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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공정 오디션 불명예 안고…애증의 ‘프듀’ 아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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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허민회 CJ ENM 대표가 30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Mnet ‘프로듀스x101’ 등 오디션 프로그램의 투표 순위 조작과 관련, 고개숙여 사과하고 있다. [뉴시스]

허민회 CJ ENM 대표가 30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Mnet ‘프로듀스x101’ 등 오디션 프로그램의 투표 순위 조작과 관련, 고개숙여 사과하고 있다. [뉴시스]

‘프로듀스 101’ (이하 프듀) 순위 조작 사태와 관련, 허민회 CJ ENM 대표가 30일 기자회견을 열고 공식 사과했다. 허 대표는 “모든 분들께 큰 실망을 안겨드린 점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며 피해 연습생에게 금전적으로 보상하고, 300억원 규모 펀드를 조성해 음악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쓰겠다고 밝혔다. 또 ▶외부 콘텐츠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시청자위원회 설치 ▶내부 방송윤리강령 재정비 등의 공정성 강화 조치를 발표했다.

순위조작 논란에 결국 퇴출 #CJ “피해 연습생에 금전적 보상” #음악 생태계 위해 300억 펀드도 #“Mnet 피해자 맞나” 논란 진행형 #일부선 “K팝 위축될까 우려”

2016년 첫선을 보인 이래 가요계 최대 이슈 메이커 중 하나였던 ‘프듀’가 불명예 퇴출됐다. 사라진 ‘프듀’는 2020년 K팝 시장에 호재가 될까, 악재가 될까. 가요계에 미칠 영향을 놓고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프듀’ 시리즈에 대한 그간 가요계의 시선엔 애증이 겹쳐 있다. 매 시리즈마다 전소미, 강다니엘, 장원영, 김요한 등 스타급 연예인을 발굴했고, 이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아이오아이(I.O.I), 워너원(Wanna One), 아이즈원(IZ*ONE), 엑스원(X1) 등은 대형 기획사의 주력 아이돌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국민 프로듀서 시스템 도입 등 차별화된 기획이 성공하면서 K팝 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가져왔다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다른 한 편에선 CJ라는 막강한 방송 권력을 업고 아이돌 기획, 제작, 유통까지 확장을 시도한 대기업의 횡포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 대형기획사 A 이사는 “K팝은 시장 크기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팬덤이나 음반 판매 규모에 한계가 있다. ‘프듀’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것이 아니라 기존 파이를 빼앗았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각 기획사가 오랜 기간 공들여 훈련시킨 연습생들의 기회를 가로챈 불공정 행위”라고도 말했다.

‘프로듀스 101’ 시리즈로 탄생한 아이즈원(위)과 엑스원. 허 대표는 ’이들이 빠른 시일 내 활동을 재개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프로듀스 101’ 시리즈로 탄생한 아이즈원(위)과 엑스원. 허 대표는 ’이들이 빠른 시일 내 활동을 재개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중소기획사들의 입장은 미묘한 차이가 있다. 한 중소기획사 관계자는 “대형 기획사에 가려 홍보기회가 적은 중소기획사들엔 ‘프듀’가 하나의 대안 플랫폼 역할을 해준 건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애초 1년 남짓이던 계약 기간이 최근 엑스원의 경우엔 5년까지 늘어나는 등 Mnet의 ‘갑질’이 과도해졌다. 이대로 갔으면 중소기획사들은 Mnet이 만드는 아이돌 그룹을 위해 연습생을 공급하는 하청업체로 전락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프듀’ 시리즈가 K팝 시장의 확대에 미친 영향을 두고도 갑론을박이 나온다. 대형 기획사 측은 ‘프듀’ 시리즈가 K팝의 파이를 키우기보다는 기존 파이를 나눠먹기 했다는 입장이다. 가온차트가 집계한 2014~2015년 음반판매량을 보면 EXO, 슈퍼주니어, 동방신대, 소녀시대 등 SM 출신 가수들이 상위권을 휩쓸고 그 외 방탄소년단, 인피니트, 비스트, B1A4 등 중견급 기획사의 가수들이 포진돼 있었다. 그런데 ‘프듀 시즌 2’에서 워너원이 데뷔한 2017년부터는 사정이 달라졌다. 워너원의 앨범이 10위 안에 2~3개가 들어가며 강세를 보인 반면 기존 강자였던 EXO는 물론 중견 기획사 그룹들의 점유율은 상대적으로 떨어졌다. 기존 주요 기획사들이 불만을 느끼는 부분이다.

하지만 반론도 적지 않다. 김진우 가온차트 수석연구위원은 “2016년부터 음반판매량이 급증하는 등 K팝 시장이 급속도로 확장됐는데, 여기엔 방탄소년단의 활약과 함께 ‘프듀’ 출신들의 선전이 쌍끌이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프듀’가 나오기 1년 전인 2015년 상위 20위 음반판매량의 합계는 380만장이었다. 하지만 이듬해부터 522만장(2016년)→660만장(2017년)→1211만장(2018년)으로 급증했다. 반면 올해는 11월 기준 1012만장으로 성장세가 한풀 꺾인 상태다. 계약 기간을 마친 워너원의 활동 중단과 ‘프듀’ 조작 파문으로 엑스원의 판매량이 57만장(11월 현재)에 머무른 것이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 연구위원은 “K팝 시장이 최근 3~4년 폭발적 성장을 하며 한계점까지 온 것도 있지만 ‘프듀’ 시리즈가 힘을 잃으면서 성장 동력이 사라진 것도 요인이 됐다. 당분간 이로 인한 부정적 영향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7월부터 시작된 ‘프듀’ 순위 조작 관련 수사는 3일 검찰이 안모 PD와 김모 CP 등을 업무방해, 사기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하면서 사실상 마무리된 상황이다. 또 이에 가담한 기획사 임직원 5명도 배임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안 PD와 김 CP는 20일 첫 공판기일에서 순위조작 등 혐의 대부분을 인정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검찰이 Mnet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로 규정한 것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수사기관에서는 순위 조작 등의 행위를 제작진의 개인적 일탈행위로 보고 있다. 따라서 Mnet에 영업방해 등 피해를 줬다는 논리다. 이에 대해 Mnet 소속인 주요 제작진이 가담한 범죄행위인데 회사가 책임을 지지 않고 개인의 일탈로 꼬리자르기 했다는 반발도 적지 않다. 이 문제를 ‘취업사기’라고 규정하며 ‘프듀 국민감시법’을 발의한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도 “CJ ENM과 Mnet은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프로듀스×101’ 진상규명위원회 측을 대리하고 있는 마스트 법무법인 측은 “‘프듀’가 공정하게 아이돌을 선발할 것으로 오인하게 해 기획사들의 업무를 방해했다는 취지를 고소장에 적었지만, 검찰이 이 혐의에 대한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검찰은 CJ ENM만 피해자로 적시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검찰 측 기소 내용에 불복해 23일 항고장을 제출한 상태다.

이와 관련해 경찰 관계자는 “‘프듀’ 뿐 아니라 ‘아이돌학교’ 등 유사 프로그램의 순위조작에 대해서도 조사를 하고 있다. 또 Mnet 대표를 맡고 있는 CJ ENM 고위 관계자의 개입 여부도 아직 조사가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가요계 관계자는 “대표까지 순위조작에 개입했다면 Mnet이 더이상 피해자로 남아있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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