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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산수] 인천 민어골목 안, 중국인 동상 정체는…

중앙일보

입력

비행산수 인천

비행산수 인천

인천 중구 신포국제시장 안에는 오래된 횟집 골목이 있다. 둘이 나란히 걸을 수 없어 ‘한줄골목’이라는 명찰을 단 길도 있다. 횟집들은 민어며 전어며 철따라 다른 생선을 썰어낸다. 옹기종기 모여 앉은 가게 앞에는 널찍한 마당이 있고 그 가운데 색다른 조형물이 있다. 한국과 일본 아주머니에게 채소를 파는 중국농부다. 짚으로 짠 멍석 위에는 당근‧양파‧양배추‧우엉 같은 갖가지 채소가 놓여있다. 조형물에는 사연이 있다.

인천은 한국 화교의 출발점이다. 대륙에서 배를 타고 온 중국 사람들이 처음 발을 디딘 땅이 인천이다. 화교의 9할은 산동성에서 왔다.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땅이니 그렇다. 돛단배를 타고 다니던 시절, 순풍을 타면 산동에서 인천까지 하루 만에 오기도 했단다. 산동성은 중국 제일 채소 산지다. 상당수 화교는 고향에서처럼 채소를 키우고 내다 팔아 생계를 꾸렸다. 인근에 화교들이 많이 살던 신포시장에는 자연스레 채소 노점들이 생겼다. 희미해져 가는 근대의 기억이 조형물로 남은 셈이다.

인천역과 자유공원 사이 언덕배기에 차이나타운이 있다. 신포시장에서 걸어 15분이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화교 동네다. 화교들이 떠나며 활력 잃은 지역을 시에서 지원해 살려냈다. 길 양쪽에 울긋불긋한 중국풍 건물이 늘어서 있다. 주민센터 외관도 그렇다. 주말이면 거리는 이국의 풍취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그 한쪽에 화교학교가 있다. 인천화교협회 손덕준 회장은 말한다. “유치원에서 고3까지 학생 수가 400여 명이에요. 가장 많을 때는 1200명이 넘었지요. 대만과 중국 국적의 학생들이 함께 배웁니다.” 중국 학생들도 대만에서 만든 교과서로 같이 공부한다. 중국에서 문제로 삼지 않는다. 남한에서 만든 교과서를 북한에서 가르치거나, 그 반대의 경우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인천은 크게 문을 두 번 열었다. 처음은 1883년의 개항이다. 제국주의 총칼이 강제한 개항이었다. 시련의 근현대를 통과하며 한국은 천지개벽을 했다. 2001년 영종도에 국제공항이 들어서며 인천은 다시 한번 문을 연다. 이번에는 우리 힘으로 열었다. 인천공항은 한해 7천만 명이 이용하는 세계 5위 공항이 됐다. 외세 침탈의 창구였던 인천은 이제 한국이 세계로 나가는 대문이 됐다.

그림 윗부분이 인천공항이다. 바다를 가로질러 공항으로 들어가는 다리가 둘이다. 왼쪽이 인천대교이고 오른쪽이 영종대교다. 비행기 머리 아래에 송도국제도시, 그림 오른쪽 위에 청라국제도시가 있다. 소래는 아래쪽인데 한적한 포구가 아파트 숲이 됐다.

인천공항을 이륙한 비행기는 똑바로 날아가지 못하고 급선회 유턴해 갈 길을 간다. 바로 앞이 북한이기 때문이다. 본래 하늘에는 경계가 없다. 사람이 그은 금이니 걷어낼 책임도 사람에게 있다. 비행기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을 월계수 가지와 함께 그려 넣은 이유다. 내년에는 둘이 함께 인천에서 비행기 타고 한라산에 오르는 날 봤으면 좋겠다.
하늘길 반쪽이 마저 열리기 바라는 마음을 그림에 담았다.

안충기 아트전문기자=newnew9@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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