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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억달러 딜 주인공 김봉진 "국내서 폼잡다 죽고싶지 않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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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이현상 기자 중앙일보 논설실장

40억 달러 ‘딜’ 주인공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

태풍 뒤의 고요함이랄까. 40억 달러짜리 ‘딜’(거래)을 마친 뒤의 사무실은 조용했다. 음식 배달 앱 ‘배달의민족’ 운영사 ㈜우아한형제들의 서울 송파구 방이동 사옥은 비어 있었다. 전 직원들에게 연말 특별 휴가를 선물한 김봉진(44) 대표는 혼자 출근해 남은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축하한다는 말을 건네자 “이제 시작인 걸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에게 기업 매각은 단순한 ‘엑시트’(창업 후 지분 매각으로 이익을 실현하는 일)가 아니었다. 성공 스토리 뒤에는 환희의 무게만큼 고민이 자리 잡고 있었다.

[비즈니스 현장에 묻다] #해외 자본에 팔렸다 소리 싫지만 #글로벌 도전 위해 불가피한 선택 #경쟁 해치는 본사 지시 내려오면 #아시아 총괄 자격으로 막아낼 것

독일계 음식 배달서비스업체 DH(딜리버리 히어로)가 평가한 우아한형제들의 기업가치는 약 4조8000억원. 국내 스타트업 M&A 사상 최대 규모다. 앱 하나로 평가받은 기업가치가 GS나 현대건설의 시가총액과 맞먹는다. ‘매각’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창업자인 김 대표가 회사를 떠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역할이 커졌다. 두 회사가 절반씩 출자해 싱가포르에 세우는 합작법인 ‘우아DH아시아’의 책임자로서 아시아 11개국 사업을 총괄하게 된다. DH는 우아한형제들의 투자자 지분 87%를 인수하고, 김 대표 등 경영진이 가진 지분 13%는 DH 본사 지분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그렇게 되면 김 대표는 DH 경영진 가운데 개인 최대 주주가 된다.

“더 큰 꿈 위해 글로벌 자본 선택”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가 서울 송파구 방이동 사옥 로비에서 배달의민족 앱 캐릭터 인형을 옆에 두고 인터뷰하고 있다. 김 대표는 ’본격적 글로벌 진출을 위해 독일계 배달 서비스업체 DH와 손을 잡았다“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가 서울 송파구 방이동 사옥 로비에서 배달의민족 앱 캐릭터 인형을 옆에 두고 인터뷰하고 있다. 김 대표는 ’본격적 글로벌 진출을 위해 독일계 배달 서비스업체 DH와 손을 잡았다“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김 대표의 고민은 ‘민족’이라는 단어에 닿아 있었다. 회사가 외국 자본에 넘어가면서 민족 브랜드가 어울리지 않게 됐다는 시선 때문이다.

소비자 반응이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DH와는 경쟁 관계이지만 창업 초기부터 지속해서 교류해왔다. 그 과정에서 그들이 지닌 ‘글로벌 DNA’에 놀랐다. DH는 홈그라운드 격인 독일 사업마저 네덜란드 기업에 넘기고 글로벌 마케팅을 강화해왔다. 그들과 계속 싸울지, 합쳐서 글로벌 무대로 나갈지 마지막까지 고민했다. 더 큰 도전을 위한 선택이라고 이해해줬으면 한다.”
국내 상장도 생각해볼 수 있었을 텐데.
“국내 상장이 이뤄지지 않아 아쉽긴 하다. 난들 여의도 거래소에서 멋있게 상장 축하 종을 쳐보고 싶지 않았겠나. 그러나 국내 상장이나 매각을 통해 조달할 수 있는 자본은 한계가 있었다.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규모라고 판단했다. 향후 3~4년 사업 시뮬레이션을 해 본 결과, 국내 상장으로는 ‘폼’ 한번 잡은 뒤 서서히 죽어갈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
경영권 걱정도 있었을 것 같다.
“솔직히 신경 쓰였다. 스타트업 기업에 차등 의결권을 허용해야 한다. 스타트업들은 처음부터 이익이 날 수 없으니까 계속 투자를 받아야 한다. 그때마다 창업자와 경영진들의 지분이 희석되면서 경영권이 흔들린다. 마음 놓고 일하기 어렵다. 차등 의결권이 증여나 상속 수단으로 악용된다면 창업자에게만 적용하고, 증여·상속 때는 1주로 환원하면 된다.”
우아한형제들

우아한형제들

김 대표는 “기업 가치를 보는 국내의 눈과 해외의 눈이 크게 다르다는 것을 이번에 느꼈다”고 말했다. 이번 ‘딜’ 직후 DH의 주가는 30%가량 올랐다고 한다. 해외에서는 DH가 그만큼 ‘싼 가격에 좋은 거래’를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이 김 대표의 설명이다.

높은 기업 가치의 이유가 궁금하다.
“음식 배달 서비스는 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있다. 성장 가능성도 무궁무진하다. 1~2인 가구의 확대, 배달 로봇 같은 신기술의 발전, 식재료 시장으로의 확대 등이 주목받는다. 중국의 음식배달 서비스 ‘메이투안’은 기업가치가 30조원 정도다. 영국의 ‘저스트 잇’, 네덜란드의 ‘테이크 어웨이’, 미국의 ‘도어 대시’, 손정의 펀드가 투자하는 ‘우버 이츠’ 등도 덩치를 키우고 있다.”

DH와는 ‘따로 또 같이’

우아한형제들과 DH의 합병은 공정위 승인이라는 관문이 남아 있다. 국내 배달 앱 시장에서 우아한형제(‘배달의민족’)과 DH(‘요기요’ ‘배달통’)의 점유율은 90%가 넘는다. 독과점이 가입업체의 수수료 부담 상승이나 소비자 혜택 축소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수수료나 광고비 인상은 없다고 선언했지만 우려가 쉬 가시지 않는다.
“일반적인 기업결합은 합병으로 인한 고정비 절감을 노린다. 하지만 관련 시장이 엄청나게 빠르게 성장하는 상황에서는 각각 경쟁력을 키우는 상태로 놔두는 게 낫다.  고정비 줄여 이익 높이는 구조로는 다 같이 죽는다. 요기요나 배달통과는 독자경영 담을 쌓아 놓았다.”
어떻게 보장할 수 있나.
“요기요와 배달통은 독일 본사의 지휘를 직접 받지만, 배달의민족은 내가 총괄하는 아시아 법인의 지휘를 받는다. 고유한 경쟁력을 해치는 지시는 내가 막을 것이다.”(이번 거래로 김 대표는 DH 본사에 구성된 글로벌 자문위원회 멤버 3명 중 1명이 된다. 자신에게 그럴 힘이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자유가 아니다. 자율이다”

김 대표가 회사를 키운 힘 중의 하나는 독특한 기업 문화다. 자유로움, 발랄함, ‘키치’가 섞인 이 회사의 문화는 그 자체로 브랜드가 됐다. 한양대 경영대 홍성태 교수는 이를 ‘배민다움’이라고 명명했다. 매주 월요일은 정오에 출근하고, 개인에 대한 성과 평가는 따로 없다. 매주 수요일 오전에는 CEO와 직원들이 한 데 모여 불만 처리를 하는 ‘우수타(우아한 수다 타임)’을 갖는다. 사무실 곳곳에는 ‘헐’ ‘씻고 자자’ 같은 B급 감성의 포스터가 붙어 있다. 눈길을 끈 재기발랄한 광고도 이런 감성의 결과물이다. 기자가 방문 기념으로 받은 볼펜에는 ‘어머, 저도 팬이에요’가 새겨져 있었다. 직원 1400명을 넘긴 조직이 이런 문화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을 터다.

어색해하는 직원들도 있을 것 같다.
“공통점을 확인하는 것이 문화가 될 수는 없다. 독특한 철학 혹은 포인트가 문화다. 직원들이라고 100% 우리 문화에 동의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느 정도 강제하는 측면이 있을 수밖에 없다. 문화라는 영어 단어 ‘컬처’(culture)가 ‘경작하다’에서 비롯된 것 아닌가. 인위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의미다. 독특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재미있게 일하고, 성과를 내고, 고객에게 좋은 서비스를 만들어내면 그게 문화다.”
의외다. 창의성을 강조해오지 않았나.
“아니다. 나는 균형(밸런스)을 이야기한다. 수평적 문화와 수직적 실행, 좌뇌와 우뇌, 숫자를 보면서도 감성을 중시하는 경영 등이다. 보통의 한국 기업에서는 우리 회사 분위기가 자유롭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막상 입사한 직원들이 놀라는 경우가 많다. 수평적이기만 한 문화? 반드시 바람직할까.”

사무실 곳곳에는 ‘송파구에서 일을 더 잘하는 11가지 방법’이라는 일종의 근무 지침서가 붙어 있다. 첫 번째 문구는 ‘12시 1분은 12시가 아니다’, 마지막 문구는 ‘이끌거나, 따르거나, 떠나거나!’다. 자유보다는 오히려 규율에 무게가 실린 느낌이다. 김 대표가 향하는 조직 문화는 이 둘의 중간 어디쯤 자율의 지점일 것이다. 김 대표는 “밸런스는 0과 10 사이에서 5를 꽉 지키는 것이 아니라, 계속 줄타기를 하며 유연하게 움직이는 것”이라며 “어떨 때는 꿀벌처럼, 어떨 때는 게릴라처럼 일하라는 게리 하멜 교수(런던대 비즈니스스쿨 교수)의 말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우아한형제들은 올해 창업 10년을 맞는다. 서울 강남 골목길을 누비며 주웠던 음식점 전단이 창업 밑천이었다. 자금 사정 때문에 직원 월급을 걱정하던 때도 있었다. 이런 고비를 넘기고 성공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비상장사)의 신화를 써 나가고 있지만, 김 대표는 여전히 배고프다. 자본의 ‘사이즈’를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리라. “국내 시장 방어에 급급해 결국 초라해져 버린 선배 인터넷 기업의 전철을 밟고 싶지는 않다.” 김봉진의 도전은 성공할 것인가.

이현상 논설위원

이현상 논설위원

이현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