통합의 지도력이 없다. 정치 능력, 정책 능력도 없다. 나라를 이렇게 망친 건 물론 여당 책임이다. 그러나 야당 책임도 있다. 100명 넘는 국회의원들로 정국을 끌어가지 못한다. 지도력도 정치력도 없다면 반성해야 해야 하는데 도무지 반성할 줄도 모른다. 뭐 잘했다고 자기들끼리 표창장이나 주고 있으니 양심적 국민들은 질려버린다.”
야권 통합 중심엔 박근혜 전대통령 문제가 있다. 탄핵 찬성당이 있고 반대당도 있다. 어떤 통합을 생각하나.
“박 전 대통령 탄핵은 역사적 사실로 끝내야 한다. 잘했다, 잘못했다 거론하는 순간 통합은 영원히 불가능하다. ‘우리가 중심이 돼야 한다’는 자기 중심주의에 빠지는 길이다. 당시엔 탄핵이 시대 흐름이었다. 박 전대통령 지지율은 4%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젠 석방해야 한다. 25일이 구속 1000일이었다. 국민통합연대는 1호 성명으로 ‘석방하라’를 냈다.”
통합비대위서 통합 후보 내자는 제안을 황교안 대표가 받아들일까.
“지금 정당 창당 준비하는 당원들이 후보 안 낸다는 보장이 없다. 수도권은 500표로도 당락이 갈린다. 덩치 큰 한국당이 더 큰 피해를 본다. 황 대표가 아무리 정치 경력이 없어도 모르지 않을 거다. 걷어차면 통합은 영원히 물 건너가고 정권을 되찾는 것도 어려워진다. 개인적 욕심 없다. 나는 총선 출마 안 한다. 순수함을 믿어 달라.”

집권 3년차 두 차례 총선, 모두 보수정권서 야권 분열

선거 주기 만 놓고 보면 야당이 크게 불리할 것도 없다. 1988년 13대 총선부터 2016년 20대 총선까지 총 8차례 총선에서 집권당이 단독으로 과반 승리를 한 건 단 세 차례(2004년, 2008년, 2012년)에 불과하다. 두 차례는 집권 직후 치러져 2012년 총선이 사실상 유일한 예외다. 그때도 집권당인 한나라당은 이명박 대통령과 맞서며 야당 이미지를 키워간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을 내세워 이겼다.

진보든 보수든 전국 선거에서 네 번 연속 승리한 정당도 없다. 한나라당은 2006년 지방선거,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에서 연거푸 이겼다. 더불어민주당은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에서 완승했다. 민주당이 4연승한다면 새로운 기록이다.

집권 3년을 전후해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으로 치러진 총선은 15대, 20대 총선이다. 두 차례 모두 보수당 정권 때고 야권 분열 속에 치러졌다. 그런데도 여당 패배로 결론 났다. 1996년 15대 총선은 YS와 DJ, JP가 맞서는 지역대결 선거였다. 2016년 20대 총선 땐 야권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갈렸지만 민주당이 제 1당에 올랐다.

4월 총선은 결국 야권 통합이 변수인데 현재로선 길을 잃었다. 새누리당이 한국당과 바른정당, 대한애국당으로 쪼개진 이유는 박근혜 전대통령 탄핵에 대한 입장 차였다. ‘탄핵이 불가피했다’는 탄핵 찬성당과 ‘잘못됐다’는 반대당의 거리는 시간이 갈수록 멀어지고 있다. 한국당은 양쪽 의원들의 동거체제다. 보수층 내에서도 의견이 모아지지 않는다.

최상연 논설위원, 정리=윤서아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