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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세 늦둥이 낳은 '둘리 아빠' 69세 동화작가로 돌아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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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10년 만에 요정 동화작가로 돌아온 ‘아기공룡둘리 아빠’ 김수정 작가가 중앙일보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 그는 ’요정 이야기를 할리우드식이 아닌 아시아적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볼 생각“이라고 했다.

10년 만에 요정 동화작가로 돌아온 ‘아기공룡둘리 아빠’ 김수정 작가가 중앙일보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 그는 ’요정 이야기를 할리우드식이 아닌 아시아적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볼 생각“이라고 했다.

대세 펭귄 ‘펭수’의 인기 덕에 유튜브 공간에서 다시 뜨는 친구가 있다. 아기공룡 둘리다. 펭수의 선배인 남극유치원 1기 졸업생으로 돌아왔다. 펭수는 2기다. “라떼는 빙하 타고 다녔지”라며 ‘일억년 전’ 운운하는 둘리는 남극의 레전드로 남극유치원 동창회 후배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고 있다.

69세 만화가 김수정의 새로운 도전 #딸과의 캐나다 추억, 책으로 엮어 #“모든 것이 디지털화하는 세상 #종이책의 정겨움 전하고 싶어”

1983년 4월 22일부터 만화잡지 ‘보물섬’에 둘리 가족을 10년 동안 연재한 ‘둘리 아빠’ 김수정 작가(69)가 2009년 활동 중단 후 10년 만에 요정 동화작가로 변신해 독자들 앞에 나타났다. 고교 시절 참고서 밑에 둘리 만화책을 깔아 두고 몰래 즐긴 애독자이자, 작가와 같은 이름을 가진 ‘덕’에 둘리 별명이 붙었던 기자가 그를 세밑에 만났다.

쌍문동의 가수 지망생 마이콜 같은 풍성한 파마 머리를 고수했던 김 작가는 흰머리 스포츠 스타일로 나타났다. “30년 이상 뽀글이 머리를 하다 8년 전쯤 바꿨습니다. 머리카락도 푸석해지고 예전 같이 멋있게 컬이 나오지 않아서요. 나이 드는대로 맞춰야 하는 거죠.”

김 작가가 이번에 낸 책은 바람의 요정 윈디를 부제로 붙인 동화 『모두 어디로 갔을까(전 3권)』이다. 첫 페이지에 ‘딸에게, 아빠가…’라고 썼다. 숲속에서 사라진 초등학생 아이들이 24시간 동안 겪는 성장 판타지다. 늦둥이 딸과 2012년 캐나다로 이주해 살고 있는 동네의 밴쿠버 브리티시 콜럼비아대를 둘러싼 숲속이 배경이다.

“딸아이가 어느 날 나무들이 하나씩 베어져 나가는 것을 보고 한 말, 하늘을 나는 독수리와 부엉이에게 한 말 등 아이의 감성과 표현을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이런 것을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적어둔 글을 동화로 엮은 겁니다. 만화로는 시간이 더 걸릴 것 같아 글로 냈는데, 7년이나 걸렸어요. 여우길, 거인의 길, 바람이 쉬어가는 길, 딸 시하가 이름 붙인 길 등 숲속의 판타지를 담았습니다.”

김 작가가 아기공룡 둘리 애니메이션 그림에 중앙일보 독자들에게 전하는 새해 인사를 남겼다. 강정현 기자

김 작가가 아기공룡 둘리 애니메이션 그림에 중앙일보 독자들에게 전하는 새해 인사를 남겼다. 강정현 기자

시하(영어명 세라)는 김 작가가 54세에 낳은 늦둥이다. 책에서 묘사한대로 “오랜 시간 기도하고 염원하며 공들여 낳은” 딸이다. “고2가 된 지금도 둘리 인형, 특히 둘리의 상품택을 만지며 잔다”고 한다. 세라의 등굣길 숲속 유모차 속에서 발견된 정체불명의 초능력 아기 ‘저스틴’과 쌍문동 하천에서 발견된 공룡 둘리는 모두 ‘미아’란 공통점이 있다.

“‘또치’도 서커스단에서 도망 나왔고, 도우너도 외계에서 불시착한 아기 우주인이다. 버려지고 격리되고 부모로부터 보호받지 못한 아이들의 아픔을 승화시켜야겠다는 그런 게 내 마음 한 켠에 있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책에서 과거 속으로 실종된 아이들을 현재로 인도한 것은 종이 드래곤이다. “모든 것이 디지털화하고 있는 세상에서 종이로 만든 책의 의미를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었습니다. 줄이 그어져 있고, 졸다가 흘린 침이 묻은 책, 손때 묻은 책이 정겹지 않나요.”

그래서 책속 삽화 150컷을 모두 수채화로 그렸다. 나이도 있어 그림이 구닥다리로 보일까 고민하면서 그린 따뜻한 손 그림이다. 김 작가는 이번 동화책을 계기로 요정 연작을 그림책과 동화책,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 생각이다. “글을 쓰면서 할리우드식 애니메이션이 아닌 아시아적 애니메이션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둘리’에 향수를 가진 40·50대 팬들이 아니라 동화책으로 10대 이하를 겨냥했다.
“딸에게 준다고 했지만,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에게 맞췄다. 책 작업을 하면서 서점 등을 많이 다녔는데 아동쪽 국내 창작물이 너무 없어서 충격을 받았다. 읽는 사람, 쓰는 사람, 찍어내는 사람 없으면 어떻게 되나. 캐나다나 미국에선 아이들이 책을 엄청 읽는다. 우리의 책문화를 이렇게 방치할 건가.”
‘둘리 아빠’로 불린다.
“내 손끝에서 탄생한 만화 캐릭터이지만, 30~40년을 나와 같이 있었다. 단순한 캐릭터가 아니라 내 분신 같다. 내 딸이 여기 있고, 둘리도 여기 있다.”

김수정 에디터 kim.su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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